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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밭 가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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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오성 1997년 03월 181호
해제하는 날에 걸망을 메고 일주문을 나서니 봄이 개나리봇짐을 메고 따라나선다. 버들강아지며 매화며 산수유, 그리고 조금 있으면 진달래와 철쭉이 세상사 걱정을 저 멀리하고 온 산 가득히 피어날 것이다. 가을이 사십중년의 웃음이라면 봄은 해맑은 아이의 자지러짐이다. 결제 내내 챙기려고 애쓰던 화두는 일순간 오간 데 없고 세상 경계에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
차창밖의 너른 평야에는 쥐불을 놓으며 논뚝과 물고랑을 여기저기 살피는 농부들의 모습이 보인다. 농부들이 자연의 세계를 대상으로 노동을 하듯 우리 사문들은 마음밭에 지혜의 종자를 싹 틔우려 애쓴다. 세상 경계와 마음 경계가 다른 이치가 아닐 것이다.
화두는 대자비심과 대원력이 있어야만 들 수 있다고 한다. 보리종자를 갖고 있어도 자비의 기름진 옥토를 만나지 못하면, 그 싹이 무성하지 못하며, 반대로 자비의 옥토를 갖고 있다고 하여도 선근의 보리종자를 갖고 있지 못하면 아무런 쓸모가 없고 결국 황무지가 되고 말 것이다. 대자비심과 대원력은 자신과 세계가 둘이 아닌 경계를 말하며, 그 경계를 아는 것을 지혜라 한다. 결국 이것 또한 둘이 아닌 것이다.
대자연의 아름다운 삶의 지혜가 실천되는 동안에 영특한 인간사는 착찹하기만 하다. 지난 한철의 반을 지나면서 노동법과 안기부법, 한보 부도 사태와 정·경의 비리, 그리고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의 망명설이 세간을 충격과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어떻게 그러한 일들이 일어날수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사건들을 처리하는 데는 분명하지가 못하다.
미래의 올바른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서도 책임과 권한은 병존해야만 한다. 또한 그 동안 문제가 정치권과 관련되기만 하면 시나리오 수사가 이루어져 왔다. 이번 한보사태의 수사가 정치인의 뇌물에만 촛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핵심은 크렉스공법 채택 등 제철소 인·허가 과정과 거액 대출이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있다.
결국 위의 두사건은 바람직하지 못한 경제 발전을 해온 우리 경제의 본질적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 황장엽 비서 망명설을 현실의 제반문제를 덮고 권력집권의 사사로움에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된다. 민족의 염원인 통일조국의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초석으로 삼고, 그 기틀 위에서 이번 사태를 처리해야 한다.
더 두고 볼 일이기는 하지만 얼마나 좋은 마음의 밭에 명경주와 같은 지혜의 싹을 틔울지 자못 궁금하다. 이상을 내세워 현실을 왜곡시켜서도 안되며 현실을 강요해서 이상을 바람직하지 못하게 해서도 안될 것이다.
우리는 또 다른 시대, 21세기로 가고 있으며, 그 시대는 분명히 구시대적 발상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진정 가치있는 삶이 무엇이며, 그 방향이 어디인지를 냉정하고 지혜롭게 인식하고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조금있으면 부처님의 출가일이다. 우리 모두 마음밭을 한번 돌아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