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은 공양을 마치고 나면 꼭 먼저 뒤란으로 돌아갔다.
돌배나무 아래에 박힌 반반한 돌 위에다 두어 손가락 만큼의 밥덩이를 놓기 위해서였다.
밥 덩이를 놓고 가면 도토리나무 그늘에 숨어 있던 잿빛털의 토끼 한 마리가 살금살금 다가와 그 밥 덩이를 먹곤 하였다.
스님은 그 토끼를 화엄이라고 불렀다. 돌 위에 밥 덩이를 놓고 나서, “화엄아 공양해라.” 하고 도토리나무 숲을 바라보곤 했던 것이다.
“참 기특하기도 하지. 혼자 다 먹지 않고 나누어 먹을 풀 알다니 음식을 나누어 먹은 공덕으로 내생에는 부디 윤회의 사슬을 끊거라.”
돌 위에 흩어진 밥알을 먹기 위해 날아온 새들을 보고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는 그 토끼를 칭찬하기도 했다.
아무튼 화엄이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암자를 찾아왔다. 스님 역시 하루도 거르지 않고 화엄에게 밥 덩이를 공양했다.
그러던 겨울 어느 날이었다. 폭설이 며칠째 내리던 날이었다. 산길이 먼저 눈에 덮여 없어졌다.
스님이 걱정했던 대로 화엄이도 발길을 끊고 나타나지 않았다. 화엄이 뿐만 아니라 검둥이 다람쥐도 새들도 볼 수 없었다.
스님의 걱정도 눈처럼 쌓여갔다. 암자에서만 하루 종일 앉았다 누웠다 하면서 망연자실 내리는 눈을 바라보았다. 며칠 후에는 양식이 바닥나 쫄쫄 굶어야 할 형편이었다.
“이러다가 봄이 될 때까지 암자에 갇히게 될지도 모르겠구만. 화엄이가 나타나지 않은걸 보니 굉장한 눈이야 이럴줄 알았으면 겨울 동안의 양식을 미리 준비 해둘걸. 지금 선재 고모는 얼마나 애를 태우고 있을까.”
스님은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잠을 못 이루었다. 그러나 눈에 묻혀 산길이 끊어져버린 후라서 속수무책이었다.
선재 고모의 근심 또한 대단했다. 매일매일 안절부절이었다. 선재 고모부가 운명했을 때 암자의 스님이 사십구재의 독경을 해주었던 바 그 은혜를 잊지 못해서 더욱 허둥대었다.
“너도 잘 알지 않니 ? 보름마다 스님 양식을 가져가기로 한 것 말이다.”
“눈이 내려서 그런걸 어떡해요 아마 다른 신도들이 눈 내리기 전에 스님 드실 양식 이것저것 많이 갖다 놓았을 거예요”
“아니다. 암자를 다녀와야 마음이 놓이겠어. 이번엔 너도 함께 가자.
“고모님, 무슨 말씀이세요? 암자로 가는 산길이 얼마나 위험한 낭떠러지 길인데요, 더구나 지금은 눈이 덮여 어디가 걸인지 허공인지 분간할 수도 없을 거예요”
“그런 염려 마라. 그 길 말고도 암자 가는 길이 또 있어.”
사실, 선재 고모는 낭떠러지 길보다 두세 배나 먼 길이지만 그래도 덜 위험한 산길을 하나 알고 있었다. 스님이 고사리를 끊어주면서 가르쳐 준 적이 있었다.
“선재야 무사할게다. 그 길로 가면.”
“그 길이라뇨?”
“산길을 하나 알고 있어. 그러니 같이 가자꾸나. 이제는 옛날 같지 않아. 무엇을 들고는 멀리 못 가겠어. 힘이 들어서….”
할 수 없이 선재는 고모를 따라 나섰다. 아내를 대신 보낼까 하다 속이 보일 것 같아 눈 찔끔 감고서 배낭에다 양식을 넣고 따라 나섰다.
큰절까지 가는 데는 아무것도 거철 것이 없었다. 기차와 버스가 거기까지 안전하게 실어다 주었다.
문제는 큰절에서 암자로 가는 길이었다. 생각했던 대로 엄청난 눈이었다. 나무들이 상체만 드러내놓고 있었다. 선재 고모는 집을 나설 때와는 달리 기세를 누그러뜨렸다.
“엄청 내렸구나. 도대체 나무들이 저렇게 고개만 내밀고 있으니.”
“거 보세요.”
“어디다가 발을 내디뎌야 할지 막막하구나.”
“그러니 큰절에서 쉬었다가 돌아가는게 낫겠어요”
“아니야. 관세음보살님이 길을 가르쳐 주실거다. 자, 합장을 해봐라. 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
선재는 실망한 채 코웃음을 쳤다. 비록 합장을 시늉으로 하고있지만 고모의 억지가 새삼 딱했다. 아, 저 노인에게는 망령이 드는 것일까. 고모부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마음이 더욱 허해져서 그런지도 모르지.
“저 삼나무 뒤로 돌아가면 되는데.”
“고모님, 그만 단념하세요.”
그래도 선재 고모는 계속 합장을 한 채 기도를 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그런데 바로 그때, 토끼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러더니 선재 고모가 가리키는 나무 뒤로 갔다가 돌아왔다.
잠시 후 다시 한번 똑같은 동작을 되풀이했다. 순간, 선채 고모의 얼굴에 주름살이 펴졌다.
“봐라. 저 토끼가 길을 가르쳐 줄 것이다. 자, 토끼를 따라가 보자.”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선재와 선재 고모는 토끼가 낸 발자국을 쫓아서 올라갔다.
“맞아, 이 길이 내가 찾던 길이다.”
선재는 여전히 믿어지지 않아서 입을 푹 다문 채 걸었다. 얼마쯤 눈 위를 걸었을까. 암자 추녀 끝이 삐죽 나타났다. 이제 토끼는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스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엄아!”
문득 선재 고모는 언젠가 스님한테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아이구, 내가 깜박했었구만. 스님이 산중 암자 식구라고 말씀했던 그 토끼였구만. 아까 그 토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