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가 서쪽에서 온 비밀한 뜻은 문자와는 상관이 없거늘 이제 마음을 배우는 사람들로 하여금 말을 기억하게 하고 쫓아다니게 하는 것이 옳습니까?
“다만 문자와 언어에 집착하여 실답게 참구하지 못 한다면 비록 ‘팔만대장경’올 다 보더라도 오히려 마구니와 도깨비가 되거니와, 만약 본색인(本色人)이 말 끝에 돌아가는 곳을 알아서 정안을 활짝 연다면 거리의 이야기나 제비의 지저귀는 소리도 법을 설하는 소리이거늘 하물며 우리 조사의 직절(直載)하신 경책과 가르침이겠는가?”
철저하게 선 우위의 교판론에 서있는 한 수좌의 이의제기에 대한 스님의 대답이다. 이러한 스님의 입장은 한국불교의 전통적 선교관과 일치한다. 대표적으로 우리는 서산(西山)스님(1520~1604)의 「선가귀감」에서도 스님의 선교관과 같은 견해를 보게 된다.
“말에서 잃어버리게 되면 염화미소가 모두 교적(敎避)이 되고,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 라도 다 교외별전의 선지가 된다.”
위에서 인용한 스님의 말씀이 선교의 차별관을 부정하고 선교일치를 말하고 있음은 분명한 것 같다.
선교의 차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선교일치는 교보다 선을 우위에 두고 보는 사교입선과는 다르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스님은 「금강경오가해」를 현토·간행하고 그 독송을 ‘매양 도반들에게 권하고’, ‘좌선의 여가에 매일 조금씩 강송(講調)하여 여름과 겨울을 보냈던 것이다’라고 그 서문에서 쓰고 있다. 선사가 경을 간행 ·현토했다는 점뿐만 아니라 그 독송을 권유하고 있는 챔으로 보아서 우리는 스님이 선교겸수의 가풍을 보여주고 있는 것A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스님의 회상(會上)에서 수행한 조용명스님은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우리 스님 회상인 오대산 선원은 오직 선만을 할 뿐, 다른 것이 없는 순수한 선도량이었지만 점 심공양 후 차마시는 시간은 또한 각별한 가풍이 있었다.-차시간이면 「조사어록」을 들고 나와 법문을 계속하였다. 나는 이 시간에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오늘에 사집(四集)이라고 하는 어록들을 그 때 우리 스님에게서 모두 배웠으며 사교과(四敎科)인 「법화경」·「기신론」·「원각경」은 그 뒤에 중 대에서 스님 시봉하고 지내면서 배웠던 것이다.”
(「불광), l980, 5월호)
이러한 회고를 통하여 보면 먼저 경을 보고 나서 선만을 오로지 하라는 지도체계〔사교입선〕는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글에 집착하여 선수행을 멀리 할까 봐 경계하실 때도 있었던 것 같다. 조용명스님의 회고를 계속 들어본다.
‘나는 스님에게 ‘포교를 하려면 경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하던데요’하고 반대의견을 드리면 스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선을 해서 이치를 통하고 나면 경보기는 어렵지 않느니라. 경을 먼저 보(려)고 서두르지 말고 선에만 힘써라. 뜻을 얻으면 글은 저절로 알게 된다.”’(上同)
「금강경오가해」 서문에서 스님 스스로 좌선의 여가에 함께 머무는 수좌들에게 경을 보라고 권하였다는 말과 조용명스님이 회고하는 바 ‘경을 보라고 권하는 일은 없었다’는 말은 모순이다. 아무래도 스님·자신의 글을 더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조용명스님의 회고는 전적으로 교학을 하라는 말씀은 하시지 않았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위에서 인용한 조용명스님의 두번쩨 회고는 포교를 내세워서 실답게 참구하지도 않은 채 시정A로 달려나갈까봐 경계하신 말씀으로 이해된다. 또 스님이 〈해동초조(海東初祖)에 대하야〉에서 먼저 경을 듣고 나서 선을 한 아난의 예를 들고 “이는 곧 후래 학불자(後來學佛者)로 하여금 먼저 교의를 달한 후에 다시 조문(祖門)에 들어가 명심통종하여 조사의 연원을 계사(騙)하여 불조혜명을 영불단절게 하신 명의(뼈義)시니 누가 감히 기간에 의의를 존(存)하리오” 하셨는데, 먼저 경을 듣고 선에 든 것은 아닌 만이 아니라 육조나 스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인용구절은 사교입선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앞에서 든 스님의 입장과는 모순되지 않느냐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겠다.
교는 언어이고 선은 언어가 아니다. 교는 손가락이고 선은 달이다. 이렇게 볼 때 손가락을 보지 달을 보아야 한다는 것은 말할 나위 없다. 손가락을 잊고 달을 보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사교입선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달을 보는 것 자체가 손가락을 잊는 것이다. 입선(入禪)=사교(擔敎)’인 것이다.
그러나 중생이 곧바로 달을 볼 수는 없다. 까l 다고 본다. 반드시 선지식의 손가락이 있어야 발심해서 막바로 경을 보지도 않고 선에 들어 하지만 발심토록 해준 선지식의 법문도 교인 것이다. 그리고 선을 하더라도 언어를 쓰는 이상 교를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교’의 의미는 재어야 한다. 더욱이 그것이 교학에 대한 선의 없는 우월의식에서 나온 것이라면 당연히 버려져야 한다. 설사 경을 먼저 보고 선을 한다는 의미에 교입선이라고 하더라도 선을 하기 전에 경을 보이기 때문에 포괄적으로는 결국 선교겸수라고 있다. 그렇다면 선교겸수냐 사교입선이냐 하는 문제에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언어의 혼란에 지나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의미를 ‘사교입 아닌 ‘선교겸수’라고 하는 용어로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까닭은‘사교입선’보다는 겸수’가 수행의 전과정을 보다 잘 표현해 주기며 또 회통론의 패러다임에 맞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필자는 단순히 사교입선 하기보다는 선교겸수라고 하는 것이 보다 타당경 생각된다. 덧붙여 졸고, “한암선사-보조선 종문의 선지식”(「한국불교인물사상사), p.463)에 교입선이라고 하였으나, 여기서 그 부분을 선로 바로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