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고인이 되신 청담(靑澤) 큰스님.
한국 현대불교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교단 정화(淨化)를 이룩하시기 위하여 열화 같은 신심과 혼신의 힘으로 보살행을 이어가셨던 스님이시기도 하지만, 동시에 청담 큰스님은 나에게는 최초로 불법의 대진리에로 돌아오게 하고 초발심을 일으켜 주셨던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은사(恩師)이시기도 합니다.
나는 여학교시절은 물론 결혼하고 한참 동안까지도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대개 이 나라 신여성들이 그러했듯이 처음 들어온 이 땅의 기독교는 계몽적이고 다소 신선해 보였습니다.
특히 교회 창으로 퍼져 나오는 오르간 소리하며 찬송가 소리, 서양 것이면 고리타분한 우리 것에 비해 신선하고 사실적이고 과학적이라는 막연하고 피상적인 사고방식이 비교적 신문화(新文化)를 일찍부터 받아들인 지식인들의 대체적인 성향이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지금도 비슷한 상태이기는 하지만------.
내가 훨씬 뒤에 안 사실이기는 하지만 청담스님 그분은 나의 큰오빠와 진주농고의 동기동창생이며 기이한 인연이기는 하지만 나의 사촌 형부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뒤 그 부인(사촌언니)도 따님도 다 출가 생활로 일관했습니다.
나는 이런 사실과는 무관하게 열심히 교회에 나가고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신구약과 찬송가를 들고 자랑스럽게 목사님의 설교를 열심히 경청하는 생활을 해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일 때문인지 그 기억마저 잊혀졌지만, 청담스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처음 뵙자마자 스님은 불교에 대한 교리를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이 어떻게나 진지하고 깊이가 있을 뿐 아니라 청산유수 같아서 이재까지 들어왔던 신구약의 설교는 마음속에서 물거품같이 사라지고 불법에로 큰 발심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 틈만 나면 그 때만 해도 오늘날같이 법회가 일반화 되지는 않았지만 스님의 법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차츰 불교의 오묘한 진리에 눈을 뜨게 되었던 것입니다.
특히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내가 내써(來世)에 대해 의심을 품자 스님은 친절하게도 손바닥을 앞뒤로 내보이시며 “금생이 있는데 후생이 없을 리있나. 손바닥이 있으면 손등이 있듯이 금생이 있으면 틀림없이 내생이 있다”고 힘주어 말씀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나온 「마음」이라는 책에도 보이듯이 일체유섬조(‘一뺑切옳唯心造)의 법문은 여제까지 기독교적인 경향에 젖어 있던 나에게 새로운 생의 의미로 거듭나게 해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뒤 공직에 계시던 남편을 따라 부산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물론 서울을 떠날 때 청담스님께 부산으로 가게 됨을 말씀 드랬더니 스님께서는 그 당시 선암사에 계신 석암스님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 후 선암사에서 10년 동안 기도법회를 다니는 한편범어사·법륜사 동에도 나가 고산큰스님의 법문에 열심히 참석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의 초발심은 시작되었지만 나는 불법을 만나고 난 뒤 참으로 큰 불은(佛恩)을 입었기에 여기에 몇 가지를 소개할까 합니다. 기독교식으로 표현하자면 신앙간증인 셈입니다.
벌써 32년 전의 일입니다. 어느 하루, 나의 둘째 아들이 연탄가스를 마시고 생사(生死)를 헤매는 사건이있었습니다. 나는 정성껏 기도를 드렸음은 물론이고 그 기도 덕분에 생명은 건졌으나 연탄가스의 중독으로 2년 동안 눈과 코에 큰 병이 들어 채대로 보는 일과 코의 정상적 기능에 장애가 왔던 것입니다.
그 당시 석암스님의 가르침을 따라 현재 동국대학교에 교수로 계시는 인환스님과 함께 하루 여덟 시간씩 지극 정성으로 관음기도를 드렸는데 불보살의 가피로 그 모진 병도 나았지만 연이어 사법고시에 무사히 합격하여 기쁨을 두배나 누렸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새롭습니다.
그 후 둘째아들이 군대에서 법무관으로 있었는데 그 때가 월남전이 한창 치열할 때라 윌남전에 참전하여 당시 군용 지프차로 적진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앞서 가던 차는 지뢰를 잘못 밟아 몰사하였지만 내 둘째가 탄 차는 무사히 적진을 뚫고 나왔는데 이러한 기적 같은 일들이 다 내 신앙생활에 확신을 갖게 해 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럴 뿐 아니라 아주 작은 범사(凡事)에서도 나에게는 이주 많은 기적이 뒤따라 열어났습니다. 그것들을 다 필설(筆舌)로 밝히지는 못하지만, 그런 불가사의한 기적이 일어날 때마다 나의 기도는 헛되지 않다는 것, 그러므로 어떤 어려운 난관이 와도 간절한 기도의 힘만 있다면 부처님께서는 무엇이든 반드시 이루어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럴 뿐 아니라 나의 신행 생활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참회생활로 지금도 불전에서는 쉼 없는 참회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고통과 시련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럴 때 누구를 원망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 진정한 불자라면 우리가 남을 원망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살피고 자신의 입장 참회를 게을리 않겠다는 생활 신조를 가지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가능하다면 보시(布施)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다고 하는 마음 가짐을 배웠다는 사실입니다. 다 아시다시피 보시라는 말은 베풀어주라는 가르침입니다. 물론 보시 가운데에서 물질로써 베풀어 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진 합니다만, 우리들은 무엇을 베풀어주고 나서 꼭 어떤 보상을 바라거나 상(相)을 내려고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저는 아직도 완전한 무주상 보시를 실천해 보지는 못했지만 이런 가르침이 있는 불교야말로 가장 위대한 종교임을 확신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미 내 나이 칠순을 넘겼지만 사실 아직도 나의 신앙은 초발심의 상태입니다. 열심히 뭔가 내 나름대로 한다고는 노력했지만 부처님 앞에 서면 늘 부끄러운 신자일 뿐이며 다만 남을 위한 기도가 곧 나의 기도임을 알고 늘 초발심의 마음과 자세로 살기가 완이며 아울러 삼귀의와 사홍서원을 호지(護持)하는 신자로 세세생생 살기가 원이요 희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