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과 컴퓨터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이달의 이야기 - 주경
2001년 02월 228호
개인용 컴퓨터(PC)라는 문명의 이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불과 10여 년의 세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인간 세상은 이미 컴퓨터 없는 일상을 상상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처음 개인용 컴퓨터가 출현했을 때 그 가격도 비싸고 매우 귀한 물건일 뿐만 아니라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은 시대를 앞서가는 소수의 엘리트집단에 속하고 있었다.
컴퓨터기술은 제조회사에 따라 이름을 달리 쓰기도 하지만 가장 최신모델에 해당하는 펜티엄4에 이르기까지 286, 386, 486, 586(펜티엄), 펜티엄2, 펜티엄3로 급속히 상승해 왔다. 중앙처리장치(CPU)의 성능향상에 따른 데이터 처리속도의 차이에 따라 숫자를 높여가며 짧은 시간에 쉼 없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온 것이다.
그 중에 386컴퓨터는 컴퓨터 발전 과정에 있어서의 독특한 위치로 인해 30대 나이에 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60년대에 출생한 세대를 지칭하는 의미의 386세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속칭 낀세대라고도 하는 386세대라는 말의 등장은 세계적으로는 2차 세계대전 후 우리에게는 한국전쟁 후 출생한, 전쟁 뒤에 따르는 극도의 난관과 궁핍을 딛고 일어서야 하는 전후세대라고 불리는 세대와 70년대 이후 개선된 경제상황 아래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살아온 신세대 사이의 세대를 지칭하는 말이다. 시대적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상황이 386컴퓨터의 발전과정에서의 위치와 유사하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컴퓨터와 함께 할 수밖에 없는 현시대의 대표적 문화현상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통신기술의 발달은 이미 새로운 세상의 틀을 세웠고 컴퓨터 사용은 더 이상 어떤 개인이나 특정집단에 머무르지 않는다. 네티즌이란 새로운 시민의 정의 속에서 컴퓨터, 인터넷, 이메일 등은 이제 우리사회의 구성원이라면 피할 수 없는 보편의 생활양식으로 받아들여야 하게 된 것이다.
컴퓨터와 스님! 별로 잘 어울리는 개념이 아니다. 때로 신자들이 스님의 방에 들어와서 컴퓨터가 놓여 있는 것을 보거나 혹 걸망에서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는 것을 보면 상당한 놀람의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아직 스님하면 솔잎과 이슬을 먹고 사는줄 아는 사람이 없지 않고 중고등학교의 학생들 중에 스님을 직접 만나 본 적이 한번도 없는 아이들이 적지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형편에서 스님이란 존재가 가지는 신비한(?) 이미지가 컴퓨터와 잘 조화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다. 수년 전 스님이 되기 위해 입산한 행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할 때 노트북 컴퓨터를 사용한 적이 있었다. 그 때 행자들은 본사의 교육을 담당한 교무스님이 노트북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의외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출가를 결심하고 들어온 행자들의 의식도 전통적인 스님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컴퓨터나 노트북을 옆에 놓고 녹차를 마시는 스님의 모습은 적어도 386세대의 스님들에게는 그리 어색한 풍경이 아니며, 스님들 사회에서 아직 컴맹으로 남아 있는 스님 역시 점점 줄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동차 운전을 하는 스님,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는 스님 그리고 컴퓨터를 사용하는 스님 이러한 스님의 이미지는 아직 불자들에게조차 낮설고 생소한 모양일 수 있다. 하지만 전자의 두 가지는 스님들 사회에서 이미 보편화된 지 오래고 컴퓨터의 사용도 점차 보편화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이젠 선방에서 정진하는 젊은 스님들 중에도 핸드폰을 소지한 스님이 적지 않고 또 이런 젊은 스님들 중 일부는 도심의 PC방에서 때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고 한다. 물론 이메일 사용이나 정보검색의 시간을 갖기도 하지만 최신 게임에 몰입하여 삼매(?)에 들기도 하는 것으로 듣고 있다.
개인용 컴퓨터의 최초 모델이라 할 수 있는 XT가 나온 1990년 무렵 해인사 강원(승가대학)에서는 이미 자체적으로 컴퓨터 교육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해 지금은 보편화되다 못해 속도경쟁이 한참인 통신 전용선을 설치하여 매달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며 컴퓨터 통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몇 스님은 천리안을 이용하는 불자들과 만남을 갖고 지금의 천리안 불교동호회를 창립하는 데 참여하기도 하였고, 해인사와 스님들이 준비할 수 있는 자료를 정리하여 통신망 자료실에 올리기도 하였다. 때로 당시 유행하던 테트리스 게임에 빠져 몇시간씩 모니터 앞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참회의 벌을 받기도 하고, ‘출가인이 무슨 컴퓨터를 한다고 그러냐’는 지청구를 듣기도 하였다. 하지만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생각으로 스님들의 컴퓨터 사용에 반대하며 ‘그런건 컴퓨터를 잘 아는 재가인의 도움으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하던 스님들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각자 필요에 의해 컴퓨터를 사용하게 되었다. 컴퓨터를 아무리 잘 사용한다 하여도 재가인이나 어떤 타인이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 있음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컴퓨터를 이용하는 것이 승가에도 얼마나 효과적인가를 가장 먼저 인식한 스님들 중 한 그룹은 전통강원의 강사스님들이었다. 2500여 년의 불교역사 속에서 축적된 8만4천 대장경으로 표현되는 수없는 경전과 큰스님들의 어록, 그리고 당장 학인을 가르치기 위한 교재 및 참고자료의 정리에 컴퓨터가 얼마나 효과적이며 유용한가를 알게 된 것이다. 아직도 한문경전의 교습과 전통적인 산중생활로 한국불교의 한 맥을 잇고 있는 보수적 입장에 서 있는 강사 스님들은 낡은 강의노트를 컴퓨터 속으로 옮겨 넣으며 보다 체계적이고 유용한 자료를 확보하게 되었다. 또한 강사 스님들간의 정보교류와 자료공유의 폭이 커지며 학인들에게 더 풍부하고 넉넉한 가르침을 베풀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산문 밖 사회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자료와 정보에 접함으로 인해 보다 폭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가르치는 위치와 종무행정의 직위에 있는 스님들 중에 컴퓨터를 이용하지 않는 스님은 거의 없다.
불교의 보수성은 과거를 고집하고 집착하여 변하지 않는 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불교 보수성의 바탕은 부처님의 연기의 가르침에 따라 깨달음을 구하고 중생을 제도함에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근본적으로 스님들의 컴퓨터 사용이 이상하다거나 논의의 대상이 될 필요가 없다. 승가의 컴퓨터 사용이 보편의 개념으로 자리 잡아 가는 이 시점에서 이제는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승가의 교육과 불교발전에 컴퓨터를 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종단적 연구와 대안마련이 필요한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