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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여(均如)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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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등불을 이어온 이 땅의 스님들 - 편집실 1991년 03월 109호
균여대사(9l3-973)는 고려 태조 6년 황해도 황주에서 출생하였다.
스님의 속성은 변(邊)씨이며 부친의 성함은 환성(煥性)이요 어머니의 이름은 점명(占命)이었다. 어느날 밤 하늘에서 황금빛 봉황이 품에 드는 꿈을 꾼 어머니는 나이 60세에 임신을 했고, 7개월 후 스님을 낳으니 때는 서기 923년이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보현십원가의 저자로 화엄학의 대가로 알려져 있으나, 스님은 아주 추악한 모습으로 태어나 부모가 거리에 내다버릴 정도였다니 참으로 스님의 출생은 기구했다.
그러자 까마귀 두 마리가 어디선가 날아와서 날개로 아기의 폼을 가리고 보호하였다. 지나가던 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 아이의 양친을 찾아가서 목격한 사실을 상세하게 일러주었더니, 양친은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데려다 키우기로 하였다.
그러나 남에게는 차마 그 못생긴 모습을 내보이기가 싫어서 궤짝 속에 넣어 길렀다. 달이 지나 차츰 아기의 얼굴이 조금 나아지자 궤짝 속에서 꺼내어 길렀다.
그렇지만 스님은 얼굴 모양새와는 달리 아주 총명하여 강보에 싸여 있을 때부터 아버지가 입으로 들려주는 「화엄경」의 게송을 줄줄 외웠으며,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알만큼 영특하였다.
스님의 나이 15세가 되기 전에 양친을 여의었으므로 15세 때 사촌형 선란(善均) 스님을 따라 부흥사의 식현(識賢)화상을 찾아가 출가하였다.
은사였던 식현화상은 균여가 비범한 인물임을 단번에 알아보고는 그 당시 화엄학의 대가였던 영통사(靈遭寺)의 의순(義願) 효냉에게 나아가 화엄학을 연찬케 하였는데 그의 탁월한 재주는 여기에서 연마되어 화엄학의 큰 발자취를 나타내게 된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스님의 전기(廳記)에는 많은 신통과 이적(異廣)이 나타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광종의 부인인 대목황후에게 음창병이 생겨 백약이 소용없으매 스님의 스승인 의순화상을 청해 법약(法賽)으로 치유하려 했으나 의순화상에게 그 병이 옮았으므로 이에 27세의 균여대사가 향을 올리고 발원을 하자 씻은 듯이 나았는가 하면, 광종이 즉위식을 거행하려 하는데 연일 비가 그치지 않자 광종의 청으로 기청제(祈晴祭)를 지내자 먹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개이도록 하는 둥 그 외 스님의 이적은 헤일 수 없이 많았다.
스님은 그 후 왕사와 국사를 지냈으며 광종이 세운 귀법사(歸法寺)의 주지로 있으면서 제자들에게 「화엄경」을 강의하는 한편 저술에 몰두하였는데 스님은 세수 51세, 법람 36세, 서기 973년에 입적했으며 「화엄일숭법계도원통기(華嚴一乘法界圖圓通記)」등과 유명한 ‘보현십원가’와 같은 향가를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