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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함경 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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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함경 산책 - 재연 2001년 02월 2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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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은 어버이, 남쪽은 스승,
서쪽은 아내와 가족, 북쪽은 친구와 동료,
땅은 하인과 일꾼, 하늘은 수행자들이다.
이들을 제대로 섬기고 존중하려는 마음으로 여섯 방향에 예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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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나들이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진종일 온갖 아름답지 못한 풍경에 시달려 고단한 눈 속으로 문득 거침없이 빨려 들어오는 게 있었다. 해질녘, 지리산 초입, 산그늘에 삐뚜름하게 걸려 있는 현수막 하나, 거기 쓰여 있었다.
“추운 겨울입니다. 그러나 따스한 봄날도 머지 않았습니다!”
품새로 보아 바로 옆에 있는 냉동 공장에서 내다 걸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냉동 공장이어서 더욱 절절하다는 느낌과 함께, 약간 넘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설핏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결사 반대!” “××××절대 불가!” 따위의 벽보와 전단, 그리고 소리 내서 읽기에는 너무 섬뜩한 구호와 주장들이 난무하는 이 삭막한 시절에 이런 현수막을 지나치는 건 그대로 흐뭇한 일이 아닌가! 감은 눈 속에 민들레, 제비꽃, 진달래 환하게 피어나는 냉동 공장 작업실이 그려지고 있었다.
요즘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추위와 어려움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거두절미하고,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나아가 인간과 자연 사이에 어떤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거기 응당 있어야 할 적절한 거리와 각도가 어긋났다는 말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사실 이 다양한 관계 속에서 우리가 어떤 각도로 얼마만큼의 간격을 유지할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특징이 유독 두드러지는 경전 가운데 하나가 빠알리 장부 니까야 제 31경인 Siglov da-suttanta (시갈라를 위한 충고; 장아함 제 16경 善生經)이다.
이른 아침 탁발길에 나선 부처님께서 한 젊은이와 마주치게 되었다. 방금 목욕을 마치고 성 밖으로 나온 시갈라라는 청년이었다. 옷과 머리가 물에 젖은 채 합장하고 동서남북, 그리고 하늘과 땅, 여섯 방향에 절을 하는 것이었다. 이유를 묻는 세존께 젊은이가 대답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이른 대로 행할 뿐입니다.”
전통이란 이렇게 알맹이가 빠진 빈 껍질인 경우가 있다. 본래의 의미와 내용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것이다. 부처님께서 이런 일을 그냥 넘겨 지나칠 리가 없다. 서론이 다소 장황하기는 하지만, 이 경전의 본론은 바로 가족과 이웃, 그리고 보다 확장된 사회 안에서 어떻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를 설명한다.
“젊은이여, 동쪽은 어버이를 가리키는 것이요, 남쪽은 스승이며, 서쪽은 아내와 자식들이요, 북쪽은 친구와 동료들이니라. 그리고 땅은 하인과 일꾼들이요, 하늘은 수행자, 사문과 바라문들이다. 이 곧 여섯 방위니, 이 여섯 부류의 사람들을 제대로 섬기고 존중함으로써 여섯 방위에 바른 예를 올리는 것이니라.”
즉, 부처님께서는 한 인간과 조우하는 다양한 인간군을 크게 여섯 부류로 나누어 각 방향에 배치함으로써 온 사회를 하나의 유기체로 그려 놓고, 이들이 서로 섬기고 존중하는 것이 바로 여섯 방위에 대한 진정한 예경이라고 가르친다. 달리 말하면, 말짱한 심신으로 이 사회의 한 부분을 점하고 있는 인간이 섬기고 존중해야 할 대상은 동서남북 혹은 하늘과 대지, 각 방위에 있을 법한 신령스러운 존재가 아니라, 내 바로 앞뒤, 좌우, 그리고 위아래에 있는 인간들이라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대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다.
“젊은이여, 남편이 서쪽인 아내를 대함에 다섯 가지 도리가 있으니: 존중하고, 깔보지 아니 하며, 거짓되지 않고 성실하며, 안주인으로서의 권위를 세워 주고, 때맞추어 패물을 사 주어야 한다.
젊은이여, 남편의 서쪽인 아내를 섬김이 이러하니 아내의 남편 사랑 또한 그와 같다. 이렇게 행복하고 두려움 없이 서쪽에 극진한 예를 올리는 것이니라.”
다분히 권위주의적인 남성들의 안목에, 또는 오직 공空과 무無, 깨달음을 이야기하는 경건주의자들의 눈에 어딘가 이상해 보이는 대목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아내에게 때맞추어 패물을 사 주라고 충고하시는 부처님이라니! 그러나, 부처님은 애초 그런 분이다. 어디 그뿐인가? 고용인에 대한 사용자의 도리를 보라! “젊은이여, 주인으로서 땅인 하인과 일꾼들을 살핌에 다섯 가지 도리가 있으니: 각자의 힘과 능력에 맞는 일을 배정할 것이요, 음식과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고, 병들어 앓을 때 살펴 거둘 것이며, 특별한 음식이 생기면 함께 나누고, 제 시간에 일손을 놓게 하는 것이다.
젊은이여, 주인이 땅으로 섬긴 일꾼들 또한 주인을 사랑하고 섬길 것이니: 주인보다 먼저 일어나고, 나중에 잠자리에 들며, 주어진 것 외에는 취하지 아니하며,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고, 주인의 이름에 흠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젊은이여, 주인이 일꾼들을 섬김이 이러하니 일꾼들의 주인 사랑 또한 그와 같다. 이렇게 행복하고 두려움 없이 땅에 극진한 예를 올리는 것이다.”
여기 ‘섬기다’와 ‘사랑하다’라고 번역한 빠알리어語 동사 ‘paccupahahati’와 ‘anukam pati’는 사실 ‘시중들다’와 ‘연민의 정을 품다’라고 옮겨야 마땅하다. 그런데, 강자로 보이는 사람이 약자의 ‘시중’을 들고, 약자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강자로 여겨지는 사람에 대해 연민의 정을 품어야 된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anukampati’라는 단어를 이해하면 이야기는 자명해진다. 이 단어는 본래 ‘anu-kampati’, ‘따라서-떤다’, 즉, ‘상대의 마음이 전해져 내 가슴도 함께 떨린다’는 뜻이다.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강산이, 그리고 만사가 그렇게 섬기고 감동하는 세상이야말로 늘 꽃피고 새 우는 봄날이 아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