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납자가 조주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오.
모든 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갑니까?”“내가 청주靑州에 있을 때 무명장삼 한 벌을 만들었는데 그 무게가 일곱 근이더라.”
똑같은 질문을 정주鼎州 땅 문수응진文殊應眞 화상에게 어떤 스님이 물어옵니다.
“모든 법은 하나로 돌아가니,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황하黃河는 아홉 굽이이니라.”
조주 스님의 ‘만법귀일萬法歸一’공안은 ‘청주포삼靑州布衫’으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만일 한방에 대뜸 갈 곳을 안다면 천하 큰스님들의 급소를 일시에 뚫어버릴지라도 그대들을 어찌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연히 물이 흐르면 강을 이루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조주 노승의 발 밑에서 매일 짓밟혀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불법의 핵심은 번잡스러운 언어 속에 있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그 스님이 조주 스님에게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가느냐?”고 묻자 “내가 청주에 있으면서 무명장삼 한 벌을 만들었는데 그 무게가 일곱 근이더라.”하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만일 어구語句에서 이를 분별한다면 저울눈금을 잘못 읽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구에서 분별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처럼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 공안은 보기는 어려워도 알기는 쉬우며, 알기는 쉬워도 보기는 어렵습니다. 어렵기로는 은산철벽銀山鐵壁이요.
쉽기로는 곧바로 뚜렷하여 계교한다거나 시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법귀일’ 공안과 형식은 다르지만 이치는 똑같은 것이 몇 가지 더 있습니다.
이산利山 화상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모든 색色은 모두가 공空으로 돌아가는데 그렇다면 그 공空은 어디로 돌아갑니까?” “혀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느니라.”
“어째서 그러합니까?”
“안팎이 똑같기 때문이니라.”
경산徑山 선사에게 어떤 납승이 물었습니다.
“모든 색色은 모두가 공空으로 돌아가는데 그렇다면 그 공空은 어디로 돌아갑니까?” “작약의 꽃이 피니 보살의 얼굴이요, 종려 잎이 퍼지니 야차夜叉의 머리로다.”“왜 그렇습니까?”
“다만 긍정하려는 생각만 낼 뿐이지 반드시 속이지는 않기 때문이니라.”
또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습니다.
“한 등불이 백천 등불을 켜는데, 그 한 등불은 어디서 켜졌습니까?”스님께서는 한 쪽 신발을 툭 차내면서 말했습니다.
“훌륭한 납자라면 그렇게 물어서는 안 된다.”
어쨌거나 원오悟 스님은 “모든 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갑니까?”라고 하니보화普化 스님의 “내일 대비원大悲院에서 재齋가 있다.”라는 말과 전혀 다를 바 없다고 했습니다.
오늘 가야산에서도 재齋가 있습니다. 해인사의 주지 스님과 노전 스님이 발원·집전하고 산중에서 정진하고 있는 오백여 명의 스님과 함께 여러분들은 오늘부터 천일결제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금생에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귀한 인연입니다. 천일이 긴 것 같지만 이 또한 잠깐입니다.
오락가락하던 마음이 끊어지면 두 다리를 쭉 뻗을 수 있는 경계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얼음지옥 불지옥에도 마음은 한가로울 것입니다. 지극한 염불 한 마디는 흐린 물 속에 던져진 마니주 구슬입니다. 마니주를 던지면 흙탕물이 저절로 맑아지듯이 염불하면 모든 망념이 일시에 그칠 것입니다. 망념이 그치게 되면 세상이 맑게 개일 것입니다.
세상이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지극정성으로 발원하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정진과 기도의 가피는 참으로 부사의한 것입니다.
중국 후주後周 시대 때 도비道丕 스님은 당나라 왕실출신입니다. 7살에 출가하였는데 19세 때 전쟁이 나서 장안長安이 점령당하고 임금이 낙양洛陽으로 피신하는 등 아주 어려운 난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곡식값이 폭등하고 먹을 것이 없어 온 백성이 야단이었습니다.
전 국토가 전쟁터가 되어 많은 사람이 징용되어 죽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곽산山 전쟁터에서 몰살한 유골 속에서 자기 아버지 유골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게 됩니다.
“우리 아버지가 전쟁터에서 죽어 유골이 이슬과 서리에 드러나 있습니다.
거두어 모시고 와서 장사지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부탁을 받은 스님은 곧 길을 떠났습니다.
드디어 곽산에 이르니 수많은 백골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습니다.
그 앞에서 밤낮으로 모든 영가의 극락왕생을 위하여 경전을 지송하면서 기도를 올리게 됩니다.
“저의 기도는 차별이 없습니다. 다만 해가 뜨면 높은 곳이 먼저 비추듯이 갸륵한 정성이 있사오니 알아보게 하소서. 선인들은 백골을 정성으로 감동시켜 알아보게 하였다고 합니다.
원하옵건대 뭇 뼈들 속에서 고를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그리고는 일념으로 정성들여 기도하게 됩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나자 뼈 무더기 가운데서 유골 하나가 튀어나와서 한참 동안 흔들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스님은 그 유골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그날 밤 상주喪主는 아버지가 되돌아오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튿날 새벽 스님에 의해 유골이 그 집에 당도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지극한 기도에 감응한 결과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시절일수록 각자 각자가 인연 있는 영가를 위해 기도하고 아울러 유주무주 일체고혼들도 함께 제도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남을 위하여 기도하다가 보면 그 가피가 나에게 오게 되는 것이 이 공부의 도리입니다.
신라 경덕왕 때 진주 땅에서 거사 수십 명이 혜숙惠宿 법사가 창건한 미타사彌陀寺에서 만일기도를 발원하여 함께 결사結社에 들어갔습니다.
그 때 귀진貴珍이라는 사대부 집에 욱면郁面이라는 계집종이 주인을 따라 절에 왔다가 공부할 마음을 내고서는 마당에 서서 열심히 염불하였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그 계집종이 일은 하지 않고 매일 따라와서 계속 기도를 하자 분수에 맞지 않는 짓을 한다고 생각하여 매번 곡식 두 섬을 주어서 하루종일 찧게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초저녁에 다 찧어 놓고는 또 절로 쫓아가서는 염불을 밤낮으로 게을리하지 않는 것입니다.
9년 째 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하늘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욱면낭자는 법당에 들어가서 염불하라.”
함께 기도하던 스님네들이 이 소리를 듣고서 놀라 법당에 들어가게 하여 자리를 마련해 주고는 전처럼 정진하게 하였습니다. 며칠 후 음악소리가 서쪽에서 들려오면서 욱면의 몸이 하늘로 솟구치더니대들보를 지나 지붕을 뚫고 날아갔습니다. 서쪽방향으로 가더니 사람의 몸을 벗어던지고는 황금색 몸으로 변하더니 연화대 위에서 대광명을 발하면서 서서히 서방정토로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욱면도 전생에 수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축생도畜生途에 떨어져 부석사浮石寺의 소가 되었습니다.
그 소는 불경을 싣고 다녔는데 그 공덕으로 종의 신분이긴 하지만 사람의 몸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공부를 발원하여 9년 동안 기도를 하던 중 등천登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욱면이 등천하면서 뚫어진 지붕구멍으로는 비가 쏟아져도 함박눈이 내려도법당 안이 젖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그 주인도 감응하여 자기가 살던 집을 내놓고 절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 인연으로 후세 사람들은 ‘욱면등천지전郁面登天之殿’즉 ‘욱면이 하늘로 올라간 법당’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천일 동안 해인사 대적광전에서도 승속을 막론하고 수많은 눈 밝은 사람이 쏟아져 나와 이 법당 안이 광명으로 빛나고 천장에 구멍이 수천 수만개 뚫리도록 같이 열심히 기도하고 정진합시다.
마지막으로 ‘만법귀일’ 공안에 대하여 이 산승이 한마디 하겠습니다.
“모든 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느 곳으로 돌아가는가?”“오늘부터 천일 동안 가야산 해인사에서 21번의 사십구재가 열린다.”
억喝!□
천이십구일 영가천도법회 입재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