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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쯤 느려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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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김현정 2001년 01월 227호
어렸을 적 우리는 미술시간이면 가끔 미래를 상상해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다. 내 친구들과 내가 그리던 상상화는 대개 21세기가 그 주제가 되었는데, 어린 마음에 막연히 꿈꾸던 미래는 참으로 대단했었다. 그림에는 으레 우주선이 날아다녔으며, 거리에는 모노레일이 달리던, 대강만 생각해도 못할 것이 없는 ‘멋진 신세계’였다. 꿈에만 그리던 21세기에 한 발을 딛고도 삼백 육십 오일이다.
일년이 훌쩍 그렇게 지나가고, 또 새해가 밝았다.
언뜻 보면 이전의 삼십 년과 지금이 무어 그리 달라졌는가 싶다. 거리의 사람들이 우주복을 입고 다니지도 않으며, 영화에서 나올 법한 그런 날아다니는 자동차를 타고 다니지도 않는다. 거리가 화려해지고, 큰 빌딩이 선 것 이외에는 표면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많이 달라졌다. 그 중에서 가장 달라진 것이 있다면 교통과 통신이다. 물론 지금도 걸어다니는 것으로 교통 수단을 삼는 사람들이 이 지구 한 구석에는 있을 것이며, 고작해야 전화가 가장 고도의 통신수단인 곳이 많이 있다. 우리 주변을 보자면 자동차도 좋아졌으며, 대중교통도 좋아졌다. 불과 십년 전 버스가 하루에 두 번 왕래하던 곳을 이제는 자동차로 10분이면 갈 수 있다. 지금도 그 길을 갈 때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또한 편지는 이제 향수 어린 통신으로 변모하였다. 이동전화의 대중화로 이제 전화를 거는 시간과 공간의 벽이 없어진 것이다. e-mail은 가히 혁명적인 통신수단이며 정보전달 수단이 되었다. 이것이 삼십 년 전과 지금의 차이이다. 이러한 세상이 가져온 변화라면 우리가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 이 년쯤 되었나, TV광고를 보고 혹하는 마음에 내 컴퓨터에 디지털 방식의 모뎀을 설치했다. 일일이 쓰지 않아도 독자들은 기존의 모뎀과 그 디지털 방식이라는 모뎀의 차이를 더 잘 알고 계시리라. 그런데 문제는 그 때부터 발생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때 마음을 다시 먹었어야 하는 일이다. 내가 컴퓨터에 워낙 문외한이기 때문이었는지, 그 때부터 이전 일반 모뎀을 사용하면서 걸리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그 기계와 씨름을 하고, 전화국과 실랑이를 하면서 지나갔다. 그러던 것이 새로운 방식에 적당히 익숙해지고, 타협점을 찾고, 또 이전보다는 훌륭하지만 그 속도에 불만이 생길 때쯤 되고 보니 또 새로운 ‘초고속 통신’이라는 것이 등장한 것이다. 누구나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이나 욕심은 당연한 것이고,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 디지털 방식이라고 했던 그 모뎀 속도가 왜 그리 늦다고 느껴지는지. 바로 그 때 누군가의 이야기에 나는 홀딱 새로운 ‘초고속 통신’에 가입하고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그게 바로 일주일 전의 이야기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아직 그 ‘초고속’의 즐거움을 느껴보지도 못했다. 설치한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 전화국 직원과 열 번이 넘는 전화를 해야 했으며, 기사가 두 번을 다녀갔다. 또 전화통을 붙들고 전화국과 실랑이하고, 컴퓨터를 껐다 켰다 하는 노력과 시간이 소모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전화국에서 이제 와서 이야기인즉, 내 컴퓨터가 너무 ‘오래된’ 소위 기능이 좋지 않기 때문이란다. 업그레이드 한 것이 불과 일년 전이다. 내 컴퓨터 실력으로는 이것도 차고 넘친다고 생각했다. 이쯤 되면 컴퓨터에 대해 잘 모르는 나로서는 답답한 고민을 해야 한다. 컴퓨터를 바꿔야 하나, 아니면 또 다시 업그레이드? 이 방법이 아니면 대책이 없는 것인가.(창피한 일이지만 소위 ‘디지털 매거진’ 발행인의 고민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다.) 꼭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소위 초고속 통신이라는 것이 개발되면서 많은 컴퓨터가 팔려 나갔을 것이고, 또 쓸 만한 컴퓨터들이 버려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나니 내 마음은 이미 전의戰意를 상실하고 만 것이다.

어젯밤에는 바쁜 mail들이 있어서 아쉬운 대로 노트북 컴퓨터에 모뎀을 설치하고 인터넷을 연결하였다. ‘띵… 요… 치치직…’하면서 연결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오히려 속이 다 시원해지는 것이었다. 속을 썩이고 있는 ‘초고속’보다 더 빠른 것 같았다. 느낌이겠지만…. 그리고는 내일 서비스 기사가 오면 다시 원래 있던 아날로그 방식의 모뎀으로 바꾸리라 마음먹었다. 물론 이건 내 억지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기다릴 필요가 없도록 하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살고 있다. 아주 짧은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있는 길도 넓히며, 굽이 굽이 아름다운 길을 직선으로 만들고, 그 위를 질주할 수 있는 좋은 차를 개발하고, 빠른 통신망을 구축한다. 물론 국가 경제를 놓고 보자면 이러한 개발이 있기 때문에 경제가 발전하고, 과학기술이 이루어진다. 또 이러한 것으로 많은 사람이 돈을 벌고, 경제가 굴러간다. 물론 이 시점에서 내가 사회를 뒤로 굴러가게 하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역시 빠른 것이 좋다. 문제는 빠른 것에 즐거움이 있는 만큼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만 우리가 그런 것들이 없었을 때는 어떻게 살았는가를 생각해 보자 하는 것이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게 마련이고, 봉우리가 높으면 골짜기도 깊다. 빠른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질주할 때, 한 쪽에는 잃어버리는 자연이 있다. 시간과 공간을 구분하지 않고 해대는 전화는 그리움이라든지, 깊은 생각들을 쓸어 버린다. 빠른 속도를 쫓으며 우리가 잃어 버리는 것들이 바로 이것이다. 편함과 속도가 주는 공허함은 어떻게 만회할 것이며, 우리가 잃은 소중한 그 무엇인가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분명 남들이 차를 타고 질주할 때 걸어가는 즐거움, 다른 사람들이 앞을 향해 뛸 때 뒤돌아서서 뛰는 것, 이런 것들이 주는 즐거움이 또한 있다. 깊은 골짜기에도 분명 맑은 물이 흐르며, 작은 꽃이 피어 있다. 이것을 발견할 수 있는 밝은 눈이 참 아쉽다. 새해에는 이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해였으면 한다. 빠른 달리기가 주는 쾌감은 잠깐이지만 느릿한 발걸음이 주는 여운은 반면 길다. 그러니 조금쯤 느려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