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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조히스트의 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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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 김선영 1991년 03월 109호
사람에겐 대개 한두 번쯤 짝사랑의 기회가 돌아오는 법이다. 그 기회를 놓쳐버린다는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왜냐하면 짝사랑만큼 고귀한 아픔도 드물기 때문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대어들건 ‘못 먹을 감 찔러나 보자’고 대어들건 오십보 소백보, 짝사랑이란 으레 실패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그 경우가 여자라면 좀 다르겠지만, 남자라면 십중팔구 짚수세미 같은 얼굴로 소주를 벗삼아 나선다. 한 병 두 병 세 병.....,바야흐로 이성(異性)으로부터 정신적인 고통을 받음으로써 성적 쾌감이나 만족을 느낀다는 마조히즘에 빠져 들게 된다.
요즘 안방극장에서 훌륭한 며느리감의 연기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C모라는 탤런트가 있다. 내가 그 여성을 짝사랑했었다고 한다면....글쎄, 어떨까?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꼴일까?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의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좀더 근사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이왕 내친 걸음, 작가의 산 체험까지 허구의 소재로 동원시키고자 한다.
C양은 그때 요즘의 채시라나 하희라나 최진실이나 오현경 같은 20대 초반의 연기자들이 그렇듯이 한창 싱싱한 이미지로 주가가 뛰어 오르고 있는 중이었는데, 방송연예과에 입학했다는 소식이 귀에 들어왔다.
나는 슬쩍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때 짝사랑까지는 가지 않았더라도 그 또래의 탤런트 가운데 그녀가 가장 내 눈에 들었던 터였다.
그러니 입학했다는 말을 듣자 직접 보고 싶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 기회는 너무도 쉽게 우연히 찾아왔다. 그녀는 야해 보이지 않고 순박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런 모습이 나를 사로 잡았던 것인데, 실제 모습은 나를 더욱 사로잡고 말았다.
어느 날 나는 그녀를 구내 식당에서 보게 되었던 것이다. 훌륭했다. 훌륭하게 생긴 여자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짙은 화장도 하지 않았고 그리 화려해 보이지도 않았다. 옷차림도 수수했다.
또 어느 날 나는 그녀를 대극장로비에서 보았다. 그 날은 비가 올 듯 말 듯 찌푸린 날씨였는데, 그녀는 하늘색 레인코트를 입고 있었고, 그게 그렇게 어울릴 수가 없었다.
이러는 동안 나의 마음은 서서히 짝사랑 쪽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었는데, 나는 그때 학보사 편집장을 맡고 있었다. 대학의 자치단체장이 후배인 탤런트 학생을 짝사랑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모르긴 몰라도 득 될 게 없을 터였다.
그러다 나는 그녀와 직접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학보에 ‘화제의 신입생’이란 박스 기사란을 만들어, 이미 각 분야별로 진출하여 맹활약하고 있는 신입생들을 인터뷰했는데, 이 가운데 그녀도 선정했던 것이다. 그녀는 내게 녹화 스케줄이 바빠 본의 아니게 수업을 빠져야 하는 탤런트 학생으로서의 고충을 이야기 했다. 나 역시 학보 편집일 때문에 수업을 빠져야 하는 일이 더러 있었기 때문에, 우련 비슷한 입장이라며 허허 웃었다. 그 뒤로 각 과에서 한 명씩 나와 ‘취업 문제’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좌담회를 학보사에서 갖게되었는데, 나는 방송연예과의 참석자로 그녀를 선정했다.
“글쎄, C양은 이상한 영화에도 안 나오잖아. 뿐인가 잡지에서도 수영복 차림으로 나오는 걸 못 봤다구, 다리가 안 이뻐서 그런지는 몰라두.\"
학보사 안에서 나는 그녀를 두둔하는 발언을 했는데, 지금은 시집간 기자 A가 반박하여 말했다.
“그러긴 뭘 그래요? 지난호 ‘여성××’에 각선미가 빼어난 탤런트 특집이라는 제하에 비키니 차림으로 나왔던 걸요”
“뭐요?\"
나는 눈이 휘둥그래졌지만, 그걸 믿지 않기로 했다. 일종의 질투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C양에게 전화를 걸어 좌담회 참석을 부탁했고, C양은 소박한 미소를 담은 목소리로 승낙해 주었다. 좌담회 장소는 학보 면집실로 잡았다. 그런데 막상 좌담회날 그 시간이 되었는데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황급히 전화 다이얼을 돌렸다. 안 오는 것이 아니라 조금 늦게 되었다는 얘기였다.
바쁜 녹화 스케줄로 피곤할 그녀. 나는 모든 걸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참석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녀를 기다렸다. 얼마 안 지나 그녀는 나타났다. 그때만 해도 자가용 승용차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자가용 승용차를 몰고 오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매니저 역할을 맡고 있는 듯 보이는 언니와 함께였다.
잠시 후 참석자들간의 인사 소개를 시킨 후 나는 사회를 맡아 좌담회를 진행해 나갔다. 역시 기대했던 대로 C양은 소신 있게 그리고 소탈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곤 했다. 원래 희망이 기자였던게 무색지 않았다. 차라리 기자직으로 나갔더라면 미모의 맹렬 여기자로 그 명성을 떨쳤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녀는 학보사에서 준비한 포도를 먹지 않았다. 포도를 먹지 않아 입이 더 고급인가 싶었지만, 나는 그녀가 더욱더 좋아졌다. 나는 사회자로서의 입장을 망각한 채 그녀의 의견에 적극 동조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었다.
좌담회가 끝나고 C양은 떠나갔는데, 나는 그 날 이후로 그녀가 자꾸 눈앞에 어른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만 떠오르면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나의 짝사랑은 심해져 갔다.
시간은 흘러갔다. 추운 11월, 나는 어느 날 쓸쓸한 문학 청년인 채삼일로를 걷고 있었는데, 무엇인가가 자꾸 나의 관자놀이를 잡아 당겼다. 나의 짝사랑 C가, 캘린더 상회에 전시용으로 걸린 한국 여배우 캘린더 속에서 거의 벗은 차림으로 찬바람을 맞고 서 있었다. 마치 사랑하는 아내를 악한들에 의해 윤간당하기라도 한 것 같
은 짙은 모멸감.
“아아.”
하필 그때 피곤함이 밀려와 하품이 나왔는데, 그 하품 때문인지 나의 그 고귀한 짝사랑도 종말을 고해야 한다는 아픔 때문인지 모르게 나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건 몰랐지만, 나는 그 날, 그런 그녀를 아쉬워하며 폭음하는 훌륭한 마조히스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