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는 않지만 법경(法境)이라고 말할 때는 육경(六境)의 하나로서 제 육의식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구사종에서는 46심소(心所)와 14불상웅법(껴펌應法), 3종 (種)의 무위법(無薦法)과 무표색(無表色)의 64법을 말하 기도 하고, 유식종에서는 널리 일체 만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성(性)이란, 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본연의 성 질 ·성품 ·기성(擬性)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물은 그 자체나 본체에 현상적으로 차별이 되는 상대적 모양 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하여 오온의 색 ·수·상·행 ·식(뽑受想行識)이거나 또는 평등한 진여(質如)를 말하기도 합니다. 본래부터 으레이 고쳐지지 않는〔不變不政)의 성질로서 금(金)의 성질, 화(火)의 성질,물의 성질, 불(佛)의 성질과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법(法)과 성(性)을 함께 붙여서 법성(法性)이 라 하고 범어로는 Dharmata라고 하며 진여(眞如) 실상(實相) ·법계(法界) 둥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화엄정」에서는 때로 법계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범어 Dharmadhatu로 달마다도라 음역하여 세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계(界)는 인(因)이란 뭇이며 법(法)은 성법(聖法)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성법을 내는 것으로 진여(眞如)의 뜻입니다. 둘째로 계 는 성(性)이란 뜻이며 법은 일체 모든 법을 가리킴이니 만유 제법의 체성이 되는 것이므로 곧 법이라 합니다. 셋째는 계(界)는 분제(分齊)란 뜻으로 모든 법의 모양이니 곧 만유제법을 포함한 것입니다.
이러한 법성에 대하여 주로 중국에서는 법계라는 사상이 지배적인 듯이 법계관(法界觀) 또는 법계관문 (法界觀門) ·법계불(法界佛) ·법계삼관(法界三觀) ·법계 신(法界身) ·법계연기(法界緣起) ·법계유심(法界唯心) ·법계정인(法界定티)) ·법계차제초문(法界次第初門) ·법 계체성지(法界體性智) ·법계현경(法界玄鏡) 등의 이름이 보이고 있습니다.
게(偏)란 범어의 Gatha로 가타와 게타라 부르고 12부교(部敎)의 하나입니다. 번역하여 풍송 또는 풍송 ·게송(偏碩) ·조송(週煩) ·고기 송 ·송라고도 합니다. 노래라는 뜻을 가진 어근(語根) Gai에서 생긴 명사로서 가요(歌議) ·성가(聖歌) 동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산문체로 된 경전의 일절 또는 총결(總結)한 끝에 아름다운 글로써 묘한 뜻을 담아 놓은 운문이거나 또 이것을 고기송(孤起煩), 부동게송이라고 하는 것은 본문의 내용을 거듭거듭 말한 중송(휠훌)에 대하여 본문과 관련 없이 노래한 운문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법성게는 항상 변하지 않는 만유 실상의 법다운 자 체의 본성을 노래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법성게를 지은 의상스님은 신라시대의 스님으로 서기 625년에 태어났습니다. 속성은 김씨이고 29세에 황복사로 출가하였습니다. 당나라의 불교가 성함을 듣고 서기 650년 원효와 함께 중국에 가려고 요동까지 갔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되돌아왔습니다. 뒤에 다시 당항포에서 중국에 갈 뱃길을 기다리던 중 원효는 무덤 속에서 자다가 해골에 고인 물을 먹고 일체 유섬의 도리를 깨달아서 당나라에 가는 것은 마음을 깨닫기 위함인데 구태여 다시 갈 필요가 없다 하고 되돌아오고 말았는데, 스님은 당나라에 가서 처음 양주에 었다가 662년에 종남산 지상사 지엄 (智嚴)에게서 현수(홈首)와 함께 「화엄경」올 연구하였습니다.
신라의 사신 김홈순(金혔純)올 당나라에서 가두고 신라를 치려고 하므로 스님이 670년 본국으로 돌아와서 그 사실을 보고하니 왕이 그때 신인종의 명량(明郞)법사를 청하여 기원하고 무사하였습니다.
문무왕 16년(676년)에 태백산에 부석사를 창건하였습니다. 뒤에 현수가 「화엄수현기(華嚴擾찮E)」를 짓고 그 부본(副本)을 의상조사에게 보내면서 감정해 주기를 청했던 편지가 지금도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의상조사는 화엄종의 십찰(十「利)올 짓고 「화엄경」을 널리 전하고자 했습니다. 태백산의 부석사를 비롯해서 원주 비마라사(빠훌羅츄), 가야산 해인사, 비슬산 옥천새 금정산 범어새 지리산 화엄사 둥을 지어서 「화엄경」의 종취를 드날렸습니다. 이 밖에 한주 부아 산 청계사, 전주 모악산 국신사, 삭주 계란산 화산사, 계룡산 갑사, 웅주 기야협 보원사, 공산 미현사 등이 구전되고 있으나 확실하지 않습니다.
신라 성덕왕 1년(서기 702년)에 입적하시니 세수 78 세였습니다.
저서로는 「화엄일승볍계도」, 「볍계품조기」, 「대화엄십문간법관」, 「팔진일승추요」, 「천세구경」, 「백화도량」, 「발원문」 등이 있습니다.
해동 화엄종의 초조라 부르며 체자는 오진(橋홉) · 지통(智通) ·표훈 ·진정 ·진장 ·도융(道願) ·양도(良圖) ·상원(相源) ·능인(能仁) ·의적 (義寂) 등이 유명합니다.
「화엄경」에서의 깨달음은 법성이며 법계며 진여(眞如)인데 부처님을 믿는 이는 수행하는 데 계(械)를 지킬 것이니, 계를 지킴으로 해서 모든 공덕이 갖추어 집니다. 계(械)는 능히 깨달음을 얻게 하는 근본이며, 배움은 공덕을 닦는 대지(大也)가 됩니다. ‘계와 배움에 언제나 수순하여 행하면 이것이 곧 일체 여래께서 칭찬하는 바이다’ 라고 했습니다.
의상스님이 중국에서는 선묘(善妙)와의 설화가 있고 또 신라에 돌아와서는 성을 쌓아 국방을 튼튼히 하고자 할 때에도 ‘비록 위에서부터 믿음을 가지고 청정하게 살면 막대기로 선을 그어도 백성들은 엄히 게 여겨서 함부로 건너 다니지 않는다’고 하며 백성들 이 성을 쌓는 데 부역을 말렸던 일이 있고, 스스로 수행함에 있어 게으르지 않았던 본보기였음은 기억할 일입니다.
「화엄경」에서의 계와 배웅을 철저히 살다간 의상조 사의 법성게는 바로 이러한 자재한 깨달음의 철저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