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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어디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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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통신 - 정문태 1991년 04월 110호
대만과 일본 사이의 디아유따이 영토분쟁을 둘러싸고, 일본 군국주의를 거부하는 포스트가 나붙어 있다.

검은 살갖, 파란 눈, 노란끼 띤 사람들이 뒤죽박죽 흘러 다니는 틈 새로 회교옷 걸친 총각, 힌두치마 두른 색시, 뚱뚱한 수녀님, 늙어 비틀어진 스님이 자연스레 마주치고, 가슴팍 드러낸 계집아이, 우락 부락한 젊은 놈, 지팡이 짚은 할머니, 코흘리개들이 한껏 뽐내며 지나는가 하면 철가림 없는 뜨내기들의 짧은 소매, 털 웃도리, 반바지, 여우 목도리가 마구 뒤섞인 홍콩의 거리.기껏 1,062km 땅덩이에 어림잡아 115개 나라 사람 5백만이 모여사는 까닭에 홍콩은 마치 ‘임종 표본실’처럼 보인다.
이처럼 숱한 인종·언어 ·문화·풍습이 범벅된 홍콩을 찾는 이들은 내남 없이 판단의 잣대를 세우지 못해 한동안 애를 먹는다. 흘릴 만큼 시끄럽고 어지러운 곳이 홍콩인가 하면 어느덧 잘 짜여진 질서를 느끼게 하고, 자본주의 때깔을 자량하는 깨끗한 도시인가 느낄 즈음 둘도 없이 더러운 구석에 서 있게 된다.
이어, 중국 사원 앞에 엎드린 사람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일라 치면 최신판 일본 노래가 귀를 때리고 서양식 문화가 온몸을 덮쳐 온다. 하여, 홍콩의 성질을 재빨리 가늠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스스로 영국시민이라 여기며, 편리에 따라 어느새 중국 사람이 되었다가 또 느닷없이 영국 사람으로 바뀌어 버리고 마는 ‘홍콩 사람들(사실은 95%가 이웃한 광동과 푸키엔 지방에서 온 본디 중국 사람들임)’과 부닥치면서부터 낯선 여행자들의 햇갈림은 시작될 것이다.
이러한 홍콩의 길바닥에서 고개를 가우뚱거리는 동안, 한국 사람들은 결코 비웃어 넘길 수 있는 남의 일만이 아님을 뚜렷이 느낄 것이다. 이미 먹거리에서부터 입거리, 살림살이는 물론이거니와 소중한 전통과 문화, 정신머리를 모두 빼앗긴데다 오늘날 정치 ·경제를 비롯한 사회 전체가 제국주의에 짓밟혀버린 우리의 현실이 홍콩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자원이 몹시 부족한 홍콩은 일찌 감치 자유로운 중계무역을 통해 가꿔진 도시이자 중국대륙을 넘나드는 동·서의 교통지로 자리잡은 까닭에 도시 전체가 커다란 시장꼴을 하고 있다. 따라서 홍콩시장에는 세계 각지의 사고 팔 수 있는 모든 물건들이 모여지고 있으며, 값싼 물건들이 나돌 수 있게끔 하는 자유로운 무역정책과 홍콩사람들의 빼어난 상술로 엄청난 관광객들이 줄지어 몰려오고 있다.
때문에 홍콩은,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 보면 제아무리 검소한 사람들도 무엇인가를 사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고, 마침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진열대 앞에 발길이 멈춰지고 어느덧 상점에 들어서게 되는 기막힌 마력을 지닌 곳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물밀듯이 몰려드는 한국 관광객들을 끌기 위해 곳곳에 한국말 간판을 대 걸고 점원들이 제법 그럴싸한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오곤 한다. 자칫 이들의 인사 치레에 우쭐해지거나, 마치 한국에 대한 이들의 인식이 대단한 것으로 착각해서는 큰일이다. 불행히도 홍콩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지식은 이를테면 ‘한국 남자들은 여자들을 함부로 대하고, 마구 패고------’라는 부끄러운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홍콩에서, 겉보기에 넘어가거나 물건이 싸다는 남의 얘기를 믿고 덤썩 덤썩 닥치는 대로 물건을 사들이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선남선녀들이 가짜와 진짜를 구별할 수 있다는 얘기를 나는 적어도 홍콩에서는 들어본 적도 없거니와, 누가 뭐래도 절대로 믿지 않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말을 덧붙이자면, 홍콩의 한국 사람들이 운영하는 상점이라 믿고 어떤 가소로운 감상에 젖어 지나치게 물건을 사들인다면, 이 또한 머지않아 결국은 한 핏줄을 미워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돈벌이’만을 최고의 가차로 여기는 홍콩 사람들의 생각과, 그들의 철저한 상업환경을 절대로 우습게 보아서는 아니 될 줄. 예를 들어, 홍콩을 찾는 사람들이라면 빠짐없이 한번쯤 둘러보는 옥(玉)시장 안의 여러 손수레에는 우리 돈 몇 백 원짜리부터 몇 만원을 웃도는 갖은 옥들이 뒤섞여 나 뒹굴고 있다. 여기서, 혹 ‘가짜와 진짜’, ‘상품과 작품’을 가릴 줄 모르는 관광객들이 재미 이상의 뜻을 품고 덥썩 ‘옥’올 집어든다면 가까운 훗날 틀림없이 답답한 가슴을 매만지며 혼자서 꽁꽁 앓기 십상일 것이다.
이렇듯, 홍콩에서는 충동과 욕망을 떨칠 수만 있다면 가능한 물건을 집어 들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모습일 터이고, 그렇지 않다면 물건에 대한 큰 기대나 믿음을 갖지 말고 기념의 뭇으로 한두 가지만 고르는 것이 뒷날 홍콩을 좋게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지혜일 것이다.
이른바 ‘아편전쟁(1839~1842)’ 이라 불리운 싸움 끝에 영국에 먹혀버린 홍콩의 운명은, 그 뒤 힘을 앞세운 제국주의의 세계질서 재편에 따라 1898년부터 99년간 영국이 마음껏 쓸 수 있는 직할 식민지가 되었고, 이제 그 조차기간이 7년 남짓한 오늘에 와서는 모자라는 자본을 긁어 모으기 위한 사회주의 중국의 정치 ·경제적 현실과 맞물려 있어 앞날을 쉽게 내다볼 수 없는 실정이다. 때문에 시민들의 관심거리가 자연히 ‘1997년’으로 쏠려 있는 가운데, 홍콩의 대형 자본들이 속속 안전지대로 빠져나가고 있으며, 이에 따라 거의 모든 자본가들이 돈을 챙겨 미국·캐나다 등으로 떠나고 있어 그렇지 못한 시민들의 위기감이 돋아나면서 여기 저기 매우 어수선한 흔들림을 느낄 수 있다.
요즈음 홍콩에서는, 틈틈이 열리는 이민을 위한 설명회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음을 예사롭게 보아 넘길 수 없고, 이러한 물결에 따라 이민 대행 업체들이 한몫을 보고 있기도 하다.
한편, 홍콩의 시민들이 지금껏 영국 시민이라 자부하며 살아、온 현실과는 달리, 홍콩 시민들이 그토록 바라는 영국 본토로의 이전이나 이민은 거의 불가능한 실정 이어서 마침내 홍콩 시민들은 배신감과 울분을

감추지 못하고 서서히 폭발점으로 치닫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상황을 눈여겨 보면서, 이기적인 제국주의의 속성과 황금의 논리 앞에 침묵해 온 식민지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씁쓸하게 느낀다.
다른 한편, 홍콩을 기웃거리다 보면 홍콩 정부의 비민주적이고 권위적인 자세에 대하여 뜻 있는 홍콩 사람들이 연일 성토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체국 노동조합에서는 조합원의 불법해고에 맞서 건물마다 대자보를 붙여 놓았고, 시민들의 휴식처인 ‘차터공원’에서는 반민주 악법폐지와 인권회복을 위한 시민집회가 열리고 있다.
약 1백여 명이 외롭게 모인 이 집회에는 취재진 50여 명이 열띤 취재를 벌일 뿐, 이들 이외의 홍콩 사람들은 아무도 자신들의 일로 여기지 않고 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집회 참가자들의 외침마저 그다지 절박하게 들려오지는 않는다. 더구나, 집회를 알리는 노래나 시민들이 연좌농성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가! 어이없게도 영국 민요인 ‘올드 랭 사인’에 노랫말을 바꿔 부르는 정도이고 보면 이들의 외침이 오히려 한가롭게 여겨진다.
마찬가지로, 일본과 대만 사이에 ‘디아유타이’라는 섬을 놓고 벌어진 영토분쟁에 분노하며 ‘타도 일본 군국주의’라 적힌 벽보가 모퉁이마다 어지러이 나붙어 있고, 일본 자본의 상징인 소고 백화점 앞에서 반일시위가 벌어지고 있으나 역시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되고 만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이처럼 법석을 피우던 취재진의 경쟁이 머리에 뚜렷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홍콩의 현지 언론들은 영국 왕실과 웃음 흘리는 공주님의 움직임만 쫓고 있을 뿐 결국 자신들의 문제에는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만다. ‘시민들과 언론의 이러한 무관심에 대해 그래도 대학은 다르겠지’ 하면서 찾아 본 홍콩 대학은 온통 디스코 잔치를 알리는 그림들로 뒤덮여 있다. 샅샅이 뒤진 학교 안에서 겨우 몇 장의 반일 포스터가 눈길 피해 붙여진 꼴을 바라보며 홍콩의 앞날을 가늠해 본다.
이처럼 홍콩 사람들의 철저한 상업적 이기주의가 도시 전체를 감도는 가운데, 다른 한쪽에서는 여전히 공룡처럼 거대한 건물들이 새로 만들어지고 있어 홍콩의 대형 자본유출이 선뜻 믿기지 않을 수도 있으나, 그 속살을 뒤집어 보면 서양 자본이 빠져 나가고 있는 틈을 비집고 오히려 일본 자본이 물밀듯이 흘러 들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홍콩을 두고 어떤 이는 민족이나 국가의 이념을 뛰어 넘은 미래의 국제주의 경제의 훌륭한 본보기로 받들어 모시기도 하나, 뿌리 패인 사람들이 살아가는 땅 홍콩에 어두운 역사의 그림자는 짙게만 드리워진다.
결코 구세주가 아니었음이 하나 둘씩 밝혀지고 있듯이, 새로운 자본투자에 열 올리고 있는 일본 또 한 홍콩 사람들에게 보라 빛 낙원을 안겨 다 줄 천사가 아님은 말할 나위도 없다. 제 아무리 그럴싸한 국제주의를 외치면서 홍콩의 앞날을 얘기하더라도, 분명 홍콩은 영국으로부터도 일본으로부터도 처절하게 당했던 피의 역사를 지워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억울하고 처참한 역사의 혼을 달래기는 커녕, 구덩이에 마구 파묻고 세워진 홍콩의 건물들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 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할 일이다..
이제라도 핏빛 역사를 깨끗이 씻어내고, 다시는 남에게 먹히지 않게 정신을 가다듬는 일이 바로 홍콩의 밝은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하나뿐인 걸임에 틀림이 없다.
1977년 영국에 의한 식민통치가 끝나면서, 비록 몸뚱아리는 본디 중국으로 되돌아갈 터이지만 온갖 슬픈 역사를 안고 있는 홍콩은 또 어디로 흘러만 갈 것인지.
오늘날, 자본주의가 빚어낸 최고의 걸작품이라 일컬어지는 홍콩 구석구석에는, 갈 곳 잃은 늙은이 들과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무리들의 넋나간 눈동자가 애처롭게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끝끝내 중국으로의 통일을 마다하는 홍콩 사람들의 안타까운 한숨 넘어, 언제나 우중충한 도시 홍콩 하늘에 희미한 가량비가 흩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