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적 고향집 마당에는 큰 감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5월이 되고 감꽃이 피어나면 새벽 일찍 일어나 감나무 아래로 달려 갔다.
어슴푸레한 새벽 안개 속에 떨어져 있는 감꽃들은 마치
마당에 꽃 이불을 덮어 놓은 듯 황홀했다.
막 떨어진 듯한 감꽃 하나를 주워 먹으면 그 풋풋한 맛이 입안 가득 번지면서 온몸이
푸른 감나무가 되는 듯했다.
여름이 되면 감나무는 온통 매미들의 놀이터였다.
보리가 익을 때쯤부터 울기 시작하는 보리매미가 첫손님이었고, 그 뒤를 이어
쓰름매미, 씽씽매미, 참매미, 말매미 들이 차례로 놀다 갔다.
이제 파아란 가을 하늘 이래, 모진 바람으로 형제들을 떠나 보낸 인고의 세월을 견뎌
온 하늘에 주황색 감꽃을 다시 피워 놓았다.
봄날 무수히 피어났던 그 감꽃들이 모두 가을 감으로 여물었다면 아마
많은 가지들이 부러졌을 것이다.
감나무는 본능적으로 가지들이 감당할 만큼의 수량을 조절했기에
저렇게 알찬 감들이 여문 것이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끝없는 욕심 속에 산다.
하나를 가지면 물을 가지고 싶고 백을 가지면 천을 움켜쥐고 싶어 한다.
그러나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번뇌 또한 늘어나는 법.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복에 자족自足하면서 사는 것이
이 가을하늘에 핀 저 감꽃처럼 가장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