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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위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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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유지호 1991년 03월 109호
중동전쟁이 일어난 지 한 달이 넘었다. 미국의 가공할 폭탄이 연일 쿠웨이트와 이라크를 강타하여 그 피해는 엄청났다. 지상전에서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미국은 계속해서 무차별적 융단폭격을 감행했던 것이다.
장기화되는 전쟁에 많은 국민은 초반의 긴장감이 완화되어 이라크가 발사한 스커드 미사일을 미국의 패트리
어트 미사일이 맞추느냐 못맞추느냐에 더 흥미를 갖는 기이함까지도 노출한 적이 있다.
개전이 되면 폭등하리라는 석유값은 오히려 하락되었으며 최근의 국제 원자재값도 떨어지기까지 하는 특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미국과 서방측은 전후 복구사업에 관한 한 장삿속으로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보여지고, 우리나라도 여기에 한몫 낄려는 노력이 경주되고 있다고 한다.
지구 한편에서는 국토가 황폐해지고 수많은 사람이 전쟁의 고통속에 헤매이는데 적지 않은 지구촌의 사람들은 한가로이 텔레비전의 전쟁경기를 관람하는 기분으로 자기 잇속이나 따지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그런데 다행히도 이라크가 소련의 종전안을 받아들여 쿠웨이트에서의 무조건 철수를 포함한 8개항에 동의
함으로써 전쟁이 곧 끝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커지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소련파 이라크의 종전안을 거부하고 이라크가 받아들이기 힘든(사실상의 무조건적이고 완벽한
항복) 무조건 1주일내 철군을 완료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측은 종전보다는 전면적인 지상전의 개시로 이라크를 완전 패배시키려는 전략을 이미 결정해 놓고 있었던 듯하다.
전쟁을 개시할 때 미군은 ‘이 전쟁의 목적은 쿠웨이트의 해방’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은 소련과 이라크의 종전안 거부→신속한 지상전 감행을 선택함으로써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 제거와 이라크 군사력의 무력화, 그리고 전후 아랍에서의 패권 확보가 이 전쟁의 목적임을 분명히 했다.

평화를 빙자한 전쟁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미국내에 서조차도 반전 여론이 비등했던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런데 막상 전쟁이 터지자 대부분의 미국 국민은 이 전쟁을 지지하고 나섰으며 심지어 약 반수에 가까운 국민은 이라크에 핵무기 사용을 찬성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었다. 놀라운 일이다. 여지껏 미국은 자국내에서 국제전을 치른 적이 없는 나라다. 그런데 현대사를 보면 전쟁이 있는 대부분의 곳에 미국은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침략자 응징’과 ‘세계평화’ 등을 내세웠다.
이번 충동전쟁에서도 미국은 예의 ‘정의의 전쟁’임을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는 잘 알고 있다. 과거에 도 그랬듯이 이 전쟁이 ‘정의’나 ‘명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다만 강자의 힘에 눌리고 석유 등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 많은 국가가 미국등의 다국적군을 지지하고 지원하고 참여하고 있을 뿐이다.
도대체 그 참혹한 전쟁을 하면서 ‘평화’ ‘정의’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세계는 무엇인가?
다시 한번 이기적인 인간의 잔인함에 놀랄 뿐이다. 도대체 세계는 언제까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딴 나라를 침략하고, 사람을 죽이고, 생산시설을 부수고,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를 계속할 것인가, 이번 전쟁으로 어느 정도의 군인과 민간인이 죽고 부상당했는지 아직 정확한 통계는 보도되고 있지 않다. 다만 이라크의 하마디 부수상이 “개전 이래 26일 동안 모두 2만명이 죽고 6만명이 다쳤다. 경제적 손실액은 2천억 달러에 육박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말의 사실여부를 떠나 보도를 통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어마 어마한 사상자가 발생했고,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미국은 민간인 대피소까지 폭격을 가해 어린아이와 여자를 포함한 수백명의 사상자를 내고도 반성하지 않음으로써 그 잔인생을 감추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면적인 지상전까지 터졌으니 양측의 사상자는 폭발적으로 중대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미국 등 서방국가의 정부는 물론이고 다수의 국민이 이 전쟁을 지지하고 있다는 보도이다. 우리나라 정부도 개전 직후부터 신속하고도 일관되게 미국측의 입장을 지지해 왔다. 아니 지지정도가 아니라 전쟁지원금을 지급하고 의료진과 수송단까지 파견했다. 지상전이 장기화되면 얼마나 더 지원과 파견을 하게 될지 많은 국민은 걱정하고 있다.
전쟁의 고통을 경험하고 아직까지 그 기억이 생생한 나라로서 정부는 이래도 되는 건지 허탈할 뿐이다.
이 자리에서 새삼스럽게 전쟁의 원인이 무엇이고, 누가 옳고 그르냐를 따지고 싶지는 않다. 무어라 무어라
해봐도 결국은 승리자가 정의요 평화가 되고 말 뿐이지 않던가?
과연 세계는 강자가 약자를 지배해야 하고, 인간(류)은 자기(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런 존재에 불과한 것인지 회의스럽기만 하다.

아랍은 서방세계를 위한 희생양이어야 하는가.
대부분의 서방국가와 일본, 우리나라 등은 미국이 이 전쟁을 이겨야 한다고 한다. 왜? 미국이 이겨야 싼값
의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싼값의 석유를 위해서는 수많은 인명을 살상해도 좋다는 논리이다. 석유는 왜 필요한가? 한마디로 부강하게 살기 위해서일 것이다. 자기 나라가 잘 살기 위해서는 딴 나라 국토나 국민의 목숨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우리들이 함께 사는 세상이다.
그러면 시각을 이라크측에 돌려보자.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합병했든 침략했든 이는 석유값이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이라크는 이란과의 전쟁 등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다. 이 경제난을 석휴값 인상으로 타개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쿠웨이트 왕정은 친서방정책을 펴는 나라라 석유의 생산량을 대량화해 석유값 인상을 막아왔다. 쿠웨이트는 이라크의 이익과 상반되는 정책을 펴온 것이다.
또 원래 이라크와 쿠웨이트는 한나라였는데 역시 석유 때문에 미국, 영국등이 갈라놓았었다. 그리고 쿠웨이트의 왕정은 석유로 벌여들인 막대한 돈을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독점하고 있어 다수 국민은 불만이 고조되어 왔다고 한다. 그리고 힘겨운 상대 미국과 싸우는 사담 후세인을 다수의 아랍인은 지지하여 왔다고 한다. 이런 바탕하에서 후세인은 이 전쟁을 ‘성전’으로 규정하고 결사항전의 결의를 다지고 있다.
싼값의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한 전쟁이 ‘정의의 전쟁’이라면 갈라진 나라를 합병하고 석유값의 인상을 통해 자국의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전쟁도 용납되어야 하지 않을까.
잘 살려고 하기는 미국과 이라크, 서방과 아랍이 모두 마찬가지인데 왜 미국과 서방의 잘 살려는 행위는 ‘정의’이고, 이라크와 아랍이 잘 살려는 행위는 ‘침략’이 되는 것일까? 한낱 속임수에 불과하다.
아랍이 계속해서 서구와 미국 등을 위해서 희생양이 되어달라고 요구할 권리가 있는 나라는 없다. 왜? 미국과 서구가 아랍을 위해 석유 이외의 부문에서라도 희생을 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세계는 변해야 한다.
참으로 뜻 있는 사람들은 갈구하고 있다.
더 이상 살육과 파괴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되기를.
그러기 위해서는 이기심과 국가이기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세계와 인간의 오랜 습성이기에 하루 아침에 변화시키기는 어렵겠지만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다. 사람은 왜 사는가?
남을 죽이고 억압하고 지배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다. 남보다 잘 살고자 하는 욕구는 남은 가난하기를 바라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세계는 자꾸 바람직하지 못 한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이것을 변화시켜야 한다. 자기(국)만을 위한 삶에서 함께 ‘더불어’를 위한 삶, 남을 지배하기보다는 평등한 삶, 종속적인 관계보다는 주체와 주체의 만남으로 흘러야 한다. 또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풍토와 물질만능의 가치관을 개조시켜야 한다.
이 작업에 우리 모두가 나서야 한다. 스스로의 변혁을 통해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원력을 세워야 한다. 이와 더불어 타인과 함께 이 운동을 전개하고, 사회제도와 구조도 이러한 방향으로 개혁시켜 나가자.
이기심과 물질주의에 근거한 추악한 우리들의 모습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조차 없다면 인류에게 ‘희망’이란 단어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