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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박하고 조급한 이 사회를 살면서 새삼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야박하지 않은 넘치는 정情일 것이다. 원래 우리 민족성은 각박하지가 않았다
푸짐한 것을 좋아했고 푸짐하고 넉넉하다 못해 헐렁한 것을 ‘멋’으로 알던 민족이었다. 그래서 자로 잰듯한 정확성과 합리적인 삶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면서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그런 삶에서 편안함을 얻고 멋으로 돌려서 자랑으로 삼고 살아온 것이 우리의 민족성이었다
거리를 재는 데도 정확하게 따지지 않고 “한 시오리쯤”으로 통했고, 양을 셈하는 데도 “서너 말”이란 애매한 말로 거래해도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잘도 통하고 살았다
즉 여유가 있었고 융통성이 있었던 것이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재껴질듯한 헐렁한 갓을 쓰고 넓은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갈 지之 자” 걸음을 걷는 선비들의 유유자적한 모습에서 여유와 넉넉함을 느낄 수 있었으며,여인네들의 여덟 폭 넓은 치마를 휘감아 살짝 걷어올린 모습들이 모두 여유를 깃들인 멋이라 하겠다. 일꾼들이 받는 밥상의 밥그릇은 크기도 하려니와 예외 없이 고봉高捧밥이었다
밥그릇 높이보다도 배나 높게 눌러서 담은 밥은 넘치고 위하는 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술잔도 작은 것은 성에 차지 않는다. 그래서 뚝배기나 큰 대접이 곧 술잔이며, 마음 터놓은 주붕酒朋끼리는 아예 동이 술을 바가지로 권하고 마시는 것을 하나의 정취로 생각했었다
일본 사람들의 술잔인 정종잔이나 서양 사람들의 양주잔에 비하면 한없이 소박하고 넉넉해서 오히려 미련스럽도록 느껴지는 것이 우리 술잔의 멋이다. 그런가 하면 장사하는 도리도 좀 유달스럽다
즉 물건을 사고 파는 것도 거래 이상의 정이 넘치는 모습들이었다. 장거리 난전에 가면 “맛보기”란 것이 있었다
떡전에도 맛보기가 있었고 엿장수도 시원스럽게 맛보기를 준다. 사든 안 사든 맛보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았고, 그래서 푸짐한 맛보기 풍습 때문에 배고픈 나그네가 허물없이 요기를 할 수 있는 곳이 옛날 우리 난전의 풍습이었다
물건을 사면 덤으로 얹어서 정을 표현할 줄 알았다
감 한 접이면 백 개인데도 덤으로 열 개를 더 얹어서 백열 개가 한 접인 것은 관례였다
그리고 무슨 물건을 사고 팔든 깎아주는 “에누리”가 있어서 사고 파는 사람이 서로 정 주고 양보할 줄 아는 넉넉한 마음들이 있었다. 그렇게 살던 우리가 이제 그 넉넉함의 멋을 다 잃어 버렸다
서로 속지 않고 밑지지 않으려는 조급한 마음 때문에 그 푸짐하던 인심도 이제 사라지고 말았다
옛날에 서로 양보하던 미덕에서 이루어진 “에누리”가 대형백화점에서 사기 세일로 변모하였고, 유리 진열장 속에 잘 정돈된 상품들의 정찰제 거래의 시장문화가 더욱 인정을 얼어붙게 한다고 느껴지는 것은 나의 시대착오적인 생각일까? 이것이 이 시대의 보편적인 모습이요, 시류時流라고 체념해 버릴 수 없는 내 고집을 유치한 보수주의적 감상이라고 한다면 할 말을 잃어 버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각박하게 돌아간다고 해도 우리는 가끔이라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 때, 정을 잃지 않고 사람의 맛(人間味)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아서 하는 고언苦言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