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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속에서 깨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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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여연 1987년 01월 59호
가을 숲이 다 허물어진 들녘. 낮은 언덕의 모퉁이거나, 이름모를 들꽃들의 앙상한 잔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산비탈에 폐처된 무덤들이 듬성듬성 있는 것을 우리들의 땅에서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그 무덤들은 전혀 낯설지 않고 이 시대거나 먼 과거의 숱한 역사의 아픔들과 헤아릴 수 없는 질긴 인연의 끈으로 매어져 있다. 그것들은 결코 우리들의 삶과 무관한 채 그냥 바람아 불어라, 녹두꽃이 떨어지든 말든, 이렇게 침묵만을 지키지 않는다.
한 개인의 유기체척 생명이 그 괴를 달리했다고 해서 생존이 끝나고 단절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더욱 끈질기게 우리들의 역사 속에 이어지고 현실의 삶의 장 속에 빛나게 참여되는 것이다. 단지 죽어간 몇 사람 영웅들의 무용담이나 회자되고, 진리의 햇불을 이어온 그야말로 뽑혀진 선각자들의 기념비적인 무덤들만이 침묵이 아닌 진리의 거울로 역사 속에 동참되는 것은 아니다. 그야말로 이름없이 집도 철도 없이 떠돌다 죽어간 거렁뱅이의 무덤들 속에 더욱 빛나는 진리의 언어가 우리 시대의 생존 앞에 길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아야 될 것 같다.
아무리 포악무도한 자라도 죽은 자 앞에서는 겸허하고 온순한 예를 갖출 줄 안다. 그것은 인간이 보유하고 있는 최고의 양심일 것이다. 그러므로 마른 풀 흔들리는 이름없는 무덤 앞에서 우리는 더욱 겸허해야 될 것 같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역사를 무서워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역사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현실의 존재의 장이기 때문에, 더욱 이 시대를 무섭게 아파해야 하며 민중의 구체적인 역사의 실존성을 획득해야 한다.
ꡐ협력자라는 것은 무엇인가ꡑ라는 샤르트르의 글 속에 무서운 말이 있다. 히틀러 시대에 나치즘에 가담한 지식인들의 이야기인데, 나치즘에 직접 참여한 이들만 나치스트가 아니고 그 시대에 살고 있던 의식있는 지식인으로서 나치즘을 거부하거나 이에 항거하지 않고 침묵만을 지켰던 자들도 나치스트의 오명을 씻을 수 없다는 것이고, 또한 이의 역사도 그 폭을 확대해서 저 헤겔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된다는 것이다. 한 시대를 사는 지식인이 역사현실을 총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전체 속에서 옳게 살려는 실천적 의지가 빈약하면, 결국 역사를 왜곡하고 이념을 앞세워 폭력을 휘두르는 독재자를 부추기는 협력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편치 못한 시대에 침묵은 얼마나 무서운 협력자로서 역사화되는가를 말한 것이리라.
흔히들 이 땅에선, 오늘을 살아가는 허세의 방법으로 세상이 어지럽고 시끄러울때는 그냥 입다물고 흘러가는 세상을 바라보며 구경이나 하자는 식이 있다. 자유니 역사니 민주화니 하는 것을 향해 몸부림쳐 봐야 바위에 계란 던지기에 불과하니 무슨 수가 있겠는가고 말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바위에 계란 던지기는 소용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 것이다. 그런데 역사라는 것은 그렇지 않다. 수없는 계란을 던져서 그 바위를 깨뜨리지는 못할지언정 그 바위를 계란의 부드러운 입자로 덮어버릴 수도 있고 그 육중한 바위의 뿌리를 조금이라도 흔들리게 할 수는 었다.
이러한 아픔의 처절한 행동이 우리들이 이 시대에서 민중 앞에 동참해야 할 현실이다. 물론 그것만이 전체가 아닌 줄 안다. 그러나 이런 계란들의 희생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침묵할 것인가 침묵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산바람 속에 청아한 영혼의 숨결과 같은 물소리를 들어야 하는 우리는 내부의 혼을 일깨워 그 투명한 의식을 통해 결국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수도승이 해야할 일 따로 있고 노동자가 해야할 일 따로 있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전체 속에서 따로이며 일의 방법 속에서 다른 것이지 독립되고 분리된 삶의 영역은 아닌 것이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
왜 사냐건 물으면
그냥 웃지요
강냉이가 익거든
와 자셔도 좋지요.

소박하게 웃으며 살려는 소원, 참 너그럽고 푸근하다. 누가 남으로 창을 내지 못해서이겠는가. 그 누가 따뜻한 양지를 마다하고 찬바람 스며드는 북풍을 원하겠는가 은둔지적인 목가 얘기는 침묵이 아니다. 그것은 이 땅에 고난받고 사는 수 많은 삶들의 행복의 몫을 갈취하는 것이다.
전원의 바람소리, 물소리, 별빛을 타고 달맞이꽃이 피는 소리. 이 모두가 얼마나 달콤한 정경인가. 목가의 뜨락 속에서 한 개인의 침묵 속에 피어나는 순결한 영혼의 숨결이 맑은 바람 소리를 피워 올릴지는 모르지만 역사의 거대한 햇불을 피워내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도 제발 독야청청 나만이 잘살고 올바르게 살고 있다는 허울좋은 종교적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사탄의 혀가 되어서라도 무화과를 더 많이 홈쳐먹는 자유의 죄인이 되자.
겨울숲을 바라보면 눈물이 울컥 쏟아지는 시린 아픔으로 적나라하다. 화려한 나뭇잎의 장식을 다 걷어 버리고 창백한 몸뚱아리로 홀로 서서 추운 겨울을 맞서고 있는 그 모습은 견고한 생의 의지를 읽게 한다. 겨울숲이 아름답다는 것은 헐벗음 속에서 강인하기 때문이다. 새해 새아침에 우리들은 침묵 속에서 깨어나 봄을 낳으려는 산고로 아파하는 겨울나무의 내출혈(內出血}을 가다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