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께서는 용성 대선사가 남긴 사상 중에서 누구나 새겨 듣고 실천해야 할 덕목으로 다음 세 가지를 특별히 강조하신다.
“우리 한민족은 누구누구 할 것 없이 올바른 역사관을 가져야 하는데 그 첫째는 ‘민족사관’이 정립되어 있어야 해요. 이는 또 민족주체성을 바로 인식하는 일이 내 이러한 사상이 바탕에 깔려 있을 때 비로소 진정으로 나라 사랑하는 마음과 충성심이 생기지 않겠어요 둘째는 ‘씨족사관’을 가져야 해요 이것은 조상을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가짐을 일깨워주는 것이지요 셋째는 ‘종교사관’이 바로 서있어야 해요 다시 말해서 부처님의 법을 따르는 자는 올바른 불교관이 정립 되어 있어야만 바른 신앙인으로서 자기 성숙을 통한 향상된 삶을 누릴 수 있어요. ‘종교사관’은 다시 ‘수평사관’과 ‘수직사관’으로 나눌 수 있는데, ‘수명사관’은 모든 중생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사상으로 불성을 가진 중생들이 하루 빨리 성불 인연을 지어서 해탈세계에 들도록 함이
근본목적이에요 ‘수직사관’은 불조(佛祖) 석가여래 부처님을 시작으로 하여 서역 전법과 중국을 거쳐 이 땅으로 이어지는 교외별전(數外別傳) 삼처전심(三處傳心)의 수직관계의 선맥을 잇는 일대사(一大事)를 말해요 물론 불교사관을 정립하는데 근간이 되는 것은 조사의 어록을 탐구하고 경전에 담긴 사상을 익히고 실천함에 있음은 두말 할 필요도 없겠지요 이러한 현 시점에서 볼 때 용성 대선사께서 주창한 민족사상을 재정립하는 일은 다른 어떤 일보다 중요하고,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스님께서는 스스로를 일러 용성 대선사의 ‘심부름꾼’이라고 칭할 만큼 한국불교의 중흥조로서 선사께서 남긴 위대한 업적을 총망라하여 오늘에 바로 펴는 작업을 하느라 불철주야로 애 쓰신다.
스님께서 용성 대선사의 유업을 받드는 데는 특별한 인연이었는데 그것은 곧 스님의 출가와도 무관하지 않다. 엄밀히 말하면 스님의 출가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용성 대선사와의 인연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나, 전세(前世)부터 절집과 불가분의 인연이 맺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스님의 고향은 전라도 남원군 운봉면인데 고조부님께서는 고향에서 현감을 지내셨고, 증조부님께서는 그 당시 백양사에 계시는 만암(壘魔) 대종사와 운문암에서 주석하고 계시는 용성 대선사와는 서로 친분이 투터운 사이였다. 조부님은 학문의 깊은 경지를 통달하신 도학자로서 또한 만암 ·용성 두 선사와 교류가 깊었다. 이렇게 집안이 대대로 내려오면서 만석 거부였는대다 불가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아버님께서는 독자로 태어나 오랫동안 독립운동을 하러 다니면서 늦도록 자식을 얻지 못하다가 귀하게 자식을 얻게 되었으니 그가 바로 2대 독자인 도문스님이시다.
스님께서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집안 식구들이 백양사엘 갔는데 그때 용성 대선사께서 조부님을 보고, “그대가 손자를 얻게 될 것이니 그 아이는 예사로운 아이가 아니라 큰 도승의 화현이니, 후일에 내 문하에 들게 될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스님께서 세상에 태어난 지 3세 무렵이 되었을 때 만암 대종사의 유발상좌가 되었으며, 어린 시절부터 절집 출입이 잦아지게 되었다. 스님께서는 아홉 살 때부터 금강산에 들어가 참선 수행과 여러 대덕 큰스님들과도 교류를 갖기도 해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조부님께서 선비로서 한문에 능통한지라 스님께서도 그 영향을 받아 어릴 때 이미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독파하시고, 전문 강원에 가서야 배울 수 있는 많은 경전을 두루 섭렵하게 되었다. 스님께서 본격적으로 출가생활에 들어간 것은 1948년 12세 되는 해이다. 용성 대선사의 전법제자인 동헌(東軒) 대사를 은사로 모시고, 만암
대종사로부터 사미계와 동산 대종사로부터 비구계를 받았다.
그동안 스님께서는 지리산 ·오대산 ·설악산 ·태백산 동지에서 수행하였으며, 삼척 흥복사 ·강릉 관음사 ·평창 극락사 ·경주 분황사 ·영주 부석사 ·남원 실상사 ·공주 마곡사 ·의성 고운사 ·장성 백양사 ·정읍 내장사의 주지직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서울 대각사의 주지 소임과 재단법인 대각회 상무 이사직을 맡고 계신다.
그밖에도 감찰원 감찰국장, 총무원 교무부장, 종회의원의 임무를 수행하셨고, 서울대 총학생회 및 영남불교 중 ·고등 학생회의 초대 지도법사를 지내면서 많은 불제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올해로 스님께서는 세수 57세, 법납 44세가 된다. 스님께서는 그동안 상식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들을 오직 중생을 사랑하는 넓고 크신 마음으로 이루어내어 많은 일화를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어린 시절 일제의 통치 하에서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매를 맞아가면서도 끝까지 조선말을 써야 한다고 뜻을 굽히지 않은 일, 해방이 되어 자기를 그토록 매질한 선생님을 아이들의 돌팔매에서 보호하여 무사히 본국으로 돌아가게 한 일, 6 ·25사변 때문에 좌익으로 몰려 죽음 직전에 처하게 된 많은 억울한 사람들을 국회에 건의서를 제출하여 인간 방생의 차원에서 200여 명을 모두 석방시킨 일, 불치의 병에 걸란 환자를 소생시킨 일 둥둥 스님께서 이루신 일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제 ‘용성 대선사 하면 곧 도문스님’을 떠올릴 만큼 스님께서는 용성 대종사께서 이 땅의 불교중홍을 위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선 유훈을 잘 잇고 선사의 사상을 보다 널리 펴는 일보다 더 급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 일은 곧 혼란한 시대에 햇불을 밝히는 일이며, 무디어진 우리의 가슴을 시원하게 두드리는 일이 될 것이기에 스님께서는 오늘도 쉬임 없이 그 일에 전념할 것이다.
글/이 철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