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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 - 재가 바람직한 관계 찾기는 자기반성으로부터 출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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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2001년 02월 228호
출가와 재가의 관계에 대한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논란의 발단은 불교바로세우기 재가연대에서 조계종 기획실장 성혜 스님의 진퇴문제를 제기하면서부터이다. 물론 출가-재가라는 모양을 나눠 놓고 서로의 바람과 불만에 대한 마음의 움직임이야 늘상 잠복돼 있었던 것이다. 어느 불자치고 가까이 모시는 스님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마음이 없을 리 없다. 스님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경우는 스님과 신도간의 일대일 상황이니 논란으로까지 번지지는 않는다.
어쩌면 스님과 신도 사이는 지도하고 지도받는 사이이니 스님은 신도들의 귀의의 대상이다. 그런데 왜 관계의 문제가 새삼 논란의 주제가 되는 것일까. 여러 사례가 있겠지만, 최근 재가연대의 총무원 소임자 스님의 진퇴 주장이 한 예가 될 것이다.
재가연대는 1월 11일 ‘교계 출재가 지도자들께 드리는 재가연대의 호소문’을 발표하고, 이 호소문을 2000여 명에게 발송했다. 스님의 진퇴 문제가 아닌 사찰 운영에 재가자가 참여해야 한다든지, 승가의 청정성 회복 같은 것이었다면 출가-재가의 관계 정립이라는 주제로 확대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재가연대는 위에서 언급한 호소문을 통해, 도박 경력이 있고, 이로 인해 법원으로부터 벌금형을 선고받은 스님이 중앙종무기관의 중요한 소임을 맡아도 되느냐는 것이다. 아울러 ‘공직 청규’를 제정해 우리 사회에 모범적인 교단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가자들이 삼보의 하나로 삼아 귀의하는 스님들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질문이 우선 나올 수 있다. 스님들로서는 어쩌면 괘씸하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그러나 스님의 이름까지 거명하며 진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이 옳고 그름의 문제를 따져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한 스님의 문제를 가지고 출가-재가의 관계라는 거창한 주제로 논하는 상황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올 만하다. 그러나 서로 간의 불편한 관계가 불거져 나오지 않았을 뿐이지, 잠복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물론 불편한 관계가 항상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무상無常이 우주의 이치이듯, 관계는 시간과 공간의 특성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이다. 불편한 관계가 가르침으로부터 어긋날 때는 가르침의 근본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또 새로운 상황에 대응하는 지혜의 새싹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담담하게 바라보아야 할 사안이다.
특히 재가자 조직이 많아지고 커지면서 전통적으로 스님들의 역할이었던 설법까지 재가자들이 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려의 시각도 많다. 설법은 스님들의 고유한 권한이기도 하다.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부터 수행을 통한 가르침은 스님들이 했고, 신도들은 스님들의 수행을 뒷받침하고 스님들로부터 법을 청해 들었던 것이다. 이른바 법보시-재보시의 관계가 성립되었는데, 이제는 이런 전통적인 틀마저도 깨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런 경우가 더 진행된다면, 교단의 질서 또한 새롭게 정립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재가자들에 의한 설법이 바람직한 것인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으며, 부처님 당시의 불문율에 크게 어긋나는 것임에 틀림없다.
전통적으로 불교의 유지 발전은 출가와 재가라는 두 축의 역할 분담과 상호 유기적인 협조로서 이루어져 왔다. 답은 이미 내려져 있다. 우선 각각의 축이 누구의 비판 이전에 자기 역할에 얼마나 충실했느냐는 반성으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다.
최근 발행한 계간 <불교평론> 겨울호에서 홍사성 불교방송 방송본부장의 글 ‘출가와 재가의 새로운 관계정립을 위한 시론’은 요즘 벌어지고 있는 논란을 부추기면서도 해답을 찾기 위한 나침반의 역할을 하고 있다.
홍씨는 “한국불교가 주목해야 할 것은 부처님이 초기교단을 구성할 때의 정신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의 모든 논의의 출발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이며, 초기교단의 모습이다. “출가자는 수행에 전념하고 그 결과를 재가자에게 설법하는 것이 임무였다. 이에 대해 재가자는 성심을 다해 출가교단을 외호하고 공양하는 것이 임무였고 역할이었다. 그렇다면 한국불교의 출가와 재가가 선택할 방향은 ‘임무와 역할은 나누되, 협조와 화합의 마당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당위적 결론밖에 없다.”홍씨가 내놓는 몇 가지 방안도 출가-재가의 바람직한 관계 정립을 위한 논의점으로 삼을 만하다.
먼저 홍씨는 출가자의 역할을 수행과 교화로 전문화하길 권유하고 있다. 출가한 스님들이 재가자들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도덕적 권위에 바탕해야 한다. 수행은 누구를 가르치기 위한 수단 차원이 아니다. 스스로의 부처를 이루는 과정이며 수행자의 삶의 외형이다. “출가자가 만약 이런 역할(수행과 교화)에만 충실한다면 종교적 권위는 물론이고 불교의 사회적 영향력 자체가 달라질 것이다.” 홍씨의 이런 언급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간절함까지 느껴진다.
사찰 운영과 같은 세속적 업무는 재가자에게 위임하는 것이 둘째 방안이다. 사찰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세속에서의 사업체를 경영하는 것 이상의 ‘수완’이 필요하다. 부패한 행정관청의 관리를 만나 사찰 일을 논의해야 하고, 잘못된 법에 의해 가로막힌 장애를 넘어서야 한다. 일의 가운데에는 재물이 놓여 있다. 재물은 스님들을 세속화시키고 나아가 타락으로 이끄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종법에는 이미 사찰운영위원회를 구성토록 했으며, 운영위원회에 재가자의 참여를 보장해 놓고 있다. 운영위원회라는 제도가 재가자의 사찰운영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스님들을 재물의 유혹으로부터 지켜 주는 구실도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출가대중과 재가대중이 한자리에 모여 의견을 교환하는 기구를 만드는 방법이 검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견을 나누며 논의는 하되 최종 결정은 출가대중의 몫이다. 다만, 재가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는 창구는 있어야 한다. 종단의 중요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총무원 같은 중앙종무기관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상의 방안들은 요즘 출가-재가의 관계 정립에 대한 논의가 있기 때문에 나온 방안이라기보다는 부처님 재세시의 교단 운영의 모습이었다. 그동안 한국의 불교가 잊고 있던 부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개혁이라는 말을 하며, 불교의 개혁은 초기불교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늘 여여한 것인데, 고치고 혁파한다는 말이 불교에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불교는 지향점이 뚜렷하다. 다시 눈을 부처님 당시로 돌리는 것이다. 거기에서 출가와 재가의 바람직한 관계를 찾아오면 된다. 부처님 당시라는 거울에 현재의 우리를 비춰본다면 너무나 남루하다. 출가는 출가대로, 재가는 재가대로 스스로의 모습에서 너무 멀어져 있다. 그러므로 출가-재가의 바람직한 관계의 정립은 자기 반성에서 비롯되지 않으면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