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의 산사의 풍경은 상상만으로도 아름답다.
그런 아름다운 겨울 산사에서 난생 처음 느껴 본 또 다른 행복으로 나는 지금도 즐겁기만 하다. 해인사에서의 1박 2일이 기억 속에 영화처럼 펼쳐진다.
작년 11월호에 실린 <해인지 독자와 필자와의 만남>의 공고를 보고 1박 2일간의 행사 일정이 마음에 들어 주저없이 참가신청을 했었다.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해인사는 언론 매체로만 접했을 뿐 단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다.
팔만대장경으로 더욱더 유명하다는 해인사. 그래서 나의 일본인 친구도 가 본 적이 있는 우리의 절 해인사로 가는 길이 내겐 초행길이었다. 설레이는 마음과 들뜬 기대감으로 찾아간 해인사에서 먼저 나를 반겨준 것은 ‘가야산 해인사’라고 쓰여진 일주문이었다. 일주문 앞에서 합장 반배하면서 다소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사천왕문을 지나 경내에 들어섰다. 입재시간보다 두어시간 일찍 도착한 덕에 조용히 경내를 둘러볼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우선 대적광전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나서 불심과 과학으로 이루어진 장경각 내 팔만대장경을 참배했다. 유구한 세월을 이렇게 묵묵히 이어져 왔다는 것이 대단하다 못해 경이롭기만 하다. 경판 속에 담긴 부처님의 말씀들.
‘와~~~아’ 경내를 둘러보는 나의 입가에선 그저 외마디 탄성만 되풀이되고 있었다.
오후 6시 30분부터 보경당에서의 입재를 시작으로 여섯 번째 해인가족모임인 <해인지 독자와 필자의 만남>은 관암 스님의 사회로 정숙함 속에서 시작되었다. 해인지와 인연 맺은, ‘동자승과 풍경’으로 유명한 원성 스님, 라디오 불교방송 『차 한잔의 선율』을 진행하고 계신 진명 스님, 실상사 강사인 원철 스님, 관음사 주지를 맡고 계신 현진 스님, 희랑대의 경성 스님 그리고 경북대 이죽내 교수님, 동국대(경주캠퍼스) 윤영해 교수님을 비롯해 해인지 편집위원의 소개와 함께 행사 일정에 따라 해인지 가족의 철야정진이 시작되었다.
첫 강의는 ‘불교와 정신건강’이란 주제로 경북의대 교수로 재직 중이신 이죽내 교수님께서 2시간에 가까운 명강의를 하셨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있어 불교는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또 우리가 불교를 어떤 방향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말씀하셨다. 강연 후엔 몇몇 해인 가족의 정신과 관계의 의문도 친절하게 상담해 주셨다. 그리고 『풍경』이란 책을 내신 후로 더욱 유명해지신 원성 스님의 재밌는 전생이야기가 이어졌다. 필자 중에서 유일하게 여성이셨던 진명 스님은 불교방송과 인연을 맺게 된 얘기부터 신행상담까지 작은 질문에도 성의껏 답해 주시던 자상함이 고마울 뿐이었다.
밤 12시가 넘으면서 처음 시작과는 달리 다소 흐트러진 모습이 보여질 때쯤 요가연구소의 원장 김미숙 님의 친절한 요가강습으로 느슨해진 몸을 바로 하였다. 뒤이어진 간식시간.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다고 누가 그랬던가요? 행사를 주관한 해인사 종무소의 배려로 우리가 강의를 듣는 방들은 너무도 따뜻했었다. 그래서 간식을 먹고 난 후 몇 분은 졸린 눈을 하고 있을 때쯤 현진 스님의 재치 넘치는 언변言辯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법문을 들려 주셨다.
쉬는 시간 해우소를 다녀오면서 바라본 해인사에서의 밤하늘에는 도심에선 볼 수 없던 겨울 별들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달빛 아래 고요한 해인사.
그 속에 깨어 있는 해인 가족 그리고 무수히 반짝이는 밤하늘에 별빛이 아름답던 그 날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만 같다. 2백여 명의 독자들이 청화당, 지장전 등으로 나누어졌고 강연을 맡으신 필자 분들은 번갈아 다니시면서 강의를 하셨다. 난 그 중에서도 인원이 가장 많았던 지장전에서 강의를 들었다.
새벽 3시가 넘어선 아침, 예불을 알리는 법고 소리를 비롯한 범종, 목어 그리고 운판 소리는 세상의 어떤 음악소리보다 청아하고 아름다웠었다. 비록 산사의 새벽공기는 차고 옛날 마루바닥이라 온기가 없는 보경당에서 해인가족들이 관암 스님과 함께 한 아침 예불은 더러 서툰 모습이었다. 그래도 2백여 명의 불자가 하나되어 아침 예불을 하던 그 모습을 아마도 부처님께선 기특히 여겼을 것이다. 아침 예불을 끝내고 동국대(경주캠퍼스) 윤영해 교수님께서 ‘건강한 사회를 위한 종교의 역할‘이란 주제로 비교종교학적 관점으로 불교와 기독교의 차이를 알기 쉽게 얘기해 주시면서 불교만이 가지는 사회 정화적인 기능과 역할에 대하여 열성적으로 강연해 주셨다.
그리고 관암 스님과 함께 한 사경기도시간. 사경기도에 대한 의의와 사경기도의 올바른 절차와 예법에 대해 자상한 설명과 아울러 선망부모를 위한 법성게 사경기도라는 뜻깊은 시간을 가지도록 해 주셨다.
산사에서 맞이하는 아침 공양시간. 철야정진의 피곤함과 이른 식사시간으로 입맛이 없었지만 행사 일정에 따를 것을 이미 부처님 앞에서 약속을 한 터라 도반들과 공양간에 가서 공양을 했다. 역시나 사찰음식은 정성 이외에도 수행의 수단으로 여겨져 온 까닭인지 반찬 하나하나에 깔끔하고 정갈한 맛이 나서 집에서 먹던 밥과 달랐다. 해인사 공양간 행자님의 수행정신이 배어 있어 밥은 달고 맛있었다.
8시 30분쯤 대웅전 앞에서 참가자 전원의 기념사진을 찍는 것을 마지막으로 행사 일정이 모두 끝나고 9시경 지장전에서 회향을 하였다.
참으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편으론 참으로 긴 감동의 여운으로 남는 시간이었다.
짧은 시간이었다는 아쉬움과 긴 감동의 여운으로 남는 시간을 이렇게 다시금 『해인』이라는 책자로 만날 수 있다는 것에 감사드린다. 부처님의 법음이 가득한 해인사에서 너무도 좋은 인연 너무도 기쁜 인연들을 많이 만나고 왔음이 아직도 내겐 가슴 벅찬 즐거움이다.
‘일체 복의 과보는 마음을 갈고 닦는 것에 달려 있으며 마음이 순수하고 선하여 평소에 사람들과 선연善緣을 맺어 놓으면 저절로 장수를 누린다. 또 마음이 후덕하고 자비로우면 재앙도 언젠가는 복으로 바뀐다’고 말씀하셨던 육조혜능 선사의 말씀을 빌리지 않더라도 매달 우리가 마주하는 『해인』으로 세상 살아가면서 지치고 힘든 몸과 마음을 바로잡고 큰스님의 법문 속에서 부처님의 말씀을 가까이 접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해인지를 통한 해인가족모임 <독자와 필자와의 만남>이 늘 한결같은 『해인』처럼 푸르게 자라나길 기대해 본다. 2000년 해인지 가족모임에 참가하셨던 모든 도반과 좋은 강의를 해 주셨던 경성 스님, 원철 스님, 원성 스님, 진명 스님, 현진 스님, 두 분 교수님 그리고 편집장으로서 행사를 주관하시느라 노고가 많으셨던 관암 스님을 비롯한 여러 님들에게 지면을 통해 감사인사를 전한다. 금년 한 해도 늘 건강하시길 두 손 모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