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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대장경 봉정식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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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조성춘 2001년 04월 230호
행사장에서 대형사찰이 은연 중에 사세를 과시하려고 하거나, 신도와 스님을 계급화하려는 자리배열이 옥의 티였다.
삼귀의 · 사홍서원 역시 서양풍보다는 범패식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성철 스님 다비식 이후 고려대장경 전산화본 봉정식 만큼 큰 법회에 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정성으로 이루어졌던 팔만대장경이 디지털 시대를 맞아 750년 만에 전산화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크나큰 감동이었다. 다만 그 자리에서 행사 진행을 지켜보면서 느꼈던 몇 가지 아쉬움은 몇 달이 지났는데도 머리 속에서 떠나가지 않는다.

사부대중이 올림픽 펜싱 경기장을 가득 메웠는데 ‘서태지 공연 이후에 가장 많은 인파가 모였다’는 멘트는 사회자만의 괜한 너스레가 아니었다. 일만 오천여 명이나 모였다는 큰 법회에서 한목소리로 봉독된 반야심경과 예불은 그 웅장함에서나 장중함에서 정말 감동적이었다. 거기에 비해서 서양음악으로 불려진 삼귀의며 청법가와 사홍서원 등은 어쩐지 한참을 생각해 보게 한다. 서양음악사는 기독교 교회음악이 그 대부분을 차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독교와 서양음악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을 뿐 아니라 그 음악이 기독교 발전에 크게 기여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서양음악이 기독교음악이거나 서양의 음악으로 한정되어 있는 음악이 아니라 세계음악으로 보편화되어 있는 터에 우리 불교계라고 해서 배타적일 이유는 물론 없다. 찬송가식의 찬불가나 오라토리오식의 불교성가곡도 많이 작곡?연주되는 것이 좋다. 다만 오체투지로 삼배를 올리고 반야심경과 예불문이 우리 전통식으로 봉독되는 법회에서 대중이 다 함께 하는 삼귀의나 사홍서원 등은 찬송가식보다는 우리의 범패에 가까운 염불송으로 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고 우리 불교답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내 나이 탓일까? 얼마 전 스님들과 신도 몇 사람이 함께 스리랑카로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그 곳의 여러 절을 참배하면서 삼귀의, 반야심경, 사홍서원으로 간단한 예불을 올리기로 했다. 그 때 삼귀의와 사홍서원을 찬불가로 하지 않고 스님의 선창에 따라 염불송으로 했더니 반야심경과의 어울림이 좋았을 뿐 아니라 현지 사람들에게도 우리 불교의 예불 의식을 잘 보여준 기회였던 것 같아 흐뭇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우리의 옛것은 버릴수록 현대화되고, 서양문화 특히 미국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세계화요, 현대화라는 미신 아닌 미신에 사로잡혀 얼마나 많은 우리 것을 잃었거나 훼손해 버렸는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조차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우리 문화를 어지럽힌 일이 결코 적지 않았다. 우리 전통문화의 보고寶庫인 우리 절(불교)에서만이라도 우리의 옛것을 아끼고,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몇몇 큰절에서 단체로 대거 참여한 것은 법회를 더욱 활기있게 이끌어 가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행여나 소속사찰의 세를 과시하려는 듯한 분위기는 없었는지. 있었다면 그것은 불교적인 것은 아니지 않았을까 하고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많은 절에서 경쟁하듯 이루어졌거나 이루어지고 있는 불사들 중에 더러는 필요 이상으로 외형만을 크게 하여 내용에 비해 세를 과시하려는 듯한 일들을 흔히 보아 왔기에 생긴 노파심이리라.
우리의 절에서의 일만이 아니라 우리 나라 경제 전체가 외형의 크기에 너무 매달리다가 결국은 거품경제를 이루게 되어 버린 것도 맥을 같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한국 불교가 크게 융성했을 때마다 대규모의 불사가 행해졌던 과거의 역사에 비추어 본다면 염려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반가운 일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못함은 나의 소심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좀더 알맹이 있는 믿음, 알맹이 있는 공부가 가득한 불교가 되어지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끝으로 한 가지만 더 생각해 보기로 하자. 행사장인 펜싱경기장의 원형 계단식 관람석에는 의자가 모자라 복도까지 신도들로 채워져 있었고 가운데 경기장 바닥에는 많은 자리를 스님들이 일반인들과는 격리된 듯 정연히 자리하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는 순간 나는, 참석자의 좌석배치가 저렇게까지 스님과 재가자를 양분해서 이루어져야 했던가 하는 아쉬움을 느꼈다. 스님과 신도가 함께 어우러져서 그야말로 사부대중이 화합하는 모습이 아쉬웠던 것이다. 우리 불교계에서 스님과 신도와의 관계가 ‘권위와 순종’이라는 비불교적 관계로 전락하여 계급적 분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를 시정하려는 노력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평소의 생각이 여기에서 또 겹쳐졌다.
절에서 스님과 신도가 공양하는 모습에서도 이러한 느낌을 갖게 하는 절이 한두 곳이 아니다. 마치 신도들이 절에서 탁발(乞食)하는 듯한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기에 하는 말이다. 또 어떤 절에서는 화장실에 ‘스님용’ 화장실을 지정하여 일반인의 사용을 통제하는 곳도 있다. 일반 대중이 쓰는 화장실은 남녀용의 구분만 있으면 충분한 것이 아닌가.
이러한 계급적 분화는 기본적으로 삼귀의 중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에서 비롯된다. 귀의처와 귀의자의 관계란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도들은 끊임없이 귀의승(스님)의 교육을 받고 스님(三寶)을 비방함은 오역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가르쳐진다. 그럴수록 ‘권위와 순종’의 관계는 더욱더 깊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삼귀의에 이어 예불문에서는 “지심귀명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승가야중”이라고 하여 귀의의 대상이 스님에서 승가로 바뀐다. 승가란 사부대중의 신행공동체로 알고 있기는 하나 스님(僧)과 승가의 다른 점과 같은 점이 어떤 것인지 아마추어 불자로서는 자세히 알지 못하여 부끄럽고 답답할 따름이다. 느낌으로는 스님들은 승가에 귀의하고, 재가 신도들은 스님들께 귀의하는 것으로 이원화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이원화란 결코 바람직한 것은 못된다.
최근에 출가와 재가의 관계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니 하루 속히 바람직한 관계가 정립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다만 이 논의의 과정에서 집단이기주의 같은 민망한 일만은 없기를 빌 뿐이다.
큰스님의 몽둥이를 몇 대나 맞아야 할 횡설수설을 늘어놓았다. 자비로 거두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