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공스님
스님은 금강산 지장암에 있었고 만공(滿空, 1871-1946)스님은 정혜사에 있었다. 먼저 만공스님이 스님에게 물었다.
“한암이 금강산에 이르나 설상가상이 되었다. 지장암 도량 내에 업경대가 있으니 스님의 업이 얼마나 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스님의 대답이다.
“이 질문을 하기 전에 마땅히 30방을 맞아야 한다.”
“맞은 뒤에는 어떻게 되는고?”
“지금 한창 잣서리 할 때가 좋으니 속히 올라오라.”
“암두(岩頭)의 잣서리 할 때에 참여하지 못함은 원망스럽지만 덕산(薦山)의 잣서리 할 시절은 결코 원하지 않노라.”
“암두와 덕산의 이름은 이미 알았거니와 그들의 성은 무엇인가?”
“도둑이 지나간 후 3천리가 넘었거늘 문 앞을 지나가는 사람의 성은 물어서 무엇하랴.”
“금선대 속에 있는 보화관이 금옥으로도 비하기 어렵다.”
이에 만공스님은 네모진 백지 위에 일원상(-圖相)을 그려서 스님에게 보냈다고 한다. 이러한 법문답이 금강산과 덕숭산 사이에 편지를 통하여 오갔던 것이다. 「만공선사법어집」에는 이외에도 두 가지 법문답을 더 기록하고 있다.
운봉스님
스님의 선문답 중에서 백미(白眉)는 운봉(雲峰, 1889-1946)스님과 벌인 불꽃튀기는 일전이다. 스님의 깨달음 자체를 의심하고 들어온 것이다.
“스님, 스님 오도송에 ‘부엌에서 불붙이다 별안간 눈밝으니/이를 쫓아 옛길이 인연 따라 분명하네/누가 나에게 서래의(西來意)를 묻는다면/바위 밑 우물소리 젖는 일 없다 하리’라고 하셨는데, ‘바위 밑 우물소리 젖는 일 없다 하리’가 어떻게 조사의(祖師意)가 될 수 있습니까?”
‘네 뜻이 아닌 고로 조사의니라.”
“스님께서 속서(洛書)에 능한 것을 익히 들었습니다.”
“내가 그대를 공부인으로 잘못 부를 뻔했구나.”(조용명, 「우리 스님 한암스님」, 불광, 1980, 7월호)
운봉스님은 스님에게 ‘당신은 속인이오’라고 들이 대고, 스님은 스님대로 운봉스님에게 ‘너는 공부하는 사람이 못된다’는 식이다. 임제종 간화선의 선문답에서 보이는 긴장과 준열함이 약여하게 드러나 있는 문답이다. 이분들의 문답 속에서 서로 무엇을 주고 받았는지는 위 대화의 피상적 분석으로는 이해될 수 없다.
스님은 경용스님에게 한 편지에서 “운봉이 좋은 사람인데 다시 이러한 사람을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제(弟)의 문하에는 이러한 사람이 없으니 가탄이외다”라고 술회하고 있으니 위의 선문답을 함부로 혜아리는 것은 금물이겠다.
경봉스님
경봉(鏡峰, 1892-1982)스님은 스님께 편지로 세 가지를 물었다.
1. 세존께서는 설산에서 6년 고행하신 후에 설산에서 나오셨는데 화상께서는 무슨 애착으로 오대산을 떠나지 못합니까?
2. 김운파, 백용성 두 스님이 입척하셨는데 지금 어느 곳에 있습니까?
3. 어떤 것이 화상의 열반 노두(路頭)입니까?
스님은 이 물음들에 대하여 편지 봉투 안에 백지한 장만 넣어서 보냈다.(「火中運華消息」)
운암스님
옛날 마곡(麻谷)과 단하(丹露)가 강변을 함께 가는데 물 속의 고기를 보고 마곡이 가리키며 ‘고기다 고기다’하자 단하가 ‘천연(天然)’이라 하였다. 마곡이 이튿날 단하에게 다시 묻기를 ‘어제 천연이라고 한 뜻이 무엇인7?’ 단하가 뒤로 자빠지는 자세를 취하니 마곡이 곡을 하며 ‘창천창천(蒼天蒼天)’하였다는 선문답을 운암스님이 제방 선지식에게 물어왔다. 이에 스님은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시비를 가지고 나에게 와서 판단해 달라고 하지 말라. 뜬 세상에 천착하는 것은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鏡峰大禪師日記 1944-2. 2.)
사또오
경성제국대학 교수이며 조동종의 고승이었던 사또오가 상원사로 스님을 찾아갔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이에, 조용히 앉아 있던 스님은 옆에 놓여 있던 안경집을 들어 보였을 뿐이다.
“스님이 일대장경과 모든 조사어록을 보아오는 동안 어느 경전과 어느 어록에서 가장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까?”
“적멸보궁에 참배나 갔다 오라.”
“스님께서는 젊어서부터 입산하여 지금까지 수도하여 왔으니 만년의 경계와 초년의 경계가 같습니까, 다릅니까?”
“모르겠노라.”
사또오는 일어나 절을 하면서 활구법문(活句法門)을 보여주어서 대단히 감사하다고 말하였다. 이 인사말이-끝나기도 전에 스님은 말했다. ‘“활구’라 말하여 버렸으니 벌써 ‘사구(死句)’가 되었군.”(呑盧, 「현대불교외 거인-방한암, 한국의 인간상, 제 3권)
우리가 격을 벗어난 대장부가 될 때, 그때 우리는 스님의 경계를 검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의심하고 의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