“이 소식은 일체중생의 견문각지하는 지(知)가 아니로되 또한 견문각지를 떠나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므로 화엄론에 이르사되 인생의 근본무명 분멸하는 종자(種子)로서 부동지불을 이루어 신진오입(信進뽑入)하는 문(門)을 삼는다 하시고, 황벽선사 이르사되 견문각지 위에 본심을 인(認)한다 하시고, 보조국사 이르사되 교를 배우고 선을 배우는 자 비록 묘지(妙智)를 만나나 다 성인의 경지라고 미루고 스스로 검약한 마음을 내는 것은 다 자기 마음이 날로 쓰는 견문각지의 성(性)이 무등등대 해탈인 줄로 깊이 관찰하지 못한 까닭이라 하셨다.”
(「참선에 대하야)
여기서 스님은 견문각지(지각작용)하는 성품이 해탈 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하택종이 주장하는 ‘지의 철학’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때의 ‘지’는 알음알이가 아니다. 글자에 눈이 멀어서는 안 된다. 참마음·불성을 의미한다. 스님은 지가 곧 마음이요 불성임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경과 어록으로 부터 많은 인중(印證)을 하고 있는데, 이해의 편의를 위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해본다.
화엄경 :식(講)으로서 능히 알 바 아니니 이 지는 마음의 경계가 아니다. 그 성품은 본래 청정하여 뭇 중생을 깨닫게 한다.
기신론 : 진실식지(률實講知).
보장론 : 그 지의 지는 유무(有無)를 헤아리지 않는다.
달마조사게 : 내가 본래 마음을 구하여 마음을 스스로 가지나니 마음을 구하지 못하거든 마음의 지(心知)를 기다려라.
구나합불 전법게 : 부처는 몸을 보지 못하나니 지가 부처이다. 만일 실로 지가 있으면 따로이 부처가 없다.
혜가 : 요요(了了)히 항상 아는지라 말로 가히 미치지 못한다.
석두 : 나의 법문은 선불(先佛)이 전수하셨으나 선정 ·해탈을 논하지 않고 오직 부처의 지견을 달함이라.
하태 : 공적영지(갖覆훌知).규봉 : 본적본지(本寂本知).
이외에도 기타 여러 경론 중에 말한 진여 ·원각· 보리 ·열반·반야·바라밀 등이 모두 이 진지를 가리킴이니 사질은 곧 일체인생의 본원각성이며 청정심체(淸樓心體)라고 하였다.
스남의 지는 하택(684~758 ·규봉(780-841)이 말하는 공적영지의 ‘지’인데 이는 또 보조가 「진심직설)‘진심이명’조(條)에서 열거하고 있는 진여 ·원각·보리 ·열반·반야·진심과 같은 것을 지칭한다. 따라서 지는 지혜가 아니라 온갖 작용을 행하는 마음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규봉은 “지(知), 이 한 글자는 온갖 묘(妙)합의 문이다(知之一字 聚妙之門)”라고 한 것이다.
심성론에 대해서 스님은 하택 ·규봉·보조가 세운 ‘지의 철학’올 그대로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스님의 선사상이 오직 하태종이라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스님은 “이 소식은 일체중생의 견문각지하는 지가 아니로되 또한 견문각지를 떠나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스님은 견문각지가 곧 부처라고 하는 입장의 홍주종(마조선)과 견문각지를 떠나 따로 그 성품이 있으며 그것이 부처라고 하는 하택종의 두 입장을 다 어느 정도 수용하는 동시에 또한 어느 정도 부정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양자 즉 흥주종과 하택종은 후세에 홍주종에서 하택종을 비판·부정하면서 조사선을 전개함으로써 그 차이를 부각시키고자 하였음에도 불구하고-물론 그 차이는 인정된다-전체적으로 보아서 동일한 면도 인정된다. 규봉이 말한 대로 둘 다 심성을 곧바로 드러낸다는 점과 상(相)에서 성(性)으로 돌아간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스님의 경우도 보조가 그랬듯이 하택이나 홍주의 한 종파에 속한 교판론자가 아니라 종파를 달리하는 사람들의 견해도 받아들여 하나로 조화코자 한 회통론자였다.
둘째, 스님의 경우 ‘온갖 것에 참모습을 보는 마조선의 이치를 노래한 시를 남기고 있는데, 이로써도 스님이 오로지 하택종의 입장이라 단정하기 어렵다는 변모를 볼 수 있다. 경봉스님께 보낸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멀리 떠난 나그네 고향가길 잊었구나
고향에는 감자가 달고 나물도 향그렵다만
달뜨니 일천 봉우리 적적하고
바람 불어오니 오만 나무가 서늘해
영마루에 한가로운 구륨이 희고
뜰에는 어느덧 낙엽이 물드네
온갖 것에 참모습을 보소
콧구멍은 하늘을 향해 뚫렸다오”
(번역은 명정, 상점은 필자)
「참선에 대하야」에서는 하택의 입장에서 선리를 설하면서도 대혜(1089~1163)를 언급하고 있지 않다.
「서장」이나 「간화결의론」을 극히 칭송하면서 간화선을 주장한 스님이 정작 선리를 설하는 이 부분에서 대혜나 위의 저술로부터의 인용이 없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선의 원리는 하택 ·규봉의 차원에서 설하고 실제 수행은 대혜의 간화선에 따른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 같다.
이러한 이중구조는 얼핏 서로 이질적 ·모순적이어서 하나로 조화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가 었으나 보조선의 체계에서 이미 조화의 묘를 얻고 있는 것이다. 이를 스님은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끝으로 우리는 하택과 그의 ‘지의 철학계 대한 시각을 교정해야 할 것 같다. 이 ‘지’를 지혜로 오해한 경우도 있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그 까닭은 사실 ‘하택=지해종사’라고 하는 신화 때문이었다.
그 전거로 흔히 「육조단경」에서 육조가 하택을 지해 종사라고 했다는 점을 든다. 그러나 그러한 이야기는 현존 단경 중 최고본(最古本)인 돈황본에는 나오지 않고 턱이본·종보본에만 나온다.
또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혜능은 신회의 순숙(純熟)을 인지하고 가만히 밀어를 내렸다”(性本, ‘하태신회’, 輝師활옮, p85)고 한다. 이 문장은 신회가 혜능으로부터 인가를 받은 것으로 보아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돈오선만 하더라도 하택이 확립시킨 것이며, 마조계의 조사선에서는 돈오와 견성을 주장한 일이 없다고 한다(위의 책, p.91). 어쨌든 ‘신회=지해종사’라고 하는 신화는 이제 역사적 진실이 아님이 점차 밝혀지고 있다. 스님은 이러한 하택에 대해서도 역사적 허구를 뛰어넘은 정확한 인식을 하고 있다. 「해동초조에 대하야」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혜충·영가·하택 동 제 대사(諸大節)도 다 광대하게 정종(正宗)을 통달한 지식(知識)이라.”
이렇게 정확한 인식을 하고 있는 까닭은 실증적인 연구의 결과가 아니라 정사나 적서를 분별하고 분리하는 교판론의 패러다임으로 역사를 보는 것이 아니라, 회통폰의 패러다임으로 역사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도 한암은 한국불교사상사의 전통을 잘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