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절, 트럭에 부처상을 싣고 다니며 필요한 곳에서 간단히 절이 된다.
흔히 가장 큰 불교나라를 꼽으라면 대뜸 ‘스리링카’를 떠올렸던터라, 숱한 불교사원이니 누런 가사를 걸친 탁발승의 모습들을 지레 그려보며 끈적거리는 열대의 바닷 바람이 온몸을 휘감아 오는 콜롬보 국제공항을 나선다. 그러나 공항과 도시 사이를 보란 듯이 꾸며놓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숲과 나무, 마을과 집을 있는 그대로 펼쳐 둔 자연스러운 길을 따라 콜롬보 시내로 들어오면서부터 지레 짐작은 무너지고 뜻 밖의 풍경과 마주친다.
곳곳에 오래 묵은 천주교회와 우뚝 선 성모 마리아가 어질게 웃고 있을 뿐 어디를 둘러보아도 선뜻 불교나라 고유의 낌새를 첼 수 없다.
콜롬보는 오히려 다듬어지지 않은 서양의 작은 도시를 빼 닮았고, 마주치는 사람들로부터 불교를 그리 쉽게 느낄 수도 없다.
더구나 관할 안내지도에 그려진 이름난 사찰조차 알고 있는 사람이 흔치 않아 물어 물어 찾아가면서 불교나라 스리링카에 대한 ‘물음’이 꼬리를 문다.
적도 바로 위 6°~10°사이에 자리 잡은 섬나라 스리링카는 65,610㎢ 땅덩어리에 어림잡아 1천 3백 만명이 살고 있다.
기원전 6세기 무렵 북 연디아로부터 쳐들어온 싱하리족들은 본디이 땅에 뿌리 박고 살아온 베다족을 짓밟아 버리고 대략 6에기 무렵 불교문화권을 이루어 오늘날 전체 국민의 약70%를 차지하는 중심민족이 되었으며, 한편 스리랑카 북부지방에는 기원 전후부터 남 인디아에서 밀려 들어온 타밀족(전체 국민의 23%)들이 힌두를 받들며 삶터를 마련하고 있어 오늘날까지 민족, 종교 싸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다른 한편, 스리랑카는 동서 해상교통의 길목이라는 지리 때문에 일찍이 16세기부터 식민지를 창아 나선 포르투갈, 네델란드 장사꾼들의 총칼 앞에 번갈아 부림을 받다가 마침내 1796년~1948년까지 영국의 직할 식민지로 먹혀버린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영국의 식민 통치에 도움줄이 되어 왔던 소수민족 타밀(힌두교도)사람들이 오늘날까지 거의 모든 관료 자리를 손아귀에 쥐고 있어, 전체 국민의 70%를 웃도는 불교도(싱하리족)들의 짜증은 깊어가고, 따라서 해묵은 민족 ·종교 싸움의 또 다른 빌미가 되어 온 것이다.
그 뒤 1972년 다듬어진 헌법에 따라 176년 동안 이어졌던 영국 자치령에서 벗어나 그 동안 ‘실론’이라 불렸던 나라 이름을 버리고 ‘스리랑카 민주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새로이 기틀을 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500년 가까이 서양 제국주의에 속속들이 빼앗기고 찢겨버려 매우 어려운 살림을 꾸려 가고 있는 형편이고, 그나마 나라살림의 뒷심이 되는 차(전체 수출의 45%), 고무, 코코넛을 비롯한 농산물이나 보석 ·혹연 정도의 광산물마저도 이른바 ‘플랜테이션’이라는 그물에 사로잡혀 있어 알맹이는 여전히 서양사람들이 삼켜버리고 스리링카 민중들은 껍데기만 부둥켜 안은 채 굶주림에 떨고 있다.
눈에 담기는 콜롬보 구석구석이 500년간 식민통치로 뒤집어 쓴 갖은 서양쓰레기들로 범벅되어 있으나, 이곳 저곳 기웃거리며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는 사이에 스리랑카가 앞세운 ‘사회주의’와 ‘불교’의 관계를 깨닫게 된다.
부처님은 우리와 닮았으나, 건축은 서양교회의 영향을 받은 듯 돌이켜 보건대, 이른바 제3세계로 불리는 거의 모든 나라들의 공통된 역사경 험은, 성경책 뒤에다 무서운 총칼을 디밀고 들어온 제국주의로부터 무 자비한 식민통치를 받으면서 철저히 빼앗기고 짓밟혔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들 제3세계는 ‘미쳐버린 자본주의(제국주의)’로부터 민족해방 과 독립을 되찾기 위한 무기로 자연스럽게 ‘사회주의’를 받아들였던 것 이며, 한편 민족 고유의 문화와 정신을 쑥밭으로 만들어버리는 제국주 의 기독교에 맞서기 위해 전통적인 종교(아시이·국가인 경우 대부분불 교)를 더욱 강화하고 이것을 밑거름으로 사회통합을 이루면서 반제국 주의 투쟁을 벌여온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불교나라 스리랑카가 내세운 사회주의의 까닭이며 역사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스리랑카의 현실 은 제국주의에 할퀸 상처를 말끔히 씻어내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독립 을 위해 길고 지루한 투쟁을 벌여온 스리랑카 민중들의 힘줄마저 쉽사
리 찾아볼 수 없다.’
“비록 껍데기는 문제가 많아 보이지만, 불교에 대한 깊은 존경이 스리랑카 사회를 엮어 가는 이음쇠가 되고 있고 모든 스리랑카 사람
들의 마음에는 불교의 가르침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앞
날을 그리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콜롬보 대학에서 만난 젊은 영 어 선생의 얘기를 믿을 수도 있지만, 경제의 불평등, 후진성은 접어
부처님은 우리를 닮았으나, 건축은 서양교회의 영향을 받은 듯.
두고라도, 엄연히 존재하는 계급의 문제를 비롯하여 숱한 모순에 쌓여있는 스리랑카의 현실 속에서 많은
스리랑카의 전통적인 운송수단인 소달구지.
사람들이 존경하는 불교는 과연 어떤 역할을 하고 있으며, 내세운 ‘사회주의’ 구현에는 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되물음만 깊어간다.
이것을 그냥, 더욱 교묘하고 은유적인 침략수단과 신식민지 정책을 몸에 익힌 제국주의 세력들의 놀라운 둔갑술 때문이라고 넘겨버릴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끼며 이름도 거창한 ‘월드 마켓’이라는 시장을 찾아 간다.
콜롬보에서 가장 큰 시장인 월드마켓은 그 이름과는 달리 초라하기 짝이 없다. 나무 칸막이로 덤성 덤성 짜여진 시장에는 질 나쁜 옷감과 옷가지들이 드문드문 널려 있고, 대를 이은 농업국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 쌀·설탕·음식들이 고작이다. 뿐만 아니라, 사고 팔기 위한 홍정이나 값 매김도 거의 없고 다만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구경꾼 몇몇이 서성거리고 있다. 따라서 시장 마다 흔히 눈요기가 되는 소리꾼 하나 볼 수 없는 어두운 시장에서 시장판 문화는 찾을 길 없고, 이러한 맥 빠진 시장이 바로 오늘날 스리랑카의 살림살이를 정직하게 가늠해 주는 잣대이자, 찌그러든 시장의 모습이 또한 스리랑카 민중들의 굶주린 뱃살과 닮아 있음을 느낀다.
커다란 마리아와 부처가 마주보며 웃고 서있는 뜨거운 종교의 땅 스리랑카, 그러나 오늘도 앙상한 어머니의 젖가슴을 빨며 주련 배를 채우지 못해 울고 있는 큰 눈망울의 아기가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열심히 기도했고, 그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열심히 정진했다면 지금쯤 책마다 적혀 있는 ‘좋은 세상’이 꼬랑데기만이라도 내보일 텐데------.
나의 조급한 마음 때문일까, 사람들의 기도와 정진이 거짓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종교들이 감히 사람에게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직까지 단 한번도, 세상 어디에도 ‘함께 나누어 먹는’ 거룩한 뭇이 실현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눈여겨 보는 동안에도 목탁소리와 찬송가는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