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살아남과 사라짐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이달의 이야기 - 만우(시인) 1997년 03월 181호
가고 오는 모든 움직임이 힘을 얻을때다. 벌써 봄바람의 성화에 꽃을 피운 들꽃도 있다. 하늘도, 땅도, 우리 마음도 이제 봄기운 속으로 뛰어들 수 밖에 없다. 봄바람에 숨을 곳이란 없기 때문이다. 봄은 만물을 되살려 감각적 풍경을 연출한다. 겨우내 빈 산을 일깨워 잠든 풍경을 사라지게 한다. 풍경의 변화는 또하나의 사라짐 속에 가능하다. 때문에 생성과 존재, 소멸로 일컬어지는 생명의 흐름은 부단不斷한 풍경의 변화를 유도하는 유쾌한 작용이다.
살아남과 사라짐. 이 두 가지 작용은 그 길만 분명하다면 똑같은 무게로 생명을 떠받친다. 생성과 소멸 사이. 어떠한 자세로 존재하든 어둠이 오면 어둠을 치고(暗頭來也打) 밝음이 오면 밝음을 친다(明頭來也打)는 보화스님의 방울소리처럼 자유의 무한지평이 확보된 상황에서만 살아남과 사라짐은 생명력을 얻는다. 또다시 봄은 우리를 그 시험대에 올려 놓았다. 풍경의 변화를 통한 길 찾기 그 시간이 오고 있다.
고려시대 진각 혜심 국사는 시라진 한 생명을 위하여 이렇게 읊었다.

나고 죽음 다할 날이 없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오고 갔던가.
스스로 그 길을 그르치지 않는다면
열반의 세계이리라.
死生無盡日
來去幾多時
自由不짧路
行行卽涅槃

생사로 대변되는 생명의 일고 짐. 이것은 어떤 법칙으로 가둘 수 있는 간단한 세계가 아니다. 고苦, 낙樂 그리고 괴로움도 즐거움도 아닌 상황(?)으로 나고 죽는, 생명의 흐름이다. 생生, 멸滅하는 우주의 변화를 단정하는 것은 바로 법집法執에 빠지는 행위이다. 나의 상황으로 세계를 규정 짓는 행위城執이다. 일정한 법으로 세계를 규정 짓는 행위(法?)는 이미 투명하지 않은 세계관으로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존재와 존재가 상관함에 있어 투명성을 확보하는 일, 그것은 서로 반대되는 입장과 모순되는 입장 그리고 동지적 입장이 즐거이 나고 죽으며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첫걸음에 아닐까.
때문에 나고 죽고 오고 가는 생명의 흐름이 다함이 없더라도 그 길을 알고 그 길만 그르치지 않는다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든 그 세계는 열반으로 지칭되는 안락국토가 될 것이다.
투명하게 서로 드러나 있음으로 해서 충돌할 일이 없고 충돌하지 않음으로 깨뜨릴 어떤 것도 생기지 않는 상황, 그것은 길을 그르치지 않음으로 해서 가능하다.
또 길이 문제다. 청년 미륵의 고뇌하는 반가사유상을 보고 있으면 길을 찾는자의 고뇌가 잘 드러나있다. 입상立像과 좌장坐像으로 보통 일컬어지는 불상의 전형적인 모습은 우리가 자신을 하나의 자세로 고착시켜 다른 형태의 자세는 거부하는 또다른 자신의 닫혀진 세계의 표현 방법일 수도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세계를 구원하는 운동 지평을 자신이 다 감당하지 아니하고 미륵부처님에게 넘겨 준 것은 어쩌면 자신의 자세가 존재의 자유로운 본래 몸짓을 구속하는 장애물이 될까 저어하는 자비심의 지극한 발로일 것이다.
때문에 앉아 있는 모습도 아니고 그렇다고 서 있는모습도 아닌 미륵의 반가사유상은 우리가 앞으로 열어가야할 세상에 대한 고뇌의 모습어면서 이미 전형화된 틀속에 굳어진 우리의 생각과 모습을 깨뜨리는 부동不動의 애민형愛民型 바로 그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므로 미륵은 하나의 자세를 고집하지 않기 때문에 서 있는 장소와 때도 고집하지 않는다. 미을로 내려와 민초들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수호신의 역할을 담당하고, 그들의 얼굴보다 더 희화된 모습으로 누구나 기댈 수 있는 자세로 서 있다.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역할을 분담할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모습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장승이나 벅수 제주도의 돌하루방을 보면 미륵의 변형된 문화적 양상임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미륵이 새로운 자세를 확립해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수 있도록 길을 확보해 준 것은 하나의 자세를 고집하지 않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자비심이다. 때와 장소를 표기하는 단어가 다를지라도 석가와 미륵은 늘 살아남과 사라짐의 길이 하나이듯 하나의 길위에 서 있는 것이다.
시대가 잠언의 시대에서 증언의 시대로 접어든 지금 한마디의 말, 하나의 행동으로 생명의 바른길을 열어 보이던 석가모니의 역할이 모든 것이 증명되고 눈에 보이는 것이 제일로 여겨지는 증명의 시대에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말을, 행동을 보여줘야 될 미륵의 역할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수 있을까 하는 것은 온전히 승보의 사명이다. 스스로 불안한 존재인 중생임을 알고, 이 세계가 그 중생들의 주무대라면 세계 또한 불안한 세계임이 틀림없을 것이고, 우리 스스로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생명임이 분명하다면 지구가 병들고 우주가 병들어 종래에는 무너짐이 어찌 슬픔이겠는가.
다만 봄처럼 생명이 되살아나는 시기에 꽃과 향기가 없으면 봄이 아니듯 만물이 휴식하는 겨울의 매서운 추위가 없으면 쉴 수 없듯, 살아남과 사라짐의 길목에 석가와 미륵 같은 길잡이가 없음에 슬픔이고, 내 스스로 길을 그르칠까 함이 더 큰슬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