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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신을 머리 위에 얹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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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법전 1999년 01월 203호
제기분명참처친提起分明軟處親이라
낙화비서박행인落花飛絮撲行人이로다.
초혜두상출문거草鞋頭上出門去하니
사월원하엽엽선四月圓荷葉葉新이로다.
들어 올릴 것 분명하고 벤자리 친절한데
지는 꽃 나는 풀솜 행인을 때린다.
짚신을 머리에 이고 문 밖을 나가니
사월의 둥근 연잎 잎새마다 새롭구나.

남전스님이 동당 대중과 서당 대중이 싸우자 고양이를 베어 버리고 난 뒤 그날저녁에 조주스님이 돌아오자 다시 ‘남전참묘南泉斬猫’의 공안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조주스님은 그 자리에서 짚신을 벗더니 머리에 이고서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이에 남전스님이 말하였습니다.
“만일에 네가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 고양이를 살렸을 텐데.”
이것이 조주스님이 짚신을 머리 위에 얹었다는 조주대혜趙州載鞋 공안입니다.
겨울 안거를 맞이하여 신발 법문을 좀 할까 합니다. 새 털신도 신고 마음도 새 신발만큼이나 새로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발 이야기는 달마대사로부터 시작됩니다.
달마대사께서 열반에 들자 웅이산熊耳山에 장사를 지냈습니다. 그 뒤 삼년 만에 위 나라의 송운宋雲이 서역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총령에서 달마대사를 만났습니다. 대사는 손에 신발 한짝을 들고 홀홀이 가고 있었습니다. 이에 송운이 의아하게 여겨 물었습니다.
“스님 어디로 가십니까?”
“서역으로 가노라.”
송운이 돌아와서 사신으로 갔던 일을 왕에게 아뢰고 난 뒤 오는 길에 달마 대시를 만난 일까지 말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놀란 황제는 무덤을 열게 하였는데 빈 관에 신발 한 짝만 남아 있었습니다.
신발은 상대방의 공부 경지를 알아보는 데도 이용됩니다.
장경회운章敬懷揮 선사가 출세한 뒤에 백장스님이 한 수좌를 시켜서
“그대는 장경에게 가서 그가 법상에 오르거든 좌구를 크게 펴고 세 번 절한 뒤에 장경의 신발을 가져다가 윗쪽의 먼지를 털고 장경의 얼굴 앞에다가 거꾸로 엎어 놓아라. 그리고 나서 그가 무어라고 하는지 나에게 와서 이야기해다오’ 하며 사람을 보낸 일도 있었습니다.

운문스님이 젊은 수좌에게 물었습니다.
“어디서 왔느냐?”
“사도査渡에서 왔습니다.”
“짚신이 얼마나 떨어졌느냐?”
젊은 수자가 제대로 대답을 못하고 우물거리자 스님이 대선 대답하였습니다.
“짚신이 아깝군.”
그러고는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짚신 떨어진 것이 헛되지 않군.”

남전스님과 조주스님은 은사 상좌간에 짚신하고 무슨 원수가 졌는지 심심하면 신발을 가지고 야단들입니다.
남전스님이 어느 날 손수 생반生飯을 떠서 생반 버리는 곳에 가서 허리를 구부리고 늙은 까마귀를 항해 말했습니다.
“무엇인고? 무엇인고?”하고는 고개를 돌려 조주를 바라다 보았습니다.
이에 조주스님은 등 뒤에 서 있다가 짚신 짝을 벗어던져 까머귀를 쫓아 버렸습니다. 그러자
남전스님은 고개를 숙이고 돌아가 버렸습니다.
두 스님은 이렇게 짚신을 통해서 서로 공부를 물었던 것입니다.

조주스님이 신발을 머리에 인 소식에 대하여 취암기翠岩璣 선사가 한마디 붙였습니다.
남전 노인의 일시적인 방편이 마치 어린 아기를 귀여워하다가 추해지는 걸 모르는 것과 같다.
세상 인정은 차고 더움을 살피고 사람들의 뜻은 높고 낮음을 쫓아 간다. 앞은 은산 철벽인지라
나아가자니 문이 없고 물러서자니 길이 없다. 등 뒷 쪽은 물에 합하고 진흙에 섞여서 한바탕
어지러운데 천고千古가 지난 뒷날에 뒷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줄은 전혀 몰랐을 것이다.
만일 추암이라면 그렇게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설사 짚신 두 짝을 모두 머리에 이고
나아갔을지라도 몽땅 베었을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끊어야 할 것을 끊지 않으면 도리어
재앙을 부르기 때문이다. 감히 여러분에게 묻노니 오늘의 한 가닥 공안을 어떻게 풀이할꼬?
만일 바로 헤아려낸다면 옛날의 남전이 오늘에도 여전히 살아있겠지만 제대로 헤아려내지
못했기에 취암이 오늘 실마리를 조금 드러내 보이겠으니 여러분들은 잘 들어라.
청산靑山은 지해마금고祗解麽今古어니와
유수流水는 하증세시비何曾洗是非리오.
청산은 고금을 꿰뚫을 줄 알거니와
흐르는 물은 일찍이 언제 시비를 가렸던가.

조주스님은 남전스님의 적자嫡子입니다. 처음을 말하면 끝을 알고 거량하자마자 바로 의도를 알아차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 저녁 남전스님이 고양이를 베어 버린 소식을 묻자 조주스님이 대뜸 짚신을 벗어 머리에 이고 밖으로 나가 버린 것은 활구活句를 참구하고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새롭고 시각마다 새로우므로 이 자리는 일천성인一天聖人이라고 할지라도 실오라기 하나만큼도 바꾸지 못할 것입니다. 모름지기 자기 자신 속에 원래부터 갖추어져 있는 보배로부터 우러나와야 조주스님의 전기대용全幾大用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남전스님이 고양이를 일도양판一刀兩斷한 것으로만 아직 완전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조주스님의 동작을 기다려서야 비로소 원만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시회결제 대중이여 !
남전스님의 살림살이를 알고자 하는가?
그 죽은 고양이니라.
조주의 살림살이를 알고자 하는가
떨어진 짚신이니라.
그러나 여러분들은 절대로 손을 대지 말라.
손을 대면 여러분의 손을 더럽히리라.

공안원래문조주公案圓來問趙州하니
장안성리임한유長安城裏任閑遊라.
초혜두대무인회草鞋頭載無人會하니
귀도가산변즉휴歸到家山便卽休로다.
공안을 분명하게 하여 조주스님에게 물으니
장안성 안에서 마음껏 한가로이 노니네 .
짚신을 머리에 이었으나 아는 사림이 없어
고향산천에만 갔다 하면 모두가 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