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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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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바라봅시다 - 이죽내 2001년 02월 228호
사람이 정신적으로 건강하려면 어릴 때부터 건강하게 자라야 한다. 어릴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자라지 못하면 평생 어떤 형태로든 대가를 치르게 된다. 어릴 때는 의존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 의존적인 삶은 대체로 부모에 의해 가능하다. 그러므로 부모의 정신적 건강은 자식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어릴 때 부모와의 건강하지 못한 관계나 부모 자신들의 불행한 관계에서 자식들은 신경질이 되고 커서는 노이로제나 정신병까지 될 수 있다.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이 급성 정신분열증 증세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망상과 ‘죽어라’하는 소리가 들렸고, 병원에 오기 전에 칼을 들고 어머니를 찌르려 했고 밤에는 잠도 자지 않고 온 집안을 서성거리면서 꽥꽥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이 환자는 3주 가량의 입원치료로 증상이 호전된 후 수년간의 개인 정신치료와 가족치료를 받았다. 이 환자의 병의 원인은 부모간의 갈등과 분열이었다. 부모의 갈등과 분열이 환자의 정신분열증적 증세로 표현된 것이다. 아버지 되는 사람은 결혼 전에 소위 말하는 ‘어머니 아들’로서 결혼 후에는 아내가 어머니 역할을 해 주기를 바랐다. 반면에, 어머니 되는 분은 결혼 전에 ‘아버지의 딸’로서 결혼 후에는 남편으로부터 아버지 같은 보살핌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다. 서로의 의존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 싸움이 잦았고, 그 의존적 욕구의 좌절은 자식에게로 번져갔다. 특히 환자의 어머니는 맏딸인 환자에게 아버지를 헐뜯고 미워하면서 그녀를 은연중에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환자는 분열된 부모의 틈바구니 속에서 항상 부모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아버지에게 가깝게 다가가려고 하니 어머니 눈치가 보이고 어머니에게 다가가려고 하니 아버지 눈치가 보였다. 그러나 어머니가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을 보살펴 주었기 때문에 어머니 편에 설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환자는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과 아버지에 가깝게 다가갈 수 없게 만든 어머니에 대한 적개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은 ‘누군가가 나를 죽이려고 한다’는 망상과 ‘죽어라’라는 환청으로, 어머니에 대한 적개감은 칼을 들고 어머니를 찌르려는 행동으로 나타났다. 환자는 부모들이 교통사고로 죽는 공상을 할 정도로 부모의 갈등과 분열에 괴로웠다. 중학교 때는 환자 자신이 죽으려고 몇 번 시도한 적도 있었다.
자식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부모의 정신건강이 절대적이다. 부모는 자식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이 된다. 불안하고 불안정한 부모관계는 자식들에게 불안하고 불안정한 정서를 제공한다. 자식들의 정서적인 안정은 안정된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안정된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 신뢰감과 자신감이 생긴다. 그런 신뢰감과 자신감을 통해 바깥세계와의 관계를 원만히 할 수 있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들의 인격발달의 첫 모형이 된다. 부모를 닮아가면서 인격의 기초를 이루는 것이다. 첫 모형이 잘못되면 인격의 기초가 잘못되어 대인관계나 직업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되고 심하면 정신적 장애가 발생한다.
때때로 자녀들 문제로 상담하러 오는 부모들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를 보면 자녀들 문제는 바로 부모들의 문제이다. 부모들이 변하면 자녀들의 문제는 자연히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부모들은 마치 자녀들의 문제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대개 부모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생활태도와 가치관 중심으로 자녀들을 교육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갈등을 일으킨다. 자녀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러할 때 자녀들은 부모들로부터 이해 받고 있다고 느끼게 되고 부모와 대화하기를 좋아한다. 이해 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못하는 대화는 교육적으로나 치료적으로 무의미하다. 가령 앞에서 말한 환자의 경우 ‘누군가가 나를 죽이려 하는’ 생각과 ‘죽어라’하는 소리를 그 환자의 입장에서 이해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정신병자의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생각과 소리는 그 환자에게는 헛생각과 헛소리가 아니라 심각한 자신의 괴로운 삶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 괴로운 삶의 의미를 치료자, 환자 그리고 부모들이 이해하지 못했을 때 그 환자는 치유될 수 없었을 것이다.
부모들의 눈에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자식들의 문제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고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이유와 뜻을 이해하면 모든 문제는 스스로 해결된다. 대체로 부모들이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들어보면, 자기 중심의 이해이지 자식 중심의 이해가 아닌 것을 볼 수 있다. 자기 중심의 이해란 이기적, 자폐적 이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중심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다. 오랜 무명無明의 습기習氣에 쌓여 왔기 때문이다. 여하간 자식들의 문제는 일차적으로 부모의 문제이다.
부모가 건강하면 사실은 대화도 별 필요가 없다. 건강한 삶 자체가 대화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을 하기보다는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이 진정한 대화이다. 그리고 말보다는 비언어적인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진정한 뜻이 서로 소통되는 것이다. 건강한 부모는 그저 건강하게 존재하고 있기만 하면 된다. 자녀들에게 따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부모님의 행동을 보고 배워서 건강하고 올바르게 성장해간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건강하지 못한 부모들이 말을 많이 하고, 그 말은 대체로 잔소리에 불과하다. 불안하기 때문에 말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런 잔소리를 부모로서의 훈계나 교육으로 착각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말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마음상태를 반조返照해야 한다. 내 마음에 별 문제가 없다고 느낄 때 비로소 자식에게 이야기를 건넬 수 있다. 자심반조自心返照를 거치지 않고 내뱉는 말은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내 속의 문제가 내뱉는 말이 되기 쉽다. 내 문제가 내 뱉는 말은 병적이다. 그런 병적인 말에 자식은 병들 수밖에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청소년 문제도 청소년 문제라기보다는 성인의 문제다. 우리 사회에서는 오래 전부터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갖고 많은 논의와 대책이 강구되어 왔다. 그러나 별 실효성 있는 성과를 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문제의 본질을 잘못 보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본질은 성인에 있다. 자녀 문제의 본질이 부모에게 있는 것처럼 청소년 문제의 본질은 성인에게 있다. 또한 자녀 문제의 본질이 가정에 있는 것처럼 청소년 문제의 본질은 사회에 있다. 부모가 건강하고 성인이 바로 서고 사회가 제 구실을 할 때 자녀 문제와 청소년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본말本末을 전도하여 부모와 성인들이 자기반성은 하지 않은 채, 자식과 청소년의 문제들을 걱정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자식들과 청소년들은 ‘먼저 당신네들 문제나 걱정하고 해결하라’고 내심 코웃음을 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기성세대들은 근본에 대한 성찰을 해야 한다. 거기로부터 근본적 해결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