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아함경 이야기를 시작하며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아함경 산책 - 재연 2001년 01월 227호
불교사에 위대한 스승들의 시도는 새 물을 끌어들이기 위한 물길을 판 것이었다.
그러나 자기만의 세계 혹은 교설이 아니라 결국 새로운 물의 원천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근본불교였다. 이런 주장에 대한 비판의 여지가 있지만 이런 문제와 더불어 아함경에 거듭 강조되는 교리와 비유
그리고 살아 숨쉬는 부처님의 설법을 찾아 논의해보자.

아함阿含은 산스크리트어 “gama”의 음역으로 애초 “도래, 접근, 도착”을 의미한다. 이런 기본적인 뜻이 “근본, 근원”이라는 뜻으로 확장되고, 결국에는 경전, 베다(Veda), 혹은 학문적인 기록과 성스러운 전적典籍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즉, 힌두교도들에게 “아함gama”은 전통적인 교설, 규율 혹은 신성한 기록을 뜻할 뿐만 아니라, 여타의 학문과 철학 체계, 그리고 그런 학문을 배우고 익힌다는 말이다. 불교도들의 빠알리(Pli)어語 기록에서도 아함이 “경전 모음”의 뜻으로 니까야(nikya)라는 용어와 함께 혼용되었다. 또한, 아함(gama)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익히고 통달하는 것, gama nma … buddhavacanassa pariyapuanam” 이라고 정의한 붓다고사(Buddhaghosa) 역시 이런 인도 전통을 따른 것이다.
물론, 불교 경전들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형태로 만들어졌던 것은 아니다. 여러 장소와 대상, 그리고 다양한 경우에 따라 설해지고, 구전되던 붓다의 가르침은 차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정리될 필요가 생겼다. 이런 결집 과정의 마지막 단계가 합송合誦(sagti)이었다. 즉, 누군가 이전에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바를 기억해내고, 거기 참가한 대중들이 모두 함께 외움으로써 그것이 참으로 부처님이 설한 그대로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경전의 도입부에 나오는 “내 이렇게 들었사오니, evam me sutam”이라는 구절은 곧 이 경전 내용이 누군가가 회상해낸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수집하고 정리된 부처님의 가르침을 뜻하는 빠알리 어語 “숫따sutta”, 혹은 산스크리트어語 “수뜨라 stra”는 모두 본디 실絲을 의미하며, 흩어져 널려있던 것들을 일관성 있게 꿰어 묶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렇게 결집된 경전들은 어떻게 전승되었을까? 붓다고사의 장부長部 니까야 주석서(Sumagala-vilsin)에 의하면 부처님의 대열반 뒤 곧 열린 제1차 결집 이래 율장律藏은 우빨리(Upli) 존자에게, 그리고 장부 니까야는 아란(nanda) 존자, 중부中部 니까야는 사리불(Sriputta) 존자, 상응부相應部 니까야는 대가 (Mahkassapa) 존자, 그리고 증지부增支部 니까야는 아나율(Anuruddha) 존자와 그 제자들에게 각각 위임되었다고 한다. 곧, 아함의 체계적인 전승을 위하여 여러 그룹이 각부 아함을 분담하여 연구하고 암송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Sarvstivda)의 율장 주석에 사부四部 아함의 구성과 기능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즉, “증지부 아함은 천신天神과 인간을 위한 설법을 모은 것으로, 설법사들을 위한 경이다. 중부 아함은 예리한 사람들을 위해 불법의 심오한 의미를 설명하며, 학자들을 위한 경이다. 상응부 아함은 다양한 선禪법을 담고 있으며, 수행자들을 위한 경이다. 장부 아함은 외도들을 논파하는 경이다”라는 설명이 그것이다. 이처럼 각기 분담한 경전을 암송하고 전파하는 사람을 bhaka송출자誦出者라고 불렀는데, 이런 전통은 붓다고사 시대에도 지속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경전을 필사하여 보관하는 것이 관례가 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경전이 널리 유통되면서 점차 암송해야 할 필요가 줄어들게 되었다.
상식적으로는 경전을 문자로 기록해둠으로써 보다 정확하게 전승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유통되는 여러 이본異本은 사실상 사경寫經 과정의 실수에 의해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 마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타자수에게 맡겨진 원고가 엉뚱한 내용으로 바뀔 수 있는 것과 같다.

경전은 우선 바르게 살아가려는 인간이 나 아닌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문제점을 극복하고 해소하기 위한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긴박한 삶의 문제와 거기에 대한 감동적인 설법도 전혀 다른 환경과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본래의 힘과 절실함으로 다가오지 못할 것이다. 처음에는 지극히 구체적이고 생생했던 부처님의 충고와 가르침도 두 다리, 세 다리 건너가다 보면 애초의 진지함과 생동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당초의 뜻과는 달리 이해되고 해석될 수도 있다. 주석서는 바로 이런 때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어떤 언급에 대한 여러 가지의 상이한 견해가 생겨날 때 각자의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생긴다. 이때, 특정 부분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승가 구성원들의 분열을 야기할 수도 있으며, 본래의 역동성을 잃고 경화되거나 독단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게 바로, 수많은 논서와 새로운 저작들을 만들어낸 배경이었다고 짐작할 수 있다.
뛰어난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행 공동체라 하더라도 집단이란 본시 정체되고 굳어지게 되어 있다. 집단 자체도 그러려니와, 그 집단을 유지하는 중심 사상 또한 굳어진다. 그렇다면 오랜 불교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있었던 위대한 스승, 용수, 무착, 세친, 달마 같은 분들의 역할과 업적은 무엇인가? 앞으로 다시 논의되겠지만, 결론부터 미리 말한다면, 승가에 정체 혹은 경화의 기미가 보일 때 그 분들이 시도했던 것은 새 물을 끌어들이기 위한 물길을 판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끌어들이고자 했던 새로운 물의 원천은 사실상 석가모니 부처님의 근본불교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분들은 결국 자기만의 새로운 세계 혹은 교설을 내세우기보다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근본불교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주장과 논리에 심각한 비판의 여지가 있지만, 앞으로 필자는 여기서 이런 문제와 더불어 아함경에서 거듭 강조되는 가장 기본적인 교리와 아름다운 비유, 그리고 당장 곁에서 살아 숨쉬는 부처님의 설법을 찾아 논의해보고자 한다. 이것은 우선 자신을 뒤돌아보고 근본불교의 바른 이해와 우리 수행 공동체의 변혁을 위한 모색일 수도 있다. 가장 강도 높은 변혁은 근본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