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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 그 수행실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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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박원자 2001년 01월 227호
어머니가 참선하고 있으면 태아도 참선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다.
가부좌한 자세로 고요히 앉아 선정에 든 임산부보다 아름다운 모습이 있을까.
이보다 더 좋은 태교 또한 없을 것이다. 실천하는 것만을 얻을 뿐이다.

선정바라밀, 지혜의 밝은 빛
우리는 한 순간도 ‘생각’이라는 것을 멈추지 않고 살고 있다. 그 ‘생각’이라는 게 무엇인가. 수많은 생을 돌아오면서 말과 행동과 뜻을 일으키며 덧붙인 ‘업’의 움직임이다. 세간에선 이를 ‘고정관념’이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는 그 고정관념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사물의 실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며, 자신이 무한한 밝음으로 이뤄져 있음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습관이 아닌 지혜로 사물의 실상을 제대로 보려면 업으로 채워진 생각을 비워내야 한다. 고요하고 맑은 호수에 삼라만상이 온전히 비치는 것처럼 마음을 맑히는 일이 사물을 제대로 보는 것이다. 사물을 바로 본다는 것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하는 것이다. 순일한 집중을 통하여 마음의 때를 온전히 닦아내고 자신의 존재가 무한한 밝음으로 이뤄졌음을 자각하는 것을 ‘선禪’이라고 한다. 선정을 통한 맑고 밝은 상태에서 존재의 실상을 밝혀 인간의 마음 속에 깃들어 있는 무지를 타파하는 중요한 행법이 곧 선이다.

선정바라밀에서 가장 첫머리에 오는 수행이 ‘참선’이다. 물질문명 세계의 대안으로 일컬어지는 참선은 업장을 녹이는 지름길이요, 지혜의 밝은 빛이 드러나는 수행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선’이라는 수행을 통해서 업장을 녹이고 밝은 지혜를 얻게 된다면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되므로 아이를 가질 부모에게나 가진 부모에게는 좋은 수행법이 아닐 수 없다. ‘참선의 자세와 호흡방법’을 성우 스님(한국태교연구소 고문)은 ‘태교에세이’에서 이렇게 설하고 있다.
“가부좌나 반가부좌 자세를 한 다음, 허리를 쭉 펴고 척추는 일자가 되게 한다.
심호흡은, 들이쉬는 숨의 폐활량을 최대로 하여 천천히 들이쉰 다음 숨을 멈춘 후 멈출 수 있을 때까지 멈추었다가 자연스레 내쉰다. 또 내쉴 때와 들이쉴 때의 시간을 같이하고, 숨을 들이쉬고 멈추고, 내쉬는 시간을 고르게 하는 것이 좋다. 이같은 방법 말고 자신이 익힌 바가 있으면 하던 대로 해도 괜찮다. 이렇게 호흡을 열 차례에서 스무 차례 정도 하고 나면 자연히 머리에 아무 생각이 없고 몸 역시 힘이 들어가지 않는 편안한 상태가 된다. 호흡을 제대로 하여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을 때 ‘나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한다. 숨을 들이쉬면서 ‘나라는 것이’까지 생각하고 숨을 내쉬면서 ‘무엇인가’ 하고 자연스런 호흡의 들숨과 날숨에 맞추어 ‘나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계속하여 반복한다. 그러나 거기에서 어떤 답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나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 나면 바로 벽에 부딪치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래도 거기에 개의치 않고 오직 ‘나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되풀이하여 삼십분이나 한 시간쯤 계속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것을 ‘화두 든다’, 화두 짓는다’, ‘참선한다’라고 한다. 처음 화두를 들면 잡념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어떠한 잡념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털어버리고 오직 한마음으로 ‘이것이 무엇인가’를 추구해야 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나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계속하다 보면 너무 단조롭고 단순하여 졸음이 오기도 하는데, 이 때는 빨리 이 졸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초보자들이 참선을 할 때 제일 힘든 것이 잡념과 졸음이다. 처음에는 잡념 속에서 화두를 들고 졸음결에 화두를 들지만 차츰 노력하다 보면 ‘참선의 경지’를 스스로 체험하게 된다. 명심해야 할 것은 참선을 할 때는 꼭 참선을 많이 하신 수행자나 스승을 모시고 지도를 받는 것이 좋다.” 선을 ‘불립문자’라 일컫고 있지만, 지난 해 입적하신 불광사 광덕스님이 말씀한 ‘선의 효능’이 눈길을 끈다. “우선 제가 평범하게 세상을 살고, 욕망이나 채우다가, 혹은 세상의 명예나 낚다가, 혹은 실패하고, 이럭저럭 살다가 늙으면 죽는 것이다. 인생은 그런 것의 연속이라고 알고 있던 것이 깨져버린, 그걸 넘어선, 위대한, 영원한, 보다 값있는, 보다 권능적인, 그야말로 물량 환경조건에 종속적인 그런 비속한 존재가 아닌 위대한 존재가 인간이라고 하는, 그런 뭔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들었다는 것, 그것이 첫째 선의 효능이라고 해야겠지요.” 참선이 업장을 녹이고 마음을 맑히는 수승한 방법임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워낙 상근기 아니면 지속적으로 하기 힘들어 많은 사람들이 중도에 포기를 하거나 다른 방법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참선한 사람들은 참선의 묘미 거기에서 느끼는 환희와 지혜는 말로 표현이 안 될 만큼 훌륭하다고 얘기를 한다. 부모가 늘 참선수행에 있으면서 새로운 인연을 맞이한다거나, 아니면 임신 중에 참선을 하고 있으면 아이도 함께 참선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다. 가부좌한 자세로 고요히 앉아 선정에 든 임산부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이 어디 있겠으며, 이보다 더 좋은 태교가 어디 있을까. 문제는 늘 실천하지 않는 사람에게 있다.

임산부에 있어 가장 현실적인 태아명상

앞에서도 말했듯 참선수행은 선뜻 누구나 하기 쉬운 수행법은 아니다. 그러므로 한국태교연구소 구본일 소장은 참선하기가 어려운 사람은 ‘명상’을 해보라고 권한다. 불교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명상’으로, 청소년이나 일반인, 임산부에게 적합한 수행방법이라고 권한다. 한국태교연구소에서 임산부에게 권하는 ‘태아명상’에 대해 알아본다. 태교의 중요성을 감안해 청소년 시기부터 태교를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를 누누이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아이를 이미 가진 사람들에게 태교는 가장 현실감이 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태아명상’은 태교의 정점이라 할 수 있으며, 임산부가 행하는 태교의 실천방법이다.

명상은 마음을 맑히는 작업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을 살아오면서 마음에 덧붙인 때를 덜어내고 닦아내는 일이 명상이다. 인간의 마음은 맑고 투명한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명상은 본래의 이러한 맑고 투명한 마음바탕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수행이다. 마음이 탁하면 세상을 바로 읽을 수가 없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지혜로 바라볼 수 없다. 이렇게 지혜롭지 않은 가운데, 탁한 가운데 다시 한 인간을 맞이하고 키우고 한다면 어머니는 물론, 새로 태어날 아이도 아름다운 삶을 시작하는 첫발이 제대로 될 수 없을 것이다.

어머니의 배 안에서는 한 생명이 엄마를 통해서 숨을 쉬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임산부는 앞으로 세상을 이끌어갈,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갈 한 인간을 낳아야 하는, 참으로 위대하고 값진 일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태아명상에 들어가기 전, 그간 자신이 살아온 삶의 내용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좋다. ‘나는 그간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나, 내 가치관은 무엇이었나, 제대로 살아온 것인가’ 하는 성찰을 해보는 것이다.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는 것이 인간다운 삶인지를 스스로 묻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다. 또한 현재 내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내 말씨는 어떠하며, 발걸음은 어떠한가, ‘지금 여기’의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태아명상은 현재의 자신을 안으로 살피는 것에서 출발한다.□

※‘임산부의 가장 현실적인 태아명상’은 다음호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