잰 발걸음소리, 옷자락 부딪혀 서걱이는 소리, 스님들이 깨어나고 있다. 법고소리 축생의 잠을 깨우고, 범종소리 33천에 울려퍼져 뭇중생이 눈을 뜨는 시각,마음 다해 부처님과 제불보살님께귀의 다짐하는 눈푸른 납자들의 소리가 가야산을 파고든다.
“지심귀명례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至心歸命禮 三界導師 四生慈父 是我本師 釋迦牟尼佛…”
대찰의 예불은 웅장한 법당을 가득 메운 스님들로 인해 장엄하기만 하다. 일타스님 생전 법문에 절에 발을 들여놓는 것만으로도 청복淸福이라 했는데, 하루를 거하고 예불까지 드리니 이 얼마나 대복이랴.
예불은 끝났으나 스님들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예불이 다시 한 번 반복된다. 알고 보니 강원 학인 스님들의 수업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발원문을 더듬거리던 학인을 향해 “예불을 뭘로 아느냐!”는 입승 스님의 꾸지람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법당 안에 울린다. 스님들은 강원을 ‘중(僧)물들이는 곳’이라 하던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세속의 습을 떼어내고 출가자의 모습을 배어나게 하기 위한 작업이 쉬울 리 없다. 그래도 “요즘 아이들 버릇없어졌다,”는 학교 선생님의 고민에서 산 속 강원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큰스님들은 “계율도 사라지고 공부를 너무 안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을 보면. 해인사 강원 강주 지오 스님 역시 걱정은 마찬가지. “예전에는 강주 스님이나 강사 스님의 말씀이 법이었어. ‘오늘 이것 다 외워.’ ‘오늘 이 일 다해’ 하면 그날 다해야 한다고 알았어. 그 당시는 하루에 얼마를 공부하든지.
다음날 그걸 다 외워 바쳐야만 그 다음 진도가 나갔어. 한 사람이라도 못 외우면 진도가 안 나가. 꾸지람 받고 참회하고 그리 했어. 요즘에는 세속에서 자유분방하게 사회공부를 하고 들어와서인지 그거 개선하기가 어려워. 마음에 안 맞으면 사회 사람들 파업하듯 안 따르지.”요즘 출가연령은 평균 35,6세. 과거 17,8세였던 상황과 많이 달라졌다. 속가에서 살림해서 살다 출가한 경우도 상당수란다. 또한 불교를 전혀 모르고 출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더 출가자의 면모를 갖추는 데 어려운 점도 있다. “논리적으로는 견성해서 들어와. 그러나 실천은 제로라.”지오 스님은 머리만 커다란 요즘 학인들을 앞에 앉혀 놓고 좌복 뒤에는 항상 경책용 무기(?)를 마련해 둔다. 회초리와 죽비, 목침이 그것. 학인들이 공부에 게으르면 회초리를 들기도 하고 심할 때는 목침도 거침없이 날라 간단다. 스님은 그리 말씀하신다. 보지 않았으니 실제로 그리 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나 확실한 것은 “귀한 자식일수록 엄하게 키우라”는 지론을 갖고 있다는 점. 버릇없는 아이들에 대한 개탄, 공부시키려 애쓰고 잔소리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속가의 선생님이나 어른들과 다르지 않다. 지오 스님이 해인사 강주가 되면서부터 해인사 강원은 많은 변화가 생겼다. 비구계를 수지하지 않은 학인들은 승복동정을 갈색으로 하는 사미의제를 착용해야 하고 반드시 행전을 착용토록 하였다. 또한 일반 학교와 같이 강원을 옮길 때는 전학증을 끊어가야만 하고, 전에 없이 시험을 쳐 점수를 매기는 학점제를 도입하고 있다. 학점은 과목에 대한 점수가 50점, 해행解行 즉 예불, 공양, 운력, 소임, 언행, 복식, 출석, 간경, 기거동작, 하심 등 몸가짐을 10가지로 나누어 50점을 배정했다. 그래서 100점 만점에 평균점수가 95점 이상이면 장학금을 지급하고 50점 이하면 유급을 시킨다. 어느 강원에서도 시도되지 않았던 갑작스런 변화에 학인들은 이를 쓸데없는 구속으로 받아들여 한동안 해인사 강원은 들썩거리기도 했다. 강원의 공부하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시도해 본 학점제 등 제도들에 대한 만만치 않은 반발에 부닥치자 지오 스님도 한참 곤욕을 치렀다. “사회에서 점수 내고 시험 치고 하는 것이 싫었는데, 절에까지 들어와 시험 쳐야 하냐.”는 반대론에 대해 지오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사회에서 그렇게 안 하고 들어왔다 하면 절에 와선 더 해야 하고, 열심히 하다 들어왔으면 절에 와서는 더 해야 해. 왜냐? ‘중 승僧자’라는 것이 두 사람 몫을 한 사람이 해치운다는 뜻이야. 사람 인人자 변에 더할 증曾자야. 사람 하나에서 하나 더 첨부한 두 사람이 하는 몫을 한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이 승려들이야. 그런데 사회에서 하기 싫었던 것 여기 와서 해야 하느냐고 하면 말이 안 되지.”
스님은 까다롭게 사는 사람으로 통한다. 계율에 철저하기에 이르는 말이다. 그러기에 스님은 엄격할 수 있다. 학인들이 계행(음주나 흡연 등)을 지키지 않으면 그대로 퇴학이라고 단호히 말한다. “강원 학인으로 있을 때는 부처님 법대로 살아야 해. 그건 꼭 그래야 해. 부처님 법대로 안 사는 강원이 있다면 부처님 법대로 사는 강원으로 만들어야 해.
부처님 법대로가 뭐냐.
세 가지거든.
첫째는 계행 잘 지키는 것.
둘째는 경전 항상 독경하는 것.
셋째는 부처님 경전을 잘 풀이해 놓은 논장 있지 않은가.
논장은 참선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기 때문에 계율 잘 지키고 경학연구 잘하고 시간 나는 대로 경학연구한 것을 자기 스스로 반조해 보는 참선시간을 갖는 것 그것은 꼭 해야 해. 그래야 강원을 졸업하고 선방에 갔을 때 기초가 다져져. 그러나 현실은 너무 동떨어져. 계행은 무계행이고. 경전연구는 시간만 지나면 한 학년 마치는 것으로 알고 있어. 참선하는 시간은 전혀 없고.”그래서 스님은 학점제와 시험제의 실시를 강력하게 주창하고 있다. 전학증도 취지는 같다. 전학증을 끊으려면 일단 부득이한 사정이라는 것이 인정돼야 하고, 은사 스님 병수발을 해야 한다든지 하는, 옮겨가려는 강원의 허락을 맡고 와서 전학증에 전학가는 강원이 명시되며, 전학증 발부된 날짜에서 만 7일 안에 객실에 입방 등록이 돼야만 한다. 기일이 지나면 전학증은 무효가 되고 1년 유급이 되도록 명시해 놓았다. 예전처럼 공부하다 훌쩍 떠나서는 한두 달 뒤에 간다든지, 치문반 2, 3개월 하다 1년 지나 다른 강원에 사집반으로 들어간다든지 하는 일을 근절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는 혼자 맘만으론 불가능한 일. 행정체계가 엉성한 곳이 불교집안이 아닌가. 그러나 이제는 교직자회라는 공동의 채널이 구성돼 강원간 통로가 마련됨에 따라 가능해졌다고 한다.
지난 6월 결성된 교직자회는 전국 18개 강원 강주 스님들의 모임으로 초대회장을 지오 스님이 맡았다. 일단 교직자회에서는 전국 강원의 교재통일을 우선과제로 삼고 있다. “지금 교재의 70%가 통일돼 가고 있는데, 그건 교육원에서는 못해. 일선에서 가르치는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지. 해인사만 해도 내가 오니까 전국강원의 교재통일안에 맞지 않는 과목을 하고 있고 해당 과목은 없더라고. 예를 들면 2학년 사집과정에 도서와 절요라는 과목이 없고, 육조단경과 돈오입도요문 (대주어록)이 들어가 있어. 1차총회에서 교재통일은 했어. 그리고 이것만 갖고는 안 되겠다 싶어 필수과목에 ‘계율사상’ 한 과목을 추가했어. 그동안 강원에서 계율에 관한 필수과목은 한 과목도 없어. 단 행자과정 중에 사미율의 배우는 것이 있지. 그것도 상권밖에 안 배워. 그래서 사미율의 상하권하고 범망경 그 두 과목을 필수과목으로 할 것을 2차 교직자총회 때 확정을 했어.” 해인사에서는 이미 지난해부터계율사상을 강원 교과목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리고 교육원에 강사지원을 요청해 5명의 강사가 전국 강원을 순회하면서 일정기간 동안 강의를 하기로 했다. 과목은 인도불교사, 중국불교사, 한국불교사(조계종사 포함), 유식, 중론 등. 물론 비용은 교육원에서 부담하기로 한 것이다. “공부하는 데 필요한 분위기 조성은 뭐든 다 하려고 한다.”는 지오 스님은 이제 전산화를 통해 전국 강원을 온라인 네트워크화하는 일을 시도하고 있다.
선방에서 16년을 정진한 스님은 뜻밖에도 컴퓨터 활용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본인이 직접 성적을 전산화하는가 하면 학인들 리포트 작성도 반드시 컴퓨터로 타이핑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고 보니 스님은 강원의 강백으로, 경전을 번역해 출간한 역경사로, 동시에 유능한 포교사로서, 말 그대로 다재다능하지 않은 것이 없다. 스님은 말한다. “경율론 삼장에 다 능해 무불통달해야 한다. 한쪽만 능해서는 큰소리 못 쳐.”스님 방 벽에는 해인사 강원 초대 강주이신 운허 스님을 비롯한 역대 강주 스님들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없는 사진은 반드시 구해 걸어놀 참이다. 강주의 방에 역대 강주 스님들의 사진이 당연히 걸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상에는 컴퓨터 2대가 놓여 있다. 이 컴퓨터 안에는 현재 학인들 각각의 인적사항과 성적이 담긴 학적부가 입력돼 있으며, 해인사 강원을 거쳐간 학인들의 명단을 이 구석 저 구석에서 간신히 찾아내 입력을 하고 있다.
개인신상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누가 여기를 거쳐서 갔는지는 남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스님은 일일이 입력작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스님의 특기(?)인 자료정리와 기록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강원 뿐 아니라 불가 전체가 이 부분에는 지극히 취약한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조용히 본인이 만들어 해인사에서 시도하고 있는 학적부 즉 개인신상이나 성적표 등을 프로그램화하여 전국 강원에 제공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전국 어디서든 강원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학을 가도 학적부를 옮길 필요가 없다. 지오 스님은 논란이 많았던 학점제 등의 실시에 관해 생각보다 성과가 좋다고 말한다. 70∼80% 정도 성취되면 다행이다 싶었는데 굳이 수치로 나타내면 150%이상의 성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덕분에 “전국 강원의 학인들 타도 1호가 됐어.”하며 껄껄 웃는다. 그러나 “강원은 강원답게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고야 말겠다”는 스님의 의지에는 전혀 변동이 없다고 굳은 의지를 내보인다.
“누차 얘기하지만 출가자는 부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야. 예불도 경 읽는 것도 참선도 부처님 닮기 위한 것이라 부처님을 그대로 닮게 되면 성불한 것이지. 부처님을 닮게 만드는 것이 내 책무야. 나도 부처님 법에 따라 부처님을 닮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고. 주춤거릴 이유가 아무것도 없지. 그렇지 않은가?” 세상에 어른이 사라졌다고들 개탄한다. 아이들 잘못을 봐도 누구 하나 나서서 지적해 주는 이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말한다고 듣나’ ‘ 어른 애 구별 못하는 요즘 애들은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변명과 함께. 속가나 산사나 상황은 마찬가지. 어른의 부재시대다. 그래서 약간은 권위적으로 보이지만 어른이 되기를 자처한 스님의 용기가 소중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