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본래면목에 부딪히니
온갖 재주가 얼음녹듯, 기와장 무너지듯 했네
달마는 하필 서쪽에서 와가지고
2조의 헛된 삼배를 받았는가
여기에 이걸까 저걸까 물어본다면
좀도둑 한떼거리가 대패했다 하리라.
騫然撞著鼻 伎倆氷消瓦解
達廣伺必西來 二祖枉施三拜
夏問如伺 一隧草賊大販
묘희선사가 그 송을 다시 읊어보고서 말하였다.
그대는 이미 산 조사의 뜻을 깨달았으나
단칼에 두쪽내듯 당장에 알아버렸다
기연에 임해서는 하나하나 천진에 맡겨라
세간 출세간에 남고 모자람 없도다
내가 이 게를 지어 증명하니
사성육범이 모두 놀라는구나
놀랄 것 없다.
파란눈이 오랑캐는 아직 깨닫지 못했느니라.
그리하여 묘총은 입실(入室)하게 되었는데 대혜선사가 물었다.
“지금 온 이 스님은 오직 그대만을 상대하는데 한 번 말해 보아라. 노승이 무엇 때문에 그를 인정하지 않았겠느야?”
“어찌 저를 의심하십니까?”
대혜선사가 죽비를 들고 말하였다.
“그대는 이것을 무엇이라 부르겠느냐?”
“아이고! 아이고!”
대혜선사 갑자기 때리자 묘총이 말하였다.
“스님을 뒷날 사람을 잘못 때렸다 할 때가 있을 겁니다.”
“때렸으면 그만이지 잘못이고 아니고가 무슨 상관인가?”
“이 법을 펴는 데 전념하겠습니다.”
하루는 묘총이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묘희선사가 물었다.
“그대가 산을 내려가다가 누가 이곳의 법도를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경산에 와 본 다음에는 어떤가?”
“이른 봄은 아직도 춥더라고 말하지요.”
“그렇게 대답하면 나를 얕보는 것이 아닌가?”
묘총은 귀를 막고 떠나버렸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대중이 그를 칭찬하여 세상에 무착이란 이름이 유명해졌다. 그는 오랫동안 숨어 살다가 마침내 승복을 입었다. 선사는 나이와 덕망이 높았으나 몹시 엄하게 계율을 지켰고 고행과 절도로 스스로를 격려하여 옛 고승의 면모가 있었다. 태수 장안국이 선사의 도와 덕망을 높이 사서 자수사 주지를 맡아 세상에 나가도록 명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주지를 그만두고 노년을 집에 돌아가서 보냈다.
이암 권선사는 임암부 창화현사람으로 기씨 자손이다. 어려서부터 몸가짐이 무게가 있고 의젓하여 어른 같더니, 14세에 출가하여 불교뿐 아니라 다른 학문에도 통달하고, 무암 전 선사에게 귀의하였다. 거기서 매우 열심히 공부 했는데 하루 해가 저물면 반드시 눈물을 흘리며 “오늘도 이렇게 시감만 보냈고 내일 공부도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구나!”하였다. 선사가 대중 속에 있을 때, 사람들과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꼿꼿하게 처신하니 아무도 가까이 하거나 멀리 할 수 없었다. 한번은 밤부터 새벽까지 계속 좌선하는데 죽을 돌리는 사람이 와도 발우 펴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래서 옆에 있던 사람이 손으로 건드리자 깨달아 게를 지었다.
칠흑 같은 곤륜이 낚시대 잡고
낡은 돛대 높이 올리고 쏜살같이 여울 내려가
갈대꽃 그림자 속에서 달구경하다가
눈 먼 거북 덩겨울려 배 위에 실었노라
黑漆崑崙把釣竿 高帆古掛下驚湍
蘆花影裏玗明月 引得盲龜上釣船
무암선사는 기뻐하며 자기와 비슷한 경지라고 하였다. 건도(乾道 :1163~1173)년 간에 세상에 나와 만년사(萬年寺)의 주지로 갔다. 그곳의 공부 많이 한 노스님들도 그의 몸가짐을 보고 그의 법어를 듣고는 모두 팔장을 끼고 심취하였고, 안팎 천명의 대중은 질서 정연하게 마치 관청에 들어가듯 하였다. 선사가 가는 곳마다 대중과 함께 고생하며 수행하니 상서(尙書) 우포(尤覆)가 말하였다.
“주지는 편안히 앉아서 법을 설하면 되는데 어째서 몸소 고행까지 하십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말법의 비구들은 증상만(增上慢)이 있어서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 하면서 제멋대로 합니다. 내가 몸소 실천해도 오히려 따라 오지 않을까 두려운데 하물며 감히 스스로 편하려 할 수 있겠습니까?”
근세에 선림의 모범을 말할 때는 반드시 선사를 첫째로 꼽는다.
동산 연(東山淵)선사는 하는 일이나 행동이 단정하고 결백하기로 총림에 알려졌다. 선사가 동산사에서 오봉사(五峰寺)로 옮겨왔을 때였다. 부젓가락을 보니 동산사에서 쓰던 것과 다르지 않아 마침내 몸종에게 따져 물었다.
“이것은 동산사 방장실의 물건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여기나 저기나 절집에서 쓰는 물건이라 이해를 따지지 않고 가져왔습니다.”
그러자 연선사가 타일렀다.
“무지한 너희들이 인과법에 ‘섞어 쓰는 죄따用罪’가 있는 줄을 어찌 알겠느냐?”
그리고는 급히 돌려보냈다.
별봉 인(別뿔寶印 : 1109~119이선사가 설두산(雪頭山)에 주지할 때였다. 제자 하나가 수좌의 허물을 일러바치자 성이 나서 큰소리로 말하였다.
“너는 나의 제자로 아래 ·윗사람들을 감싸줘야 할 처지에 도리어 남의 허물을 이야기 하느냐?
곁에 두었다간 반드시 내 일을 망치겠다.”
그리고는 주장자로 때려서 내쫓았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어쩌면 그렇게 명석하냐고 감탄하였다
단하순(판露子請 :1064~1117)선사는 검주(劍州) 사람이다. 단하산에 주지할 때 굉지(宏智正覺)선사가 시자로 있었는데, 그는 요사채에서 한스님과 공인을 따져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웃었다. 그때 마침 단하선사가 그 방문 앞을 지나갔는데, 밤이 되어 핑지선사가 참문 할 때 단하선사가 물었다.
“그대는 아까 어째서 크게 웃었는가?”
“한 스님과 화두를 따져보다가 그의 대답이 너무 서툴러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렇기는 하더라도 그대의 웃음소리 하나에 많은 좋은 일을 잃게 되었다. 옛 말을 듣지 못했느냐? 잠시라도 정신이 구도에 있지 않으면 죽은 사람과 같다 하였다.”
핑지선사는 공경히 절하고 승복하였으며 그 후에는 어두운 방 속에 있을 때라도 감히 한번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성도(成都) 소각사(昭覺츄)의 조수좌(祖首座)는 오랜동안 원오(圓橋)선사에게 공부하였다. 방장실에 들어가 ‘마음이 부처다’한 말을 묻고, 여기서 깨달은 바 있어 원오스님이 분좌(分座)하도록 명하였다.
하루는 대중을 위해 대중방에 들어가 한 스님에게 물었다.
“생사가 닥쳐오면 어떻게 피하겠느냐?”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자 불자를 집어 던지고 갑자기 돌아가셨다. 대중들이 깜짝 놀라 바라보다가 급히 원오선사에게 알리니 원오선사가 와서 “조수좌!”하고 불렀다. 조수화가 다시 눈을 뜨자 원오스님이 “정신차리고 관문을 뚫어라” 하니 다시 머리를 끄덕끄덕 하고는 드디어 영원히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