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파초 위의 빗방울 소리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법전 1999년 10월 212호
첨두우적 簷頭雨滴하니
계전지습 堦前地濕이로다
법법현성 法法現成이어든
인신불급 人信不及이로다.
처마 끝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나
섬돌 앞의 땅이 젖는다.
모든 법 이 눈앞에서 이루어져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구나.

경청도부 선사가 어떤 납자에게 물었습니다.
“문 밖에 무슨 소리인가?”
“빗방울 소리입니다.”
“중생이 전도顚倒되어 자기는 잊어버리고 경계만을 띠라 가는구나.”
“화상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마터면 나를 잊어버릴 뻔 했다?”
“그 말은 무슨 말입니까?”
“출신出身은 유가猶可이어니와 탈체脫體는 도응난道應難이나라. 몸을 빼내기는 그래도 쉽지만 봄을 벗어나는 일은 말하기가 더욱 어렵느니라.”

문밖의 빗소리를 들으면서 선지식과 후학이 법을 주고 받는 모양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빗소리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이렇게 공부를 하는 고인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우리의 등줄기를 사정 없이 후려치는 죽비가 됩니다. 운문스님은 ‘남산운기南山雲起하고 북산하우北山下雨니라.’ 곧 남산에서 구름이 일어나니 북산에서 비가 온다고 했습니다.
비가 내리니 뱀도 나오고 개구리도 기어 나옵니다. 뱀이 개구리를 집어 삼킵니다.
바둥거리는 소리가 경청 선사의 귀에까지 들려 옵니다. 이번에는 선사께서 시자에게 또 물었습니다.
“또 문밖에서 나는 소리는 무엇이냐?”
“뱀이 개구리를 무는 소리입니다.”
“중생이 괴롭다고 여겼는데 참으로 고통 받는 중생이 있었구나.”
선사의 자비심은 끝 간 데가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고덕古德에게는 비오는 날 그 개구리 소리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파초 위의 빗방울 소리입니다.”
“여래의 바른 법을 비방하지 말라.”
이에 대해서 동산양개 화상도 한마디 하신 게 있습니다.
“뱀이 개구리를 삼키고 있는데 구하는 것이 옳은가? 구하지 않는 것이 옳은가?”
대중이 대답이 없으니 대신 말하였습니다.
“구해도 두 눈이 멀어 버릴 것이며, 구하지 않는다면 형체도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비 오는 날 공부하는 사람마다 그 경계가 다름을 알게 해 줍니다.

부처님께서 비 오는 날 가섭 존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섭아! 심천대천세계의 산과 내와 골짜기와 땅 위에 나는 모든 나무와 풀들이 많지만 저마다 그 이름과 모양이 다르느니라. 구름이 가득히 퍼져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고 일사에 큰 비가 내리면 모든 나무와 풀들이 크기에 따라서 저마다의 양반큼 비를 받느니라. 비록 한 땅에서 내리는 비가 그들의 종류와 성질에 따라서 자라고 크며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것처럼, 비록 한땅에서 나는 것이며 같은 비로 적시는 것이지만, 여러 가지 풀과 나무가 저마다 차별이 있느니라.”
여래도 그와 같아서 세상에 출현하심은 큰 구름아 일어나는 것 같고, 저 큰 구름이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덮이는 것과 같으며, 그리고 그 비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내려지만 근기마다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약산유엄 선사에게 어느 비 오는 날 사미승이 흠뻑 젖은 채 돌아왔습니다.
“어디서 오는 길인가?”
“암자에서 오는 길입니다.”
“몹시 젖었구나.”
“북을 치지 않았습니다.”
옆에 있던 운암스님이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가죽도 없는데 무슨 북을 치려오.”
그러자 또 도오스님이 한마디 더 거들었습니다.
“북도 없거늘 무슨 가죽을 치리오.”
이에 약산선사께서 무릎을 치시면서 말했습니다.
“한바탕 좋은 곡조로구나.”

우리가 여기에서 깨칠 수 있다면 경계에서도 자유롭겠지만 깨치지 못한다면 경계의 구애를 받을 것입니다. 이러한 공안을 총림에서는 단련어鍛鍊語라고 합니다. 만일 단련이라고만 한다면 마음의 분별만을 이룰 뿐 고인들이 납자를 지도한 참뜻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깨친다는 것은 첫째 도안道眼을 밝힘이요, 둘째는 경계境界를 밝힘이요, 셋째는 심종心宗을 밝힘이요, 넷째는 망정妄情을 밝힘이요, 다섯번째는 교화제도敎化濟度함을 밝힌다는 말입니다.

경청스님이 빗방울 소리에만 사로 잡혀 있는 납자를 니무라니 이에 납자가 다시 대꾸를 하니 당신도 그 소리에 사로잡힐 뻔한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 납자가 ‘사로잡힐 뻔 한다’는 것이 무슨 뜻이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속박에서 벗어나기는 쉬워도 그대로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이 공안의 줄거리입니다. 이에 대하여 천동 종각스님은 이렇게 염拈했습니다.
“처마 끝의 빗방울 소리에 그대 정신차렸는가를 묻노라. 당정에 자기 일을 성취하면 도중에서 주맹主盟을 맺어 세계마다 부처를 보고 털끝마다 경전을 낼 것입니다. 화악산華岳山에 이어진 하늘 빛을 쪼개내고, 황하의 바다에 이르는 소리를 방출했다. 그러나 경청이 말한 ‘출신出身은 유가猶可이어나와 탈체脫體는 도응난道應難이나라. 봄을 빼내기는 그래도 쉽지만 몸을 벗어나는 일은 말하기가 더욱 어렵느니라’고 한 것은 또 어찌 하겠는가?”

그렇습니다.
머라 위, 머리 아래가 온통 비투성이입니다. 빗방울 소리라고 한다면 장님이며, 빗방울 소리라고 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리라고 해야 하겠습니까? 곧 빗방울 소리라고 한다면 이는 자기에 미혹하고 경계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만일 빗방울 소리가 아니라고 한다면 어떻게 바깥경계에 자유 자재로 대처하겠습니까? 여기에 이르러서는 모름지기 참된 경지를 밟아야만 합니다.
경청 선사가 말한 몸을 빼내는 한 구절은 여기 대중이 모두 알아차렸겠지만 어떤 것이 몸을 벗어나는 한 구절이겠습니까?
잘 참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여운암실동서雨餘雲暗失東西하니
문외금강각답니門外金剛脚踏泥로다.
의문첨전단적의擬問簷前端的意하면
이수류수과전계已隨流水過前溪로다.
비 뒤에 구름 흐려 동서를 잃으니
문 밖의 금강역사가 진흙에 빠졌네.
처마 끝의 분명한 뜻 물으려 하니
어느 덧 흘러 버려 앞 개울을 지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