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는 것 같다. 내가 살고 있는 춘천은 호수와 댐으로 겨울이 걸고 안개가 많은 도시이다.
날씨가 푸근하다.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면 호수 주위의 나목(裸木)들은 안개꽃이 피어나 황량한 겨울 풍경을 잠시나마 은성하게 해준다.
7년 전에 직장을 따라 이곳 춘천으로 왔지만 내가 자라난 곳은 경북 동해안의 작은 포구 영덕이다. 옛부터 영덕은 맛 좋기로 유명한 영덕게와 맑은 물에만 사는 은어가 유명한데 이곳은 물 맑은 오십천(川)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날과 학창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 오십천에 나가 송사리를 쫓거나 언제나 부드러운 능선을 자랑하는 고볼봉(商織奉), 그 이름처럼 원만하고 자비롭기만 한 산을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산에 오르면 그 푸른 동해물은 얼마나 창망했던가! 누구나 어린날을 보낸 고행은 늘 이렇듯 정겹겠지만, 나의 불교에 대한 기억 또한 이처럼 정겹고 아련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겠지만 나 또한 내 어머니의 치맛자락을 잡고 진솔밭을 지나 동네 뒷산 암자로 초파일날이나 동짓날 같은 명절에는 으레히 따라 나섰다. 시골생활이란 단조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4월 초파일이나 동지 동에 절에 따라나서는 일은 동네 잔칫집만큼이나 홍미로웠고, 연등을 비롯한 갖가지 동불에서 비치는 불은 얼마나 황홀했던가 거기다가 떡이나 나물밥을 얻어먹는 맛은 어떠한가?
그래서인지 내 눈에 비찬 불교는 그저 턱없이 좋게만 느껴졌다.
그런 언연으로 해서인지 군입대하기 전 3개월 동안 엉터리 행자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그 산사생활에서 그동안 관념적으로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불교에 대한 체험이 그 이후 내 신앙생활에 큰 전기를 만들어 주었다.
내가 잠시 머물렀던 그 암자는 경북 영덕군과 울진군의 경계지점인 병곡면 철보산 유금사라는 절로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께서 창건하신 유서 깊은 고찰이었다.
옛 유금사 큰 절터는 지금은 동네가 되었고, 산내 12암자 가운데 한 암자터가 오늘날의 유금사이다. 옛고찰의 정취를 말해주는 듯 법당 앞에 오래된 사철나무가 서있었다.
그 당시에는 「천수경」이 무엇인지 도량석과 예불이 무슨 의미인지 전혀 그 의미도 모르는 채 그저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때가 겨울이었는데도 불기라고는 전혀 없는 찬 마루법당에서 손발이 시려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이었던 그 때가 나의 초발심 사절이었다.
이러한 나의 초발심은 곧 군대생활에서도 이어졌는데 내가 군복무를 한 곳은 최전방 수색대대였다. 그 당시 그곳에는 법당은 없었으나 법회는 겨우 명백만은 이어가고 있었다.
윗 선임자가 제대를 하면서 구두상의 인수인계를 하고 떠났을 땐 앞이 캄캄했지만 3개월간의 초발심을 발휘하여 야전(野戰) ‘가로등 법우회’를 결성하여 열심히 법회를 이끌어 나갔다.
밤마다 야간 근무자를 위해 칡차를 끓이던 일과, 초파일을 위해 법문들과 연등을 만들던 일과, 불교 중대로서는 최초로 현성스님을 초청하여 신도 오계를 받던 일이며, 감영헌 법사님을 최전방으로 모셔 내무 반에서 법회를 가졌던 일도 있었고, 포교자료가 없어 휴가 때면 조계사 등을 다니며 책자를 구해 흐뭇한 마음으로 부대로 돌아오던 일 등..... 이런 일들 모두가 내 초발심의 연장이었다.
제대 후 나는 생활전선으로 돌아와 한동안 내가 알고 있던 불교와 현실 사이에서 방황도 하고 좌절도 했지만 춘천으로 올라온 이후 다시 불자로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3년 전 우연하게 참가하게 되었던 불국사의 전국 어린이 지도자 연수교육장에서 비록 이틀 동안의 교육이었지만 전국에서 모인 600여 명의 지도자 선생님들의 눈망울에 열기와 성원이 가득함을 보고 이렇게 젊은 불Z}들이 미래 어린이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한국 불교의 전망은 결코 어둡지 않고 밝고 희망이 었다는 나 나름대로의 형언할 수 없는 감격이었다.
그때 내 마음으로 다짐하게 된 것이 청년회 자체만의 법회도 중요하지만 좀더 실천적인 쪽에서 공부하고 정진해야겠다는 굳은 재발심의 신념이 마음에서 용솟음쳤다.
그래서 강원도의 어린이 지도자 연합회를 결성하는데 주력하게 되었다. 미래 어린이 불교를 위해서 오직 마음 하나 가지고 동분서주 다니며 공문을 발송하고 창립준비 위원회 및 발기인 대회를 갖고 노력한 결과 ’90년 11월 4일 강원불교 어린이 지도자 연합회를 창립하게 된 것이다. 비록 이 회의 출발은 늦었지만 잘 되어 갈 것이라는 확인을 가지고 열심히 정진할 계획이다.
그 후 나의 재발섬은 한국불교교육원이 주관하고 있는 원효학당의 통신과정인 불교철학과에 등록하여 새로이 학생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불교란 사회적 활동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개인적인 인격도야에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될 것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불교가 가지고 있는 깊은 학문적 체계가 그 밑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 나는 원효학당의 학생이 되었다.
나는 이 학당을 통하여 이기영 교수님과 정병조 교수남 동의 높으신 강의를 만날 수 있었고, 어린이 지도자회를 통하여는 조정관스님과 법명스님 그리고 수많은 불자들을 만날 수 있었음은 재발심하여 내가 받은 최대의 선물이다.
처음에 이 원고청탁이 왔을 때는 나의 신행이 너무 보잘것 없고 부끄러워서 원고청탁이 솔직히 괴로웠지만 나의 신행을 다시 한 번 점검하는 차원에서 보잘것 없지만 나의 신행 생활을 반성하는 기회도 되었다.
의상스님의 법성게에 의하면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便正覺)’이라 했으니 초발심을 일으키던 그 마음 그대로 앞으로도 불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자신에게 다짐하며 또한 부처님 전에 원력을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