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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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윤무부
1999년 10월 212호
몇 년 전 까마귀 고기가 어디어디에 좋다는 소문이 펴지자 급기야 까마귀 한 마리에 오십만 원에서 일백만원을 호가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이런 괴현상이 신문을 통해 보도되자 나는 여기 저기서 걸려오는 문의전화 때문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괴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한약재 시장인 경동시장을 찾아갔다. 그러나 까마귀를 팔고 있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었다. 너무 귀한 것이 되어서 감춰 놓고 밑거래를 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까마귀가 몸에 좋다는 소문은 모두 거짓이었다.
까마귀는 지구의 조류 8,600여 종 가운데 가장 똑똑한 새이며, 사람 말을 따라 하는 앵무새나 구관조와 같이 지능이 높은 무리에 속한다.
서양에서는 까마귀를 대상으로 숫자 실험을 한 결과 네다섯 살 정도의 어린이와 비슷한 지능을 가지고 있음을 밝혀낸 바 있다. 한 예로, 까마귀는 조개의 딱딱한 껍질을 깨어 부드러운 속살을 먹기 위해 30미터쯤을 날아올라 조개를 떨어뜨리면 껍질을 캘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것을 보아서는 칼, 망치 따위의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좋은 머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유럽에서는 빛깔 있는 작은 물체나 작은 도마뱀을 어미와 새끼가 하루 종일 가지고 논다고 하여 ‘장난꾸러기 새’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외국에서는 ‘지능이 높은 새’, ‘장난꾸러기 새’로 불리면서 사람들과 친숙한 새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까마귀를 보면 불길한 일이 일어난다 하여 흉조凶鳥로 취급한다. 군대에서는 동작이 뜬 사람, 곧 고문관을 까마귀 고기를 먹었다고 하며, 옛 노승들은 시킨 일을 제대로 못하고 늘 딴 짓만 하는 졸병 스님을 두고 까마귀 고기를 먹어서 그렇게 되었다고들 하였다.
그럼 과연 까마귀 고기를 먹으면 기억력이 없어지고 바보가 되는가? 나는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직접 까마귀 고기를 먹어 본적이 있다. 대학원 시절 까마귀 고기를 먹고 시험을 해 보았으나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그 뒤부터 지금까지 나의 기억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마을 정자 나무 위에서 까마귀가 울면 동네 사람 가운데 하나가 사고를 당하거나 죽는다 하여, 울고 있는 까마귀를 향해 침을 뱉거나 소금을 뿌려 까마귀를 멀리 쫓아낸다. 텔레비전에서도 무서운 장면이 나오거나 귀신이 등장할 때쯤이면 까마귀 소리를 내어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까마귀는 과연 이처럼 우리를 괴롭히는 새일까?
아니다. 까마귀는 몸 전체가 검다 보니, 보기에 따라서는, 음침한 데다가 예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머리가 좋아서 인간을 무서워하지 않다 보니, 인가 주변에 와서 음식 쓰레기나 죽은 동물의 시체를 뜯어먹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자주 들키게 되고, 그 때문에 새 가운데 가장 추악하고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까마귀가 자신을 흉조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시위를 하고도 남을 일이다.
그래서 나는 까마귀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의 오해를 풀어 주려 한다.
까마귀가 울면 사람이 죽는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된 것일까? 까마귀는 시각과 청각이 예민하여 동네 사람이 죽어 장례를 치르려 하면 상가 근처로 몰려든다. 그 뿐만이 아니라 음식 찌꺼기를 먹을 욕심에 산소까지 따라오는데, 머리가 좋다 보니 상가집에 찾아온 낯선 사람들을 경계하느라고 계속 울어댄다. 그런 행동 때문에 옛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깃든 새라고 여기며 공포의 대상으로 생각하였다. 잔치집에는 까치가 등장하고 상가집에는 까마귀가 나타난다. 그러나 여기서 까마귀가 까치보다 더 영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잔칫집에 온 손님들은 동네 사람을 모두 기억하고 있는 까치에게 매우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상가집에 온 손님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잔치집에 온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음식을 싸 가지고 가기 때문에 찬치집 까치에게 남는 것은 얼마 없다. 그러나 상가집 까마귀는 어떤가? 상가집에 온 사람들은 음식을 싸 가지고 가지 않는다. 그래서 남은 음식은 모두 까마귀 것이다. 까마귀는 까치보다 힘이 세기 때문에 상가집에 온 까치를 밀어낸 것이다. 상가집을 즐겨 찾는 까마귀는 잔칫집에서 보다는 많이 먹을 수는 있었지만 그 덕분에 흉조 란 누명을 쓰게 된 것이다.
까마귀는 정말 머리가 좋은 새이다. 자기 둥지를, 사람들에게 절대로 알려 주지 않는 종류가 바로 까마귀와 종다리이다. 옛날 사림들은 까마귀를 흉조라 하여 까마귀 둥지가 보이면 허물어 버리고 새끼를 죽였다. 그래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둥지를 짓게 되었으며, 사람이 없을 때 새끼에게 먹이를 가져 다 주는 지혜를 발휘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까마귀를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은 제주도 한라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노루목이란 곳이다. 국립공원 직원들이 식사하고 남은 밥을 규칙적으로 주다 보니 많은 까마귀들이 주차장 옆 잔디밭에서 상주하고 있다. 관광객들이 던져 주는 과자를 받아먹기도 한다. 이 곳에서도 까마귀의 뛰어난 지능을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다. 여성이나 어린이들과 같이 자신을 해치지 않을 사람에게는 제법 가까이 와서 먹이를 먹지만, 험상궂은 얼굴을 가진 남자들에게는 잘 다가오지 않는다. 그런 것을 보면 점쟁이보다도 더 관상을 잘 보는 것 같다.
철새 도래지의 까마귀는 죽은 새를 뜯어먹고 살다 보니 ‘자연의 청소부’란 별명도 붙였다. 옛날 사람들은 반포지효反哺之孝라 하여 까마귀를 효도의 상징으로 불렀으며, 옛날 중국에는 조장鳥葬이라 하여 새들에게 시체를 뜯어먹게 하는 장례 풍습도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까마귀는 우리의 편견과 다르다. 까마귀는 결단코 흉조가 아니며 생태계 안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지구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