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구시나가라에서 만난 부처님의 열반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이달의 이야기 - 주경 1997년 03월 181호
법회의 인연을 맺어 부처님의 가르침에 눈떠 갈 때 「아함경 이야기」라는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그 무렵 도선사 불교학생회의 지도 법사면 석원스님은 학생들의 지도에 열정적이었으며, 모양과 내용을 갖춘 법회를 만들어가고자 애를 쓰곤 하였다. 학생회의 임원을 맡고 있던 나는 가끔씩 법회 관계로 스님의 방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협각 옆에 붙어 있던 스님의 작은 방은 서너 명만 들어가도 편하게 움직이기 힘들 만큼의 크기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나마 한쪽 벽은 책으로 가득차서 더욱 비좁은 방이 되었고 구석구석 쌓아 놓은 책들은 오히려 방의 주인행세를 할 지경이었다. 앉을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주변의 책을 정리하다가 문득 스님에게 좋은 책을 한 권 추천해 주기를 청하였다. 스님께서 어떤 책들을 읽었는가 물어보고는 권해 준 책이「아함경 이야기」였다.
그 때 나는 법회와 얼마간의 불교 관계 서적으로 얻은 알음알이로 세계와 삶에 대한 시각을 바꾸어 가고 있었고, 부처님에 대한 연모의 마음아 자라고 있을 때였다. 「아함경 이야기」는 작은 글씨에 논문 형식의 책이었지만 상단에 주를 달아 읽는 이의 이해를 도왔고 문장도 편안하게 전개되어 어려움 없이 읽어 나갈 수 있었다. 책을 읽어 가는 동안 단편적으로 토막져 있던 부처님에 대한 이미지가 차츰 맥락을 찾아가며 뚜렷한 모습을 갖추게 되고 부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한 생전의 모습이 눈에 보이듯 선명해졌다. 부처님의 육성이 귀에 들리는 듯하고 당신의 설법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된 뒤로는 언젠가 기회가 온다면 꼭 부처님의 행적을 따라 밟아보리라 마음을 먹게 되었다.
절에 가서 바라보던 스님들의 모습이 너무 좋아서 법회 때에 들려주는 법문과 그 자세가 그렇게 부러워서 잠시라도 스님들처럼 살아보고 싶은 마음을 내게 되었다. 그 마음이 익어 산사에 들어온지 거의 십 년 세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오랜 소망의 길, 부처님의 행적을 따라 밟아 볼 수 있는 길을 떠날 수 있었다.
반 년이 넘는 시간을 태국과 스리랑카를 떠돌며 근본 불교의 분위기를 익히며 탁발과 남방의 오렌지색 가사가 몸에 익을무렵 인도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그리고나서도 두달여의 인도여행으로 인도에 대한 사랑과 미움의 마음이 가슴에서 거의 식어갈 무렵 본격적으로 부처님의 발지취에 대한 순례에 나서게 되었다. 봄베이를 떠나 엘로라, 아잔타석굴을 참배하고 산치의 대탑으로, 바라나시로 해서 보드가야 구시나가라로 향한 순례의 길은 인도의 국경을 넘어 네팔에 자리한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로의 여정이었다.
인류의 영원한 스승인 석가모니 부처님의 삶이 일일이 배어 있는 순례의 길에는 어느 한 곳 가벼이 지날수 없는 소중함으로 가득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깨달음의 터 ‘보드가야’ 와 열반의 성지 ‘구시나가라’ 는 또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곳이었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일러 ‘열반’ 이라 하지만 또 부처님의 돌아가심을 일러서도 ‘열반’ 이라 하는 까닭에 보드가야와 구시나가라는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성지인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느 성지에 견주어도 가장 활기가 있는 곳 ‘보드가야’ , 힘없음으로 해서 나라를 잃고 타국에 의지해 사는 티벳사람들은 이 곳에서도 활기를 불어넣는 중심에 서 있다. 달라이라마는 그들의 나라를 잃은 것은 슬픈 일이지만 그로 인해서 티뱃불교가 세계에 퍼지는 계기를 만나게 되었으니 슬픔만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티벳 사람들을 위로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어디든지 만나는 티벳 사람마다 다들 씩씩하고 당당해 보인다. 대탑을 바라보는 구석에 자리를 하나씌 차지해서 몸 크기 만한 판자를 깔아 놓고 히루종일 오체투지를 멈추지 않는 티뱃 불자들을 보노라면 진정 신심 어린 삶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부처님께 그림자를 드리웠던 보리수의 혈통을 이은 보리수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또 그 가르침의 맥을 잇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깨달음의 터를 닦고 있다. 해저물녘에 걷다보면 모기들이 얼굴에 부딪혀 툭툭 소리가 나고, 대탑 안의 선실神室이나 바깥의 자리에 앉아도 달려드는 모기로 얼굴을 제외한 온몸을 가사로 휘감아야 겨우 버틸 수 있는 곳, 부처님의 정진 열정이 지금도 참배와 정진의 열기로 이어지는 곳이다.
‘구시나가라’ 열반의 성지. 하루종일을 털털거리는 낡은 차에 의지하여 도착한 작은 마을에서 또 릭샤를 타고 얼마를 더 가서 어둠이 짙어질 무렵 열반당 바로 옆에 자리한 버마절-지금은 나라의 이름이 미얀마로 바뀌었지만 아직도 이 이름이 더 잘 통한다-에 도착하였다. 술에 취한 듯한 릭샤꾼과의 작은 시비가 피로한 몸의 가슴까지 답답하게 하였지만 친절한 미얀마 스님의 안내로 숙소를 정하고 종일 먼지와 땀에 절은 몸을 씻고는 여유를 회복할 수 있었다.
사라나무 두 그루가 마주보는 아래에 몸을 누이신 부처님께서 마지막 숨을 쉬쉰 곳. 지척에 열반당을 두고도 미얀마 스님의 만류로 밤을 지내고 가기로 했지만 밤의 색깔과 내음만으로도 쇠약해진 부처님의 마지막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입멸한 뒤 법에 의지하고 스스로에게 의지하라. 세상은 쉼없이 변하고 있다. 게으름 없이 정진하라”는 마지막 밀씀은 우리가 지녀야 할 부처님의 유언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그날 그렇듯 생생하게 가슴에 저미던 것은 슬픔에 가슴이 미어지던 이난스님의 눈물과 한탄이 그 곳에 아직도 남아있는 까닭이었는지 모르겠다.
날이 밝아와 열반당에 누워 계신 부처님을 뵈었다. 시멘트로 지어진 기이한 모양의 건물아 주는 생소함은 푸근하고 이늑한 분위기의 부처님 열반 모습을 기대하였던 마음에 아쉬움을 주었다. 참배를 마치고 열반상주위를 천천히 돌다보니 커다란 칭문가에는 비둘기들이 살면서 뿌려 놓은 오물이 쌓여 있었고 비둘기들의 몸짓에 따라 깃털이 날리고 있었다. 갑자기 찾아온 적적함으로 가슴이 무거워져 밖으로 나왔을 때 찬연한 아침 햇살이 내려 쬐이고 있었다.
부처님은 열반을 통해 우리의 일을 우리에게 남겨 놓으셨다. 순례의 시간 중 시시로 느껴지던 쓸쓸함의 정체는 인도에서 불교가 없어져서가 아니라 부처님의 제자라 이름하는 우리가 우리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음에 있었음을 햇살에 몸을 맡긴 사라나무 두 그루가 꾸짖는 듯하였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