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묘년 새해 아침을 맞으면서 새로운 역사의 장에 대한 기대는 사뭇크다. 특히, 지난 해 ‘9·7 해인사 승려대회’로 말미암아, 그 기대가 이제는 선언적 의미로부터 실천적 당면 과제로 집약되고 있는 듯하다.
이천여 승려가 모여 한 목소리로 불교자주화를 선언하였고 사회 현실에 대한 관심 표명을 종교적 사명으로 분명하게 등장시킬 수 있었다는 점에서 불교계의 자부심은 매우 컸다. 또 잇단 지지 성명과 실천을 위한 도전으로 그 맥을 이어갔고 각계로부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그때에 이루어진 ‘불교탄압 공동 대책 위원회’의 위원장인 명진스님이 구속되기도 하며 그 열기와 호응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 한편으로는 이 같은 쉬임없는 불교계의 소리는 복잡한 교계내의 구조와 사회에 대한 대응 세력의 미비로 말미암아 그 소리가 뜨겁던 만큼의 효과를 얻지 못한 아쉬움도 있었다. 특히 교계 내의 서로 다른 여러 의견을 수렴하는 합리적인 행정 체제의 미비 탓이 크다는 생각이 적지 않다.
실제로 9·7 승려대회 뒤로, 이 대회에서 주창한 불교계의 당면 과제를 현실 문제로 접근시키려는 과정에서, 원칙적인 선에서 후퇴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한쪽에서는 그 까닭을 당면 과제가 너무 거대하여서라고 편한대로 해석하려고도 하지만, 한쪽에서는 원칙에 접근하기 위한 접근 방법이 난해한데에 그 까닭이 있다고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다. 그것은 당면 과제가 오로지 외부의 요인에 의한 것만은 아니고 차라리 내부의 구조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것임을 지적해 준다.
9월 대회 뒤로 종단의 가장 큰 관심거리는, 역시, 불교 재산 관리법의 전면 폐지와 문화재 보호법을 비롯한 불교관계 제법령의 개정 문제였다. 맨처음에 대두된 원칙적인 견해는 불교 재산을 보호-관리하기 위해서 제정된 법이 오히려 불교의 발전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불교의 지주성을 크게 해치고 있다고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같은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많은 종도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사회의 여론도 불교계의 주장은 당연한 자주 선언이며 정부는 그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쪽으로 집약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런 원칙적인 견해에 대한 반론이 한쪽에서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곧, 불교계의 현실로 보아 ‘불재법’의 폐지는 불교 재산의 유실을 낳을 수 있다 하며 또 중앙의 통제력이 약해지므로 그로인하여 또 다른 분열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그 주된 주장이다. 물론 시기상조라 하는 쪽에서도 폐지의 당위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실적인 이해-득실을 따질 때 ‘득’보다는 ‘실’이 더클 수도 있음에 대비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그 법의 전면적인 폐지보다는 몇 가지 문제가 되는 조항을 없애는 것에 사안을 두자고 주장한다. 그런 반면에 원칙적인 면을 중시하는 쪽에서는 계속하여 폐지론을 내세워 왔다. 그들은 사찰의 재산 관리를 직접 맡고 있지 않은 측들이며, 바깥의 재가 불자를 위시한 많은 일반 불교계로부터 두둔을 받고 있다.
그리하여, ‘폐지론’과 ‘개정론’으로 집약되는 의견의 대립은 마침내 표 대결로 승부를 기리게 되었는데, 지난 11월 17일과 18일 이틀에 걸친 87회 정기 중앙종회에서 개정론이 45대 8로 압도적인 승세를 이루었다. 이로써 앞으로의 우리 종단의 불교법에 대한 자세가 규정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두 개의 견의 대립은 종단안에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불씨’를 던진 꼴이 되었다. 곧, 승려대회를 주도한 소장 승려와 폐지론을 개정론으로 바꾸어놓은 중진 승려들 사이에 좁힐 수 없는 거리를 그대로 드러낸 셈이니, 이것이 앞으로 불교계의 움직임에 변수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 하겠다.
87회 정기 중앙총회에서는 이어 불교법 개정안을 심의하였다. 그 기본 골자는 관할청을 문교부에서 문화공보부로 바꾸며 대표권자의 등록 사항을 신고 조항으로 변경하는 것인데, 이는 현재의 관리자의 실세(寶勢)를 더욱 굳건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 셈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들을 한번 살펴보자.
우선, 제 11조의 허가사항 가운데 사찰 건물이나 땅의 사용을 폐지할 경우에 과거에는 관할청의 허가를 받도록 되어 있던 것을 중앙회의 인가를 거치도록 하였다. 재산 및 회계에서도, 불교 재산의 범주를 지정할 수 있던 관할청의 권한을 폐지하고 사찰의 고유 재산과 학술적 가치가 있는 사료로만 한정하여, 불재법의 적용 한도를 좀더 명확히 하였다고 볼수 있다. 그리고, 대표권자의 신고 의무를 태만히 한 자에 대한 처벌 규정은 종전처럼 벌금형(2만원)으로 계속 묶어 놓아 대외의 압력을 최소화시킬 수 있게 한 것과 같은 점은 자체의 중앙 통제력을 더욱 굳건히 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 본다. 다만 여기에서 대표권자의 책임을 중앙의 임명권자에 대한 의무만으로 국한시킨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 한계점으로 보인다. 기왕에 불재법의 폐단을 보완하기 위한 개정안이라면, 종교적인 양식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책임에 대해서도 명문화하는 것이 옳을 터이다.
그 같은 점은 부칙 2조의 폐지와도 이어진다. 이 조항은 불재법이 시행되면서 3개월 안에 재산 목록을 관할청에 신고해야 한다는 것과 대표권자의 등록은 4개월 안으로 국한시킨다는 것을 내용으로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위반 처벌 규정도 함께 명시하고 있다. 1962년에 국가 재건회의에서 공표한 3장 19조의 불재법은 이부칙으로 말미암아 막강한 위력을 과시해왔다. 사실 불재법을 개편하려는 노력은 그동안 계속 있었으나 뚜렷한 성과를 얻지 못한 것도 바로 그 부칙의 위력에 눌린 탓이 크다는 지적이 있다.
불재법이 처음 제정되던 때에 비구와 대처 사이의 분규로 말미암아 숱한 불교 자산이 유실되었다. 또 경내에 갖가지 위락 사업을 끌어들임으로써 사찰 환경은 크게 황폐해져 갔다. 그즈음에 비구승은 왜색의 추출을 명분으로 내세워 불교 정화 운동을 폈는데 명분은 퇴색되고 오히려 양쪽의 대립을 더욱 갈등 속으로 몰아갔다. 평행을 달리던 갈등 구조를 극복해 보려는 비구 측의 의지는 종권의 정통성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나타나고, 이러한 정통성 회복의 노력은 종단 안의 문제에 좌우되는 가운데 결국은 이 승만 정권이 권력의 차원에서 비구의 정통성을 인준한 것을 출발점으로 하여, 불재법과 적당히 타협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그뒤로 불재법이 적용되면서 비구 측이 선출한 종정의 승인을 받아야 대표권자가 등록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정통성에 입각한 사찰의 점유는 쉽게 진척될 수 있었다. 곧, 대처승들이 억지로 사찰을 차지하려 하여도 불재법의 부칙 조항으로 그 합법성을 얻어낼 수는 없었다. 따라서 오늘의 조계종의 몇몇 실권자들은 이 불재법을 등에 업고 힘을키워 왔음이 틀림없으며, 그를 구체적으로 가능하게 만든 것이 바로 부칙 조항이었다.
이번에 개정안에서 이 부칙 조항을 폐지시킴은 불재법의 해악 요소에 대한 마땅한 처사이다. 이는 또한 자주화 선언과도 그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의 서로 다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왜냐면 그로 인한 중앙종단의 통제력 강화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종단구조, 곧, 총무원과 교구본사 제도가 불교 본디의 것이 아니라 일제의 불교통치의 잔재이며, 이 제도를 뒷받침하기 위해 일제시대에 불재법의 전신인 사찰령이 제정되었다, 따라서, 불재법과 현재의 종단 행정체제 사이의 관련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
엄밀히 따지면 불재법이나 종단 행정체제는 모두 한국 불교 본연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근대화의 한 편린에 지내지 않는다. 곧, 그 둘은 근대화가 추구하는 실증론(Positivism)을 기본 이념 구조로 삼는다. 그러나 이것은 불교라는 사유(思惟) 체제와는 사뭇 다르다. 이것은 또한 한국불교가 추구하는 ‘현대화’라는 명제와 관련은 있어도 근본적으로는 같지 않다. 이를 부인한다면 한국 불교의 존립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개정안에서 불교의 의무를 위배한 단체나 대표권자를 주무 장관의 해임 규정으로 무조건 법원에 신청할 수 있다고 명기함은 언뜻 보기에는 합리적인 듯하나 좀더 깊이 따져보면 그렇지가 못함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왜 그러냐 하면, 원칙적으로 종권 내에서의 책임은 자체 법규에 의해서 부여되거나 처벌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부의 통제력은 강화시키고 외부와의 관련을 최소화시킴으로써 독자적인 규율을 확립할 때에 종교가 지녀야 할 권위를 지켜나갈 수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세속과의 관계를 거부한다는 뜻은 아니다. 세속과의 관계는 종단의 자율성을 유지하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데 종단의 핵심 구조가 세속화되고 외부의 힘에 의존하는 채로 종교의 권위를 내세우는 것은 종교가 갖추어야 할 사회적 의무를 배반하는 것밖에 안 된다.
본디 불재법과 같은 실정법이 갖는 기본 취지는 기존 구조의 합리화를 추구함에 있다. 곧, 기존의 이해 관계를 구조적으로 체계화시켜 그것이 지속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그 법은 오로지 현재의 외연화(外緣化)된 세력들에게만 최대의 긍정성을 부여할 따름이다.
그런 실정법의 역할로 종교 단체가 외부로부터 규제받는 것이 한국 불교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요 슬픔이다. 그렇다고해서 무조건 폐지론만 내세워 그나마 명맥을 유지해 온 기존의 체제마저 무너뜨릴 수는 없다. 현재로서는 그런 원칙적인 견해와 현실과의 위상을 감안한 불재법개정이 전 불교계의 거센 바램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동안 불재법이 압박과 억제의 상징으로 군림해 온 것에 대하여 ‘개정안’ 정도로는 충분한 보상이 될 수없다는 요구가 새해를 맞은 불교계의 집약된 바램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