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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옥계ㆍ색계ㆍ무색계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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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란야 - 이상해 2001년 04월 230호
산사山寺는 수도와 종교의식을 위한 종교 공동체다.
그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모든 수도생활이 그러하듯이 수도자들은 일상과 대립하면서, 일상을 수용하고,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는 삶을 영위한다.
그러한 삶을 담는 건축 역시 그러하다. 해인사에는 종교 공동체를 만드는 내용과 형식, 그리고 상징 요건이 건축으로 나타나 있다.
뿐만 아니라, 해인사에는 한국인이 얽어낸 한국 불교건축의 보편적 정수와 특성도 배어 있다.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연재될 이 글은 해인사 건축에 관한 내용을 소개하면서, 동시에 해인사를 중심으로 한국 불교건축의 특성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따라서 해인사에 들어선 건물들의 배치방식이나 공간형식, 건축법식은 물론이고, 부재나 색채의 사용, 장식이나 상징물의 채용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함께 아우르고자 한다.
인도 북부에서 일어난 불교는 중국 대륙과 해상을 통하여 삼국시대에 한국에 들어왔다. 불교가 한국에 처음 들어온 당시 한국 불교사찰의 건물 배치형식은 어떠한지 분명히 알기는 어렵지만, 현재 남아 있는 절터의 유구를 통하여 어느 정도 윤곽을 추정할 수 있다.
삼국시대 한국의 불교사원은 탑을 중심으로 그 앞으로 중문이, 그 좌우와 뒤로 금당이 배치되었거나, 남북방향으로 일직선을 이루는 중심축을 따라 중문?탑?금당?강당 등이 차례로 배치되고, 중문과 강당 사이의 마당을 둘러싸며 회랑이 조성되는 배치형식을 기본으로 하였다.
이러한 배치형식은 통일신라시대를 지나면서 감은사나 불국사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이전의 단탑單塔에서 쌍탑이 있는 사찰로 바뀌게 된다. 또한, 이 시기에는 화엄사상과 선禪사상이 중국에서 전해지면서 사찰은 도시뿐만 아니라 산간에도 세워지게 된다.
산지 사찰은 경사진 산지의 지형조건에 맞는 배치를 하며 종전의 회랑으로 둘러싸인 사찰배치 규범에서 벗어난다.
이러한 사찰배치는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 중기를 지나면서 한국 특유의 사찰 배치형식으로 정착하게 된다.
이 시기의 사찰은 중심 불전이 사찰 영역 제일 뒤로, 누각이 중심 불전 앞으로 오게 된다. 삼국시대에는 중심 불전인 금당이 사찰 중앙에 놓이고, 강당이 금당 뒤에 있는 형식이었으나, 이 시기가 되면 강당이 중심 불전에 합쳐지거나 없어지고, 그 앞으로 누각이 들어서게 되며, 사찰 진입로가 더욱 길어지게 된다.
길다란 진입로를 따라 사찰 입구에서부터 차례로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 등 산문들이 세워지고, 그 뒤로 누각과 중심 불전이 차례로 오게 된다.
이러한 사찰에는 평지 사찰에 조성되던 회랑이 없어지고, 그 대신 석축으로 조성된 단이 사찰 공간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리고, 사찰을 구성하는 중심부의 전각들은 마당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배치된다.
특히, 17세기와 18세기 전반기에 걸쳐 임진왜란으로 불에 탄 건물들을 복구하면서 이루어진 사찰들의 배치와 공간구성은 오늘날 한국 사찰건축의 특성을 결정짓는 것으로 정착하게 된다. 이 시기가 되면 종파에 의한 사찰 배치의 특징은 약화되는 반면, 거의 모든 사찰들의 중심 불전 앞 마당이 사찰의 중심공간을 형성하게 되며 그 좌우로 요사와 선방이 자리잡고, 마당 앞으로는 누각이 조영된다.
그리고, 규모가 큰 사찰은 몇 개의 마당이 중첩되어 배치되며, 사찰 중심 불전의 내부공간은 예불과 집회 또는 설법을 위하여 확장되고, 또 장식이 많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해인사는 이러한 사찰 배치형식의 특성을 보이는 대표적인 한국 불교사찰 중의 하나다.
해인사는 802년(신라 애장왕 3년) 순응?이정 스님에 의해 창건된 이후 통일신라 말기에 희랑 스님에 의해 중창되고, 조선 태조 때에 고려대장경판이 사내로 옮겨지면서 이를 봉안할 판전이 만들어졌다.
세조 때에는 판전이 비좁고 허술하여 다시 짓게 되고, 성종 때인 1481년에서 1488년 사이에는 많은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사찰 경역이 확장된다. 임진왜란 이후 해인사는 일곱 차례의 크고 작은 화재를 당하지만 사역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겸재 정선(1675-1759)과 그의 제자 김윤겸(1711-1775)이 그린 해인사전경 그림을 보아도 배치 형식은 지금과 크게 흐트러진 것이 없고, 다만 건물 규모나 모양이 다른 점이 보일 뿐이다.
현재 해인사에 건물들이 들어선 땅은 남북으로 약 300m, 동서로 약 150m가 되는 크기다.
해인사를 형성하는 건물의 배치모습을 파악하기 위해 창건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 전각들의 위치를 추정해 보고, 이와 함께 해인사 배치의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해인사는 지금의 대적광전 자리를 중심으로 사찰이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대적광전 자리에는 금당인 비로전을, 금당 앞 마당에는 삼층석탑을, 금당 뒤로는 강당을 지금 판전 일곽 자리에 앉히는 건물 배치를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가 되어 강당의 기능이 약화되면서 강당 자리에는 경판과 고려실록을 봉안하는 건물이 들어서고, 금당인 비로전을 키워 예불 및 설법공간으로 사용하였을 것이다.
그 후 조선 시대에 들어서서 팔만대장경판이 해인사로 옮겨지면서 판전 일곽을 확장하고, 곧이어 비로전 명칭을 대적광전으로 바꾸고, 그 앞과 주변으로 많은 전각들을 건립하여 사찰 규모를 확장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함께 일주문, 불이문, 해탈문 등 산문을 세워 사찰로 들어오는 진입로를 길게 만들고, 동시에 대적광전 앞에 구광루를 조영하였을 것이다. 특히, 산문들과 구광루가 들어서면서 해인사는 사찰 외곽에서는 건물들이 가려지지만, 사찰 경역 안에서 밖을 내다볼 때는 주변 자연과 산세가 한눈에 들어오도록, 앞으로 트인 사찰공간이 조성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찰공간은 엄마의 품 속 같은, 자궁 속 같은 아늑한 형국을 형성한다.
해인사 경내를 찾는 사람들이 누구나 그 속에 발걸음을 들여놓는 순간 한 번쯤은 접한 적이 있었던 듯한 무척 자족스럽고 안온한 분위기를 느끼는 것도 해인사가 이러한 공간을 형성하며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해인사의 이러한 공간적 특성은 사찰을 진입할 때 잘 읽혀진다.
해인사 일주문에서 시작하여 안으로 들어가면서 조금씩 경사지며 올라가는 좁고 긴 진입로는 그 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긴장감을 주며, 봉황문 앞의 어느 정도 트인 공간과 약간 왼쪽으로 구부러진 길, 그리고 해탈문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은 사찰을 찾는 사람들로 하여금 탈속의 과정을 빠르게 느끼게 한다. 해탈문을 지나 그 앞의 너른 마당에 다다르면 올라가는 공간은 잠시 멈춰지고 어느 정도 평정을 찾게 되지만, 다시 맞은편에 선 구광루를 오르면 상승의 정도는 더 커지면서 드디어 공간의 느낌이 절정에 이르는데, 이 곳이 정중삼층석탑이 있는 가운데 마당이다.
이 삼층석탑을 오른쪽으로 끼고 마당을 지나 높은 석축에 난 계단을 오르면 해인사의 중심 불전인 대적광전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적광전 뒤 축대 위 공간에 고려대장경판을 모신 판전 영역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진입로는 계속해서 왼쪽으로 조금씩 꺾이며 나 있는데, 그 때마다 마당 주위의 건물들과 그 주변공간은 역동적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몇 개의 마당들과 그 주위로 배치된 건물들이 켜를 이루며 중첩되는 배치형식을 이루고 있고, 그 사이의 공간은 계속해서 상승하며 전개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치형식은 공간이 켜를 만들며 중첩되는 독특한 배치형식으로서 해인사 건축배치와 외부공간의 특성이기도 하며,그것은 곧 깨달음의 과정과도 통한다.
건물들이 자리잡은 이러한 건축 외부공간을 전체로 얽어 주며 영역을 형성하는 것이 일주문에서 시작하여 봉황문과 해탈문을 거쳐 마지막 판전에 이르는 진입로인 중심축이다.
이 중심축선을 따라 단이 조성되고 문들이 놓이며, 그 사이로 축을 이어 주는 넓게 비워 둔 마당들이 있고, 마당 주변으로는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이러한 배치는 해인사가 우리 나라의 많은 사찰들 가운데 두드러진 외부공간을 형성한 사찰이 되게 하였는데, 이 배치 축은 실은 해인사 아래 홍류동 계곡에서 시작하여 판전 뒤 가야산 정상까지 이어진다.
이렇게 배치된 해인사의 건물들은 진입공간, 수도생활공간, 예불공간, 법보공간으로 크게 나뉘어 자리잡고 있다.
진입공간은 일주문ㆍ봉황문ㆍ해탈문 등으로, 수도생활공간은 구광루ㆍ궁현당ㆍ심검당ㆍ 경학원 등으로, 예불공간은 대적광전ㆍ명부전ㆍ 응진전ㆍ삼성각 등으로, 법보공간은 법보전ㆍ수다라장 등 판전 건물들로 각각 구성된 공간이다.
이 공간들은 사찰 배치 축과 단의 높이에 따라 위계를 가지고서 해당되는 곳에 차례로 자리잡고 있다.
진입공간은 일주문에서 해탈문까지의 공간으로써 제1단인 하단을, 수도생활공간은 구광루에서 제2단인 중단을, 예불공간은 대적광전에서 제3단인 상단을, 그리고 법보공간은 보안문에서 제4단을 형성하고 있다.
제1단은 재가공간, 제2단은 스님공간, 제3단은 부처님공간, 제4단은 상징공간에 속한다.
이러한 해인사 가람 배치는 일주문에서 해탈문까지의 공간은 욕계, 구광루를 지나 형성된 정중삼층석탑 일곽은 색계,법당인 대적광전과 그 주변 일곽은 무색계의 삼계를 나타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는 각각 하단, 중단, 상단에 상응한다.
이러한 사찰배치는 그 자체로써 거짓 없는 참다운 불법의 세계를 구현하고자 건물을 세운 염원의 결과다.
건축에서 ‘아름다움’의 세계란 곧 ‘진眞’의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고, 수행하는 스님들에게는 진리와 일치하는 세계를 뜻하기도 한다.
이 진리를 건축으로 형상화하는 일은 바로 각 시대마다 건물을 중수하였거나 신축한 스님들과 장인들의 과제였을 것이다.
진여세계眞如世界의 형상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법열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고, 이는 곧 아름다움의 세계를 구현하는 길이다.
해인사는 이러한 시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건축과 공간을 지니고 있다.
한국의 불교사찰 건축을 알기 위해서는 건축에 반영된 불교사상에 대한 이해, 주변 산수와 자연환경조건에 대한 이해, 터를 선정하고 건물을 앉힌 방식에 대한 이해, 그리고 건물을 조영하는 데 반영된 정신과 시대성을 이해해야 한다. 해인사도 마찬가지다.
이제 이러한 사항들을 하나씩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