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용한 점占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해우소 - 관암 2001년 01월 227호
일년의 마지막 절기인 동지 이후로 정월까지 세상엔 일년 신수를 보는 것이 다반사로 되어있다. 지나고 나면 언제나 기쁨은 잠간이요 다사다난했던 한해였지만 또 새해를 시작하는 중생들의 마음엔 언제나 자신의 앞길에 대한 길흉과 운수를 알아보고 흉는 피하고 길 한 것을 얻고자 함이 인지상정인 것 같다. 여기에는 “세상만사 어디 우리 마음대로 되더냐! 운이 따라야지. 그리고 피흉취길避凶趣吉 하는 비법秘法이 있다더라” 라는 우리의 길흉에 대한 토착 문화와 인생의 경험이 서려 있다. 그래서 이맘때면 이런 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한 목하고, 가정에서도 먼지 묻은 토정비결 책이 반짝 빛을 발하는 때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나 동양에서 행해지는 모든 신점身占이나 도참서圖讖書(미래를 예언하는 책)는 음양 오행론에 근거하고 있다.

음양오행론은 초기에는 자연과학이나 세계관으로 시작되어 자연은 물론 인간세상의 여러 가지 현상과 관계를 응용 설명하는 이론적 틀로, 인생론으로 발전되어 신앙과 종교적 예언의 점괘 이론의 바탕이 되었다. 점이란 본래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앞날이 불안하고 어려운 시대일수록 성행하게 된다.

오래 전 내가 만행 시절. 정월달에 어느 큰 시장 바닥에 신점 경쟁이라도 하듯 신수를 봐 주는 돗자리 점포가 여러 있었다. 모두 담 벽에 “점占”자字를 크게 붙여 놓고 성업중인데 그런데 마지막 점포엔 “점占”자 라는 간판 대신에 【벙어리 할아버지가 근심을 풀어 드립니다】라는 종이 간판을 붙여 놓고는 수염하얀 벙 어리 할아버지가 신점에 관한 아무 책도 도구도 없이 반듯하게 앉아 있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점을 보고 가는 사람은 모두 말없이 흐뭇한 표정으로 엄지손가락으로 할아버지 점이 최고라고 표시하면서 돌아서 가는 것이었다. 점을 어떻게 봐 주 길래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따봉”이라고 추켜 주는 것일까…? 평소에 점에 관심이 별로 없었던 나도 호기심이 발동했다. “저도 좀 봐 주시지요? 영감님.” 이 말에 영감님은 나의 얼굴을 척 보더니만 손으로 안 된다며 가라는 것이었다.
몇 번 사정해도 계속 가라는 시늉을 내었다. 나는 오늘 갈 만행 길을 포기하고 할 수없이 옆에서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자기에게 찾아온 열 명 중 일곱 정도의 손님은 나처럼 신점을 봐주지 않았다. 그러나 선택되어 가계에 들어갔다 ! 온 손님은 모두가 근심이 사라진 기쁜 얼굴로 역시 “따봉”이라 표시했다. “어떤 점 이 길래… 어떤 이론으로 어떤 비책을 써 길래…”호기심이 극에 달하여 시장이 파할 때까지 기다리다, 할아버지가 떠난 후 안으로 들어 가보았다. 좁은 통로 마지막 끝 문에 “해우소解憂所”가 있을 뿐이었다. 벙어리 할아버지는 자기에게 신점을 보러 온 사람 중 대·소변이 마려운 손님만 척 보고 골라서 점을 봐준(?) 것이다.
모든 신점이 비불교적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벙어리 할아버지 신점은 매우 불교적이라 생각되어 어디에 사시는 누군지 따라 가볼걸… 아쉬웠다. 즉금卽今의 현실을 무시하고 지나간 과거는 무엇이며,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무엇인가? 여기 벙어리 할아버지에게 신점을 본 손님들의 화한 얼굴과 “따봉”의 손짓은 당연했다.
이미 자리를 파하고 떠난 할아버지 자리를 향해 나도 만면의 웃음을 지으며 엄지 손가락으로 “따봉”이라 추켜 주었다. 그리고 만나고 싶어 다음 오일장날에 그 자리에 가보았으나 다른 신점은 성업중인데 할아버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꿈을 꾸었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