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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리워하는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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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호산 1997년 03월 181호
도량의 목탁소리는 꿈 속을 헤매는 내 머리 속에 스며들어 치츰 명징한 울림올 더하며 마침내 내 안의 헛되이 남아있는 꿈을 쫓는다. 게으른 몸을 일으켜 아직 어둠이 웅크린 칭살문을 열어본다.
실같어 가늘고 차가운 달이 탑의 상륜부에 걸려 있는 새벽. 요사채 앞의 감나무도, 저 너머의 일주문도 아직 어둠을 벗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곧 다가올 아침의 진동을 기다리고 있다. 열린 창틈으로 들어오는 시린 바람 속에 어느덧 만물이 움트는 내음과 소리가 실려오기 시작한다. 뭇 생명의 미묘한 떨림과 차츰 번져가는 밝고 따스한 기운, 소근소근 거리다 활기 차지는 대중의 목소리, 산사의 새벽은 그렇게 아침을 맞이한다.
절에 오기 전, 나는 세상에 이러한 새벽이 있는 줄 몰랐다. 새벽의 실상을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대부분의 새벽을 폐쇄된 방안에 틀어박혀, 깊은 잠속에서, 온갖 망상에 시달린 아픈머리를 움켜쥐고 맞았다.
절에 오기 전, 딱 한번 아침다운 아침을 맞은 기억이 었다. 오랜 친구들과 경주로 여행을 갔을 때였다. 바닷가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깨어나 우연히 유리창문 밖을 바라보게 되었다. 조금 전까지 어둡던 밖이 밝아지면서 마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동해에서 떠오르는 해였다. 사실 바다에서 해가 떠오르는 것을 처음 보았고 어둡던 하늘이 어느 순간 환해지기 시작한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그 때 ‘아!’ 아침은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로구나’ 하고 큰 깨달음이라도 얻은 양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세상에는 나처럼 어리석고 게으르게 살면서 아침이 어떻게 오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중생이 있는 반면, 저 새벽의 미묘한 빛에서 어떻게 밝음이 나오는지를 깨달은 이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얼마 뒤 그이가 바로 부처님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뒤 이 세계를 해석할 수 없음에 대한 답합함과 조급함, 이 신산한 세상을 혼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름에 대한 막막함에서 부처님은 나의 의지처가 되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이 세계를 해석하고 내가 살아갈 인생의 방향을 찾으려 했다. 그러던 가운데 나도 모르게 차츰 부처님을 절대시, 신성시 하게 되기도 하였다. 부처님 몸이 저 법당안의 부처님처럼 당연히 금빛으로 물들었을 것이라 상상했고, 진리에 대한 갈구는 차츰 절대자화한 부처님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으로 사무쳐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동안 부처님의 이름으로 내가 해석해 왔된 세계와 애써 그려온 삶의 실상은 부처님이 진정으로 가르친 세계의 실상과는 거리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난 그저 막막한 어둠을 내 밖에서 해석해 내고 자만한 채 안심하고 있었다. 나는 부처님의 말씀에 의존하면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동안 법당 안에 모셔진 부처님만 뵈었지 지금으로부터 이천오백여년 전 지구의 한쪽 귀퉁이에서 태어나 백 년도 안되는 시간을 이 생에서 살다간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인물을 만나지는 못했던 것이다. 구도의 길을 향해 내려진 그의 결단에 숨겨져 있을 망설임과 아픔,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을 고통받는 중생에 대한 연민과 그들의 고통에 대한 괴로움, 수없이 맞았을 새벽의 쓸쓸함, 진리의 세계를 향해 걸어야했던 길들과 그 길들에 담겨 있을 좌절의 흔적 따위는 보이지 않았고 보려하지도 않았다.
지금 내가 그리워 하는 부처님은 그러한 역사적 실존으로서의 고타마 싯다르타이며, 그가 깨달은 진리의 구현자이며, 안내자로서의 부처님이다. 그 부처님은 나에게, 그가 헤매고 괴로워하며 걸었던 길을 내가 내 삶 속에서 스스로 걸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절에 들어와 이제 깨어 있는 새벽은 일상화되었다. 그러나 아직 나는 이른 새벽의 막막한 어두움에서 빛의 심원을 찾지 못하였다. 그저 어제도 그랬듯이 지구가 생겨난 이래 그랬듯이 당연히 경험적으로 뭇 생명들어 기지개를 펴는 아침이 다가옴을 느낄 뿐이다.
방문을 나서면 말은 없지만 부산한 대중의 발걸음이 잠시 적정한 공간 속에 머문 나의 의식을 깨운다. 앞산의 봉우리는 육중한 어둠에 짓눌려 아직 잠자고 있고 산아래 세상도 칠흑이다.
부처님이 계신 법당에 들어 긴 밤을 저마다 따로 보낸 대중과 엄숙히 합장하며 새벽 예불을 올린다. 예불을 마친 뒤 문 밖을 나서는 대중의 얼굴을 하나씩 바라본다. 저들을 어떻게 긴 어둠을 보내고 이 새벽을 맞이했을까? 청아한 염불소리에 이 새벽에 그리워하고 있을 저마다의 마음속 부처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맞이하였던 새벽을 그려본다.
상념을 뒤로 하고 내딛는 층계에는 어느새 따스한 빛의 기운이 스며 있다. 내가 그리워하는 그 새벽의 부처님, 부처님도 아침을 이렇게 맞으셨을까?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