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바리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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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여로 - 정찬주
1991년 03월 109호
풍경사는 아주 낡은 헌절이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때때중이라 불리는 어린 스님과 귀가 먼 늙은 스님이 살고 있었다. 귀머거리 스님은 하루종일 향기 나는 나무로 목탁과 바리때를 만들며 절을 지키곤 했는데, 이따금 풍경사에서 한철씩 나고 가는 손님 스님들처럼 참선이나 염불은 전혀 할 줄을 몰랐다.
그래도 풍경사는 귀머거리 스님 때문에 끼니를 거르는 일이 없었다. 귀머거리 스님이 공들여 깎은 목탁이나 바리때를 구하기 위해 신도들의 발걸음이 열두 달 내내 끊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사실, 한때는 먹거리가 떨어져 부처님께 올리는 아침 저녁의 빈 그릇에 밥 대신 쌀밥처럼 생긴 수국을 꺾어 넣은 적도 있었다. 그날따라 썰렁한 법당 안이 수국 향기로 가득 찼던 것이다. 귀머거리 스님은 주문한 순서대로 목탁과 바리때를 만들어 주었다. 물론 그 주문 순서를 받아 적는 일은 어린 스님의 몫이었다. 손님 스님들에게 귀동냥한 것이어서 모르는 글자가 나오면 어물쩍 넘어가곤 했지만. 선재도 언젠가 풍경사를 다녀온 어느 스님으로부터 귀머거리 스님 이야기를 듣고는 아주 감동을 했었다.
-아주 재미있는 스님을 한 분 알고 있습니다. 빡빡 늙은 데다가 귀까지 절벽인 스님이지요. 어려서부터 귀가 그랬다더군요 그 스님이 하는 일은 목탁이나 바리때를 깎고 다듬는 일입니다. 지고 새면 그저 그 일을 할 뿐입니다. 그 스님이 어떠한 연유로 출가를 하게 되었고, 몇 살되던 해부터 어떤 까닭으로 목탁과 바리때를 만들기 시작했는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 스님이 목탁을 치면서 염불을 한다든지 결가부좌를 한 채 참선을 한다든지 하는 것을 아무도 본적이 없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니 화두가 무엇인지도 모를 터이고, 깨달음이 무엇인지도 모를 게 뻔하지요. 거기다가 귀가 멀어 있으니 사람들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뜻을 다른 사람한테 전달하려고도 하지 않는답니다. 절안에서 어떤 화급한 일이 있어도 동요를 하지 않고 자기가 잡은 자리에 앉아 목탁과 바리때를 깎는 일만 한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목탁과 바리때가 아주 신통하답니다. 목탁의 소리가 아주 맑고 깨끗하거니와 바리때 또한 그 모양의 아름답기가 경건한 마음이 들 정도랍니다. 화두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불경이 어떻게 된 것인지도 알지 못하고, 깨달음은 물론 참선이 무엇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데다가 귀가 절벽인 그 사람이 어떻게 그런 목탁을 만들 수 있는 것인지요? 더욱더 기가 막힌 것은 자기의 목탁이 그렇게 유명하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스님은 뽐낼 줄도 모르고, 가령 전에는 닷새만에 한 개 만들던 것을 날림으로 두세 개씩 만들어서 돈올 모으려 하지도 않고, 그저 한결같이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그 솜씨로 한결 같은 모양새를 만들어내기만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린 스님은 그 스님의 마음을 자기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뽐냈다. 손님 스님들이 귀머거리 스님에 대해서 이러콩 저러콩 말들을 하지만 그때마다 어린 스님은 고개를 흔들었다. 어린 스님이 보기에 그들은 알맹이는 빠뜨린 채 껍데기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린 스님은 그 스님의 눈을 잠깐만 보아도 그 스님의 마음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웃는 마음, 우는 마음, 별을 보는 마음, 바람을 보는 마음 등을. 그러나 선재가 풍경사를 찾아갔을 때 어린 스님은 귀머거리 스님에 대해서 말하기를 꺼려했다. 그 스님이 이제는 움직이는 것조차 불편하여 한자리에 꼼짝을 않고 누워 있는 탓도 있었지만, 어린 스님 나름대로 걱정 반 불만 반이 있었다. 한약을 달이다 말고 선재에게 업을 삐쭉 내밀었다.
“목탁이나 바리때를 구하러 왔으면 그냥 돌아가시지요.\"
“스님을 뵈러 왔는데.”
“병문안 오셨구만요”
“그래요”
선재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생솔가지에서 나는 푸른 연기가 콧속을 자극하고 눈을 아프게 했다.
“스님도 이상한 분이죠. 왜냐구요?\"
선재가 묻지 않은 것을 어린스님이 말했다.
“우리 스님은요, 내게 정말로 좋은 바리때를 하나 만들어 주신다고 약속했거든요 그런데 아직까지 그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지 멉니까?”
“좋은 바리때는 어떻 게생겼는데 ?”
어린 스님의 대답에 선재는 어이가 없었다.
“하늘에 있는 별까지 담을 수 있는 바리때라고 우리 스님이 말했어요.”
“지금 가지고 있는 바리때는 누가 만들어 준 것인데....\"
“물론 우리 스님이 만들어 주었지만 마음에 안 들어요. 다른 것처럼 둥글지 않고 심술 굳은 사람의 마음처럼 삐뚤어져 있거든요”
그런데 선재는 귀머거리 스님이 ‘별을 담을 수 있다’는 화두 같은 말을 어떻게 설명해 주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어린 스님에게 화두 같은 그 말을 다시 시켜보았다.
“우리 스님의 눈짓으로 하는 말은요, 별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대요 여기서 죽은 사람들이 별에서 다시 태어나 즐겁게 살고 있대요 그러니까 별에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여기서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답니다. 그런데요, 우리 스님은 벌써부터 별에서 사는 사람 같거든요 예전과 달라요. 병들어 이제는 목탁이나 바리때를 만들 힘도 없지만 가끔 헛소리를 한다니까요 별을 담을 수 있는 바리때를 만들었으니 할 일이 없어졌다는 거지요\"
“그 바리때가 어디 있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정말로 어디에 숨겨두고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망령이 들어서 헛소리를 하는 것인지.”
결국 선재는 스님의 병이 더 악화되어 스님은 물론 그 별을 담을 수 있다는 바리때도 보지 못하고 풍경사를 떠나오고 말았다. 그리고는 보름이 채 못되어 귀머거리 스님의 소식을 들었다. 어린 스님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올려놓고는 눈올 감았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나 그 소식은 사실과 조금 달랐다.
그날 저녁에도 어린 스님은 한약을 달여서 자신의 삐뚤어진 바리때에다 담아서 귀머거리 스님 방으로 가지고 올라갔다. 그런데 스님의 얼굴 표정이 여느 때와 달랐다. 병을 참고 견디는 표정이 아니라 병을 이겨버린 온화한 얼굴이었던 것이었다. 어린 스님은 너무나 기뻐서 스님을 큰소리로 불렀다.
“스님, 스님 !”
그러나 스님은 꿈쩍을 안했다. 미소를 지은 채 감은 두 눈을 다시는 뜨지 못했다. 어린 스님은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그제야 손님 스님들이 뛰어와서 울고 있는 어린 스님을 밖으로 내쫓은 뒤 바삐 손을 움직였다. 그때 어린 스님은 자신의 바리때를 들고 우물로 갔다. 묻은 한약을 씻어내기 위해서였다. 어느새 하늘은 어두워져 있었고 부처님꽃이라고 불리는 수국이 몽실몽실 피어 있는 우물터 주위에까지 어둠이 내려와 스멀거렸다.
어린 스님은 바리때를 우물 속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우물물에 어린 하늘의 별들이 바리때에 담겨지고 있었다. 귀머거리 스님을 위해 한약을 달여 바치곤 했던 삐뚤어진 바리때에 맑은 별들이 담겨지고 있었다. 순간, 어린 스님은 바리때 속에서 미소짓는 귀머거리 스님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