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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성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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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로 가는 길 - 박원순 1997년 03월 181호
1957년 9월의 일이었다. 대통령의 아들 이강석李康石이 경주에 도착했다는 소식에 경주시장을 비롯하여 기관장, 유지 들이 헐레벌떡 가쁜숨을 몰아쉬며 달려왔다. 기관장들은 새파란 이십대의 이 젊은이에게 허리 굽혀 절하고 온갖 대접으로 충성 경쟁을 벌였다. 영천, 대구 등지로 돌아다니며 대통령 아들로서 행세하던 이 젊은이가 이강석의 얼굴을 알던 경부지사에 의해 탄로나고 말았다. 이것이 그 유명한 ‘가짜 이강석사건’ 의 전말이다. 법정에 섰던 ‘가짜 이강석’은 “법적으로 아무런 특권도 주어지지 않는 이강석을 가장한 동기”를 묻는 판사의 질문에 “언젠가 신문을 보았는데, 서울 명동파출소에서 이강석이 헌병의 뺨을 때리고 행패를 부려도 아무 일이 없음을 보았다. 이 때 저는 이강석이라면 무엇이든 통하는 세상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고 답했다.
한보사태와 관련하여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의 수사문제를 둘러싸고 여야간에 벌어지고 있는 심각한 설전은 삼십 년 전의 가짜 이강석 사건을 연상시킨다. 야당의 주장은 대통령의 가신으로 한보사태로 구속된 홍인길 의원은 깃털 에 불과하고 진정한 ‘몸통’ 은 김현철 씨란다. 김씨야말로 한보특혜의 최대 실력자였다는것이 야당의 주장이다. 심지어 청와대의 ‘젊은 부통령’ 이라는 말도 나왔다. 사실 김현철 씨에 대한 무성한 소문이 나돈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대통령이 진노했다. 청와대가 앞장섰다. 안기부가 뒤따랐다. 검찰도 나섰다. 정부, 여당이 안절부절했다. 당총무가 나섰다. 사무총장도 나섰다. 그리고 언론에는 재갈이 물렸다. 김현철은 과연 새정부 최후의 성역인가.” 어느 주간지가 용감하게 다룬 기사의 서두였다. 실제로 한약업자 구제 문제로 돈을 받았다는 주장을 기사화한 어느 일간신문과 김씨는 명예훼손을 둘러싸고 치열한 싸움을 벌인 일도 있었다. 진실과는 상관없이 대통령에게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로 지목되면서 그는 조용히 지낼 수가 없었다.
문민정부 이후에도 청와대를 사칭하면서 사기를 친 사건이 부지기수였다. 아직도 국민은 청와대를 친근한 국민의 공공장소로 여기기보다는 권력의 심장부로 여기는 것을 알 수 있다. 청와대, 안기부 등의 명칭은 여전히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서슬퍼런 것이다. 그 모든 권력의 핵인 대통령의 아들, 그것도 주변에서 그에 관한 싫은 소리를 할라치면 대통령의 표정이 굳어질 만큼 아낀다는 아들이니 김씨에 대한 모든 것은 성역이 될 수밖에 없다.
명동성당은 지난 칠십년대 이후권력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피난처로서 자연스럽게 권력이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곳이 되었다. 개혁 이후의 조계사에서도 파업 지도자들이 그 몸을 의탁하는 등 새로운 성역의 하나로 추가되었다. 이것은 법이 만든 성역이라기보다 종교의 권위와 국민의 신뢰가 만들어낸 합작의 소산이다. 그것은 “악법도 법”이라는 실정법의 요구에 대해 “악법은 법일 수 없다”는 자연법의 우위이기도 하다.
이와는 달리 대통령의 이들에게 주어지는 성역은 실정법으로부터의 도피일 뿐만 아니라 자연법의 위반이기도 하다. 법 앞에 만인의 평등이라는 법의 대원칙, “친인척의 정치개입은 절대 없을 것”이라던 김대통령 자신의 약속, 오늘날 한보사태로 허탈과 절망 속에 있는 국민의 법감정, 그 어디에 비추어 보아도 그에 대한 성역은 정당화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