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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이 된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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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불교동화 - 정진채 1987년 01월 59호
옛날 인도의 어느 마을에 부자 노인 한 분이 여러 아들들과 살고 있었읍니다. 워낙 젊은 시절에 열심히 일히고 알뜰히 모아 부자가 된 노인을 닮아, 아들들도 그 많은 양들을 치면서 누구하나 양고기를 탐내는 일조차 없었습니다.
이제 노인은 나이가 들어 차츰 기운이 없으므로 고기라도 가끔 먹으며 기운을 차리고 싶어졌지만, 그러한 노인의 마음을 아들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읍니다. 참다 못한 노인이 어느날 한 가지 꾀를 내었읍니다.
“아들들아, 이 느티나무 그늘로 와서 잠시 쉬며 내 말 좀 들어 보아라.”
“무슨 분부이십니까, 아버님? ”
말 잘 듣는 아들들은 모두들 일손을 멈추고 노인 곁에 옹기종기 모였읍니다.
“음, 우리가 이나마 부자가 된 것은 모두 이 느티나무신의 덕분이니라. 그러니 오늘은 살찐 양 한 마리를 골라 잡아 당장 제사를 지내도록 하자.”
아들들은 곧 가장 살찐 암놈을 골라 느티나무 신께 제사를 잘 지냈고, 덕분에 노인과 아들들은 부드러운 양고기를 오랫만에 실컷 먹을 수가 있었읍니다. 또 아들들은 느티나무 밑에 예쁜 사당도 지어, 철마다 또 집안에 경사가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양을 잡아 극진한 제사를 모셨읍니다. 그때마다 노인은 마음껏 양고기를 먹었고, 그렇게 하면서 세월은 몇 해가 즐겁게 흘렀읍니다.
드디어 노인은 목숨을 마치고 염라대왕 앞으로 불려 갔읍니다.
“늙은 백성은 듣거라. 생전에 네가 지은 죄를 아는가?”
염라대왕은 노인을 크게 꾸짖으며 말했읍니다.
“예에 알고말굽쇼. 양고기가 먹고 싶어서 있지도 않은 나무의 신을 만든 죄가 매우 큰 줄로 아옵니다.”
노인은 겁에 질려 몸을 마구 떨었읍니다.
“너는 다시 돌아가 네 죄값을 치러야 하니 그리 알아라.”
얼마 뒤에 노인은 한 마리의 양으로 태어나, 자기의 아들들이 기르는 양떼 속에 끼어 자라게되었읍니다. 언제나처럼 아들들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나무의 신께 제사를 지내려고 쓸만한 양을 고르고 있었읍니다.
“이 놈이 좋겠군. 퍽 깨끗하고 알맞게 자랐는걸.”
일이 묘하게도 되느라고 아들들은 양으로 태어난 노인을 골랐읍니다. 이제 참으로 큰 일이 벌어졌읍니다.
“아들들아 참아라. 나는 그저 고기가 먹고싶어 잠시 거짓말을 했을 뿐이다. 제발…”
양이 된 노인은 소리쳐 말했지만 아들들이 양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읍니다. 마침 이때에 동냥을 하려고 왔던 한 도인이 이 모습을 보고는 곧 예삿일이 아님을 알았읍니다.
“잠시 멈추시오. 이 양을 어디에 쓰려고 합니까?”
“저희들은 저 느티나무 신령님 덕분에 오늘같은 부자가 되었읍니다. 돌아가신 아버님의 뜻을 받들어 살찐 양으로 신령님께 제사를 지내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도인은 어째서 그 아비가 죄를 받아 양이 되었는가를 알고 그를 매우 딱하게 여기며 아들들을 찬찬히 살펴보았읍니다. 하나같이 마음씨 고운 아들들은 그저 아비가 거짓으로 한 말을 믿고 충실히 따를 뿐이지 벌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아니었읍니다.
‘어찌할꼬? 모르는 척 할 일이 아니지 않는가…’
도인은, 적어도 양이 된 그들의 아비가 양으로서 평생을 고이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들들에게도 아픔을 덜어주는 길이라고 생각하여, 아들들에게 넌즈시 물었읍니다.
“이 사람은 정처없이 다니는 과객이지만, 다행히 마음의 눈으로 사물을 보는 비법을 익혔읍니다. 혹시 오늘 이 제사의 음식을 나무의 신령께서 즐겁게 드실는지 보고싶진 않으신지요?”
“손님의 말씀을 들으니 무척 기쁩니다. 그리만 할수 있다면 오죽이나 좋겠읍니까? 나무의 신령께서 기뻐하셔야 우리 집안도 잘 될테니까요.”
아들들은 아이들처럼 좋아하며 곧 양을 잡으려고 서둘렀읍니다. 그 모습을 지켜 보던 양은 눈물을 글썽이며 도인에게 애원하여 말했읍니다.
“메에에, 도인님, 제발이지 제 지식들 손에 죽는 일만은 면케 해주십시오. 메에에에, 그 은혜는 다시 돌아오는 세상에서 꼭 갚겠읍니다. 메에.”
도인은 양의 말에는 대꾸도 않고 아들들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읍니다.
“자아, 여러 공자님들, 우리 우선 마음의 눈으로 저 양부터 살펴봅시다.”
“양은 왜요? ”
둘째 아들이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도사를 바라 보았읍니다.
“행여 부정한 일이 있거나 피하지 못할 사정으로 양을 다른 놈으로 바꿔야 할 일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삽화작가/홍 현주


여러 아들들은 이제 더 이상 도사의 말을 의심치 않았읍니다.
“자, 이제 숨을 세 번 쉴 동안 눈을 감고 있다가 조용히 떠보십시오. 그리고 저 양을 한 번 자세히 보시오.”
아들들은 도사가 시키는대로 하고는 양을 유심히 살펴 보았읍니다.
“으악, 저, 저것은…? ”
정말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읍니다. 몸뚱이는 좀전에 바로 그 양인데, 머리는 일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이 분명하였읍니다. 더구나 그 양이, “첫째야, 둘째야, 그리고 세째, 네째, 다섯째야, 나를 모르겠느냐? 나는 지금 이 모양으로 양이 되었단다”하고 울부짖을 때에는 혼이 나갈 정도였습니다. 아들들은 하나같이 두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 땅에 무릎을 꿇었읍니다.
“아버님, 어쩌다 이런 모습이 되셨읍니까?”
큰아들이 굵은 눈물을 떨구며 양에게 묻자 양은 그저 턱으로 도인을 가리킬 뿐이었읍니다. 도인은 합장을 하고 나서 천천히 입을 열었읍니다.
“공자들의 슬픈 마음을 위로드리오. 아버지께서는 공자님들께 거짓말을 한 죄로 저토록 벌을 받고 계시는 중이오.”
“그 거짓말이 대체 무엇입니까?”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막내가 대들듯이 도인에게 물었읍니다.
“음, 그것은 다름이 아니고, 이 느티나무와 제사를 모시는 사당과 관계가 깊은 것이오.”
도인이 이렇게 답하자, 이번에는 세째가 황급히 물었읍니다.
“쉽게, 그리고 어서 빨리 알려주세요, 어서요.”
“그럽시다. 저 양은 아버님이 저승에 가셨다가 되돌아오신 모습이고, 아버지는 거짓말로 나무의 신이 있는 것처럼 해서 양고기를 잡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사를 받아먹은 신은 아무도 없지요. 다만, 아버지와 아들들이 양고기를 먹기 위하여 신을 내세우고 사방까지 지은 것이지요.”
도인은 아들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하고는 어디론가 가버렸읍니다.
아들들은 한참 동안이나 넋을 앓고 있다가, 양을 곱게 풀어서 양떼 속으로 돌려 보냈읍니다. 그날부터 아들들은 양들을 더욱 극진하게 돌보았습니다.
“저 느티나무 밑의 사당을 치워 버리자.”
큰아들의 말에 따라 아우들이 우루루 느티나무 밑의 사당으로 갔읍니다. 그리고는 사당을 와직끈 뚝딱 부숴 버렸읍니다. 제사 같은 것은 물론 다시 지내지 않게 되었읍니다.
아들들은 그런 일이 있은 뒤로 다시는 생물을 죽이지 않았읍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복을 담으면서 조용히 살아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