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가지마다 남도(南道)의 봄빛이 잦아들고 대숲으로 수런수런 훈풍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길을 떠나고 있다.
버들가지를 부풀리던 도랑물은 도란도란 계집애들처럼 지줄되면서 얼어 붙었던 폼을 풀며 실개천을 돌아나가고, 부용산 산마루에 걸려 있던 구륨은 혼적도 없이 맑으니 오늘은 어느 영(體)에 한가로이 머무는 것일까? 아무리 길 떠나도 자취를 남기지 않는 바람처럼 우리들 생(生)의 여로는 언제쯤 자유롭게 사바의 고해(苦海)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아침마다 영혼을 맑게 씻어주던 수각의 물 흐르는 소리-고뇌와 욕념으로 차 오르던 나의 미망과 번뇌의 물결은 개울물을 따라 흐르다가 그 흐름의 자취는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종래에는 저 넓은 바다의 시퍼런 등어리가 되어 윤회하는 가여운 목숨이나 되고 있을 그 흐름들-------
아침 안개에 젖은 산수유꽃을 보고 있노라면 바람처럼 물처럼 행운유수(行雲流水)의 길을 떠나고 싶다.
어느 해 이른 봄날 훌쩍 동백을 보러 떠났던 오동도나 매화향기를 따라 두륜산(頭輪山)을 찾았을 때처럼 진한 목숨들이 토해 놓은 정결한 혼(塊), 꽃향기만을 생각하면서 모든 일들을 놓아버리고 맹목적인 계절의 찬미자가 되었을 때처럼 그렇게 훌쩍 떠나보고 싶은 것이다.
아뿔사, 어찌 훌쩍 떠남만이 관행이라 할 수 있으리요. ‘떠나도 떠나도 머문 그 자리요, 머물러 수천변 머물러도 떠난 그 자리’라고 우뢰와 같은 「화엄경」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노라면 만행이란 떠남만도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보면적으로 만행이란 남쪽으로 남쪽으로 53선지식을 찾아서 떠났던 선재동자처럼 진려를 향한 구법행각이나, 보살이 육도(六度)에서 허덕이고 있는 중생들을 갖은 방편으로 교화하는 것을 만행이라 이름하여 왔다.
언젠가 사천 다솔사의 누각에서 추사선생의 글씨 가운데 ‘유천희해(遊天戰海)’라고 쓴 글씨를 본 적이 있다. 임운동둥한 자유로움이 한획 한획마다 뛰놀던 글씨. 하늘을 나는 봉(鳳)처럼, 바다를 희롱하던 곤(願)처럼 삶의 크기가 그쯤은 되어야 가히 만행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저 신라의 성승(聖增) 원효대사처럼 바가지를 두들기며 서라벌의 저자거리에서 무애춤을 한바탕 흐드러지게 추면서 자유자재로 교화방편을 펴던 만행과, 세조의 설법 청을 거절하기 위해 감히 똥통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설잠 김시습의 기행쯤 되어야 만행이라 할 것이라는 생각 또한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해 걸망 하나만 달랑 가지고 떠났던 인도여행에서 부처님의 행로를 따라 걸으면서 진정한 만행인은 바로 부처님 자신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던 기억이 새롭다.
부처님은 중생을 위해 일생을 만행으로 끝마치신 분이셨다. 길에서 나고 인생의 진정한 길을 깨달으시고 길을 따라 교화하시다가 길에서 돌아가셨으니 부처님만한 도인(道人)이 또 있단 말인가!
그분 교훈에 한 나무 그늘에 삼일을 머물지 말라고 하신 것만 보아도 그분이 얼마나 철저히 만행하셨는가는 알 수 있는 일이다.
흔히 불교에서 위법망구(寫法忘騙)라는 말을 쓰지만 살인적인 더위 속에서 인도의 한 여름을 여행해 보지 않고는 감히 그 말을 쓰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 얼마나 그 더위가 살인적이며 고통스러운지 감히 목숨을 내놓지 않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지난(至難)한 일을 부처님은 하셨던 것이다. 물론 부처님께서 부귀영화를 버리고 수행의 길을 떠나심도 범인의 상상을 초월하지만, 깨달음을 얻고 난 뒤 200km가 넘는 부다가야에서 베나레스까지의 전도행(傳道行)은 가히 만행의 극치요 표본이었다.
그 인도여행에서 땀이 소금이 되어 말라붙은 잠방이를 매번 벗을 때마다 인간 삿다르타는 왜 왕궁을 버리고 이 고난의 길을 걸어갔을까 하고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나 참을 따르는 일은 형극의 길이며 옳은 것을 따르는 것은 고난의 길일진대 부처님은 왜 쉬운 길을 가지 않고 그 어려운 길을 걸어가셨을까?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만연하고 있는 물질만능과 이기주의와 현실위주의 가치관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물음은 곧 나 자신을 향한 물음이 있으며 동시에 세계를 향한 물음이기도 했다.
두번째 만행에 관해서 떠오르는 만행다운 만행은 중국(中國) 구법승(求法增)의 이야기들로 그 대표적인 인물이 당나라시대에 살았던 현장(玄뿔)스님이시다. 스님이 남긴 구법행각기인 「대당구법서역기」는 고난의 기록이자 인간승리의 기록이며 동시에 한편의 대 파노라마이며, 불교인이라면 필독의 서적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물론 후대에 상당히 흥미와 재미를 가미하여 만든 소설 「서유기(西遊記)」는 많이 얽히지만 그 내용이 너무나 과장이 심하고 비현실적이어서 일종의 괴기소설처럼 취급되고 있는 실정인 바, 그 원전인 「대당서역기」를 통하여 구법만행의 표본으로 삼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사실 현장법사가 끼친 불교사의 영향은 중국불교사 속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어야 마땅하지만 선종사(輝宗史)에 밀려 늘 소홀하게 취급당해 왔음이 사실이다.
나는 「대당서역기」를 읽으면서 두번이나 울었다. 첫번째는 현장스님의 구법행이 너무나 거룩해서 울었고, 두번째는 위대한 선배들에 비해서 현재의 불교가 너무나 땅에 떨어져 있음을 한탄하면서 울었던 기억이 새롭다.
역사적 사실은 언제나 많은 감동을 준다. 특히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스님들의 행적은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흔히 대승경전의 보살행원들이 너무 초인적이어서 현실감이 없고 따라서 인간적인 감동이 덜하다면, 역사 속에 생존했던 스님들의 생애는 훨씬 생명력이 있고 감동적인 경우가 많다.
언젠가 나에게 중국여행이 허락된다면 현장스님이 걸으셨던 길을 따라가보고 싶다. 「대당서역기」의 감동을 되살리면서 위법망구했던 역사의 현장에서 나역시 만행(漫行)을 떠나보고 싶다.
세번째 구도행각(求道行斷)으로 만행이라 할 반한 것으로 우리나라 고려시대의 의천 대각국사의 행적이다.
스님은 문종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1l세 때 영통사에서 문종의 외삼촌이며 왕사인 난원국사에게서 축발한 이후 19세에 경 ·율 ·론 3장(三藏)에 대한 해설서 연구서인 교장(銀藏)을 수집할 것을 발원하였는데 대세자집교장발원소에 의하면, 제자 의천은 지극한 정성으로 목숨 바쳐 본사이신 석가여래-----등 일체 현성께 귀의하오며 삼가 비옵나니 원하는 바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바 진리를 펴 심은 참되고 영원불변의 경지를 홀로 즐기시는데 그칠 수 없으므로 형상 아닌 형상을 구름처럼 일으키셨고 큰 자비로 중생에게 말씀해 주시지 않을 수 없으므로 말을 여읜 말로 바람처럼 경계하셨나이다. ------이제 정법이 쇠퇴하고 중생들의 근기가 점점 둔해지며 네 가지 의지할 선지식〔四依〕이 간간이 출현하여 소(鏡)를 지어서 교리를 현양하고, 삼장법사가 출현하여 간략하게 간추린 초(妙)를 만들어서 소를 보좌함으로써 세상에서 무성하게 받들어 행하게 한다면 이것이 실로 한 시대의 할 일〔‘代之能事〕을 다했다 할 것이옵니다.
스님은 속장경 간행을 필생의 사업으로 확정하고 송나라로의 구법행을 결심하였다. 스님은 오직 구법하기 위하여 귀하신 왕손의 신분으로 몇 차례나 송나라로 가기를 청원하였으나 번번히 왕실에서 허락하지 않았다. 허락이 되지 않자 스님은 선종 2년, 드디어 밀항입송(入宋)하여 화엄종의 정원 ·유성(有誠), 천태종의 종간(從課), 유식 ·법상종의 혜림(慧林) ·선연(善淵), 율종의 택기(澤其) ·원조(元照), 선종의 요원 (了元) 등 53안의 당대 고승 석덕을 두루 참방하여 선재동자의 구도행을 그대로 실천했다.
스님의 송나라의 구법행각은 임존 쓴 선봉사의 비문에 잘 나타나 있는데, “옛부터 바다를 건너 법을 구한 성현은 많았지만 어찌 스님처럼 한번 중국에 와서 천태 ·화염 ·율종 ·법상 ·선종 ·서천법학(西天替學)을 일시에 전하신 분이 계셨겠는가. 참으로 법을 크게 펴는 대보살의 행자”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스님은 비록 왕자의 몸으로 지존하게 태어나셨지만 온몸을 바쳐 불교 홍보를 위해 전 생애를 바친 분이셨다. 험난한 바다를 몸소 건너고 그 당시 일본과 송나라와 거란의 장경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여겼던 분이셨다.
직접 중국에서 3천여 장소(章範)를 가져왔으며 홍왕사에 교장도감(織짧鍵)을 두고 속장경 간행에 온 정성을 바쳤으므로 마침내는 눈병이 나고 건강이 악화되어 세수 47세라는 아까운 나이로 가셨지만 스님이 보이신 구법행각은 길이 본받아야 할 구법만행이므로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위에서 살펴 본 부처님과 현장법사와 대각국사의 구법행각은 가히 만행이라 하여도 조금도 그 의미가 손상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만행의 본보기가 될 만한 것들이다.
옳고 바른 진리를 ‘향해서 자신에게 주어졌던 찬란한 영화를 버리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길을 선택했던 구법행자들. 신라의 원효스님이 발심수행장에서 “남이 하기 어려운 일을 능히 행하는 사람은 부처와 같이 존경해야 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쾌락과 영화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성인으로 존경하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이제 나의 발걸음은 감히 만행이라 하지 않으리라. 헤아릴 길 없는 떠남과 머뭄 속에서 맴돌고 있는 나의 한낱 감성(感性)들. 어찌 그것을 만행이라 할 것인가. 청댓잎 흔드는 소리에도 잠들지 못하는 병적인 내 감성의 버릇을 어찌 만행이라 할 것인가.
적묵(寂默)으로 내려 깔라는 저녁 무렵, 범종소리를 따라 매화꽃잎이 흩어지고 일주문 밖의 길이 저물고 있다. 밖으로 마구 향하던 나의 만행(漫行)길은 오늘은 접어두고 싶다.
오늘은 이 자리에 서서 떠오르는 별을 바라보고 싶다. 온통 진리의 마음으로 자신을 껴안았던 역사의 사람들. 별처럼 영원한 빛을 남겼던 광휘의 이름들. 그들이 남기고 간 고행길을 따라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