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는 망심이 만든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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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의 부처 - 장휘옥
1997년 03월 181호
「화엄경」의 골자는 부처님의 세계와 그 곳에 이르기 닦아야 하는 보살의 수행 과정(보현행)을 나타내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그 구성은 60권 「화엄경」에 따르면 7처 8회 34품(80권 「화엄경)은7처 9회)으로 나누어져 마치 한편의 대가극大歌劇을 전개시켜 나가듯이 웅대하다. 7처 8회란, 「화엄경」의 방대한 내용들은 지상에서 천상으로, 다시 지상으로 장소를 옮겨가면서 우주적인 규모로 설해지는데, 이것을 요약하면 일곱군데에서 여덟 번의 법회를 가진 것이 된다-한 번은 중복-고 하는 것이며, 34품이란 그 때 설법한 내용을 서른네개의 장章으로 나누어 편집했다는 의미이다.
「화엄경」의 중핵이 되는 것은 ‘십지품’ , ‘성기품’ , ‘입법계품’ 이다. ‘십지품’ 은 「십지경」이라는 이름으로 단독으로 번역되어 유포되었다. 십지十地란 보살수행의 계위 52위位 가운데 제41위부터 50위까지의 열 단계 위를 말한다. 십지를 체계적으로 서술한 ‘십지품’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은 제 1환희지歡喜地와 제6현전지現前地, 제10법운지法雲地이다.
환회지는 종교적인 환회가 깊고 조용하게 솟아오르는 수행의 단계로서, 크고 큰 환희심을 내는 경지이다. 환희지에 들어간 보살이 해야할 일은 늘 자비심을 가지고 불보살을 믿고 공경하며, 끊임없이 공덕 쌓기를 서원하고 자신의 쾌락과 욕망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환회지를 지나 제2, 제3지로 수행이 진행하여, 제6현전지에 이르면 반야의 지혜가 나타난다. 여기까지의 실천수행은 자신을 위한 자리행自利行이지만, 그 뒤부터는 남을 구제하는 이타의 실천이 되며, 최후의 제10법운지에서 이타행을 완성한다. 역사상 십지의 경지에 오른 사람은 찾아보기 드물며,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의 원효 대사가 초지에 오른 유일한 사람으로 간주되는 것을 보면, 십지에 머무르는 보살이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끊임없는 정진과 원심願心만 있다면 수행에 의해 반드시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십지품’ 의 설명이다.
‘십지품’ 가운데 유명한 것은 제6현전지의 ‘삼계유심게’ 이다. “삼계는 허망하며, 다만 이 마음이 지은 것이다.”(삼계허망三界虛妄, 단시일심작但是一心作)라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도 그 속의 만물도 영원히 존재할 것 같은 착각속에서 악착같이 매달려 발버둥치며 살아가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은 실은 우리의 탐침이나 망심이 만들어 낸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마음에서 만들어지는 것임을 알고 명예나 탐욕, 질투와 같은 아만심을 버리고 해탈을 구한다면, 애욕의 바다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면서도 평안하고 안온한 경지에 들수 있음을 설하고 있다. 번뇌를 끊으면 진여의 달을 볼 수 있고, 흙탕물에 물들지 않는 청정한 연꽃을 피울 수 있다고 하는 것도 다 이 ‘유심게’ 사상에 의한 것이다.
‘성기품’ 에서는 ‘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가 될 성품, 곧 불성佛性 그 자체가 스스로 일어나 제법諸法이 된다’ 는 뜻인 성기性起를 설하여 부처님의 출현을 설명한다. 부처님의 법신은 허공처럼 형태도 색깔도 없지만 모든 곳에 두루 가득하여, 마치 해가 모든 어둠을 없애고 만물을 기르듯이 부처님의 법신은 광명을 놓아 모든 중생에게 평등하게 비춘다. 그러나 중생들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근기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부처님의 광명에 차별이 있는 것처럼 여긴다. 지혜가 없어 삿된 생각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부처님의 광명을 볼 수 없다고 하지만, 그것은 ‘믿음의 눈’ 이 없기 때문이라 한다. 「화엄경」’현수보살품’ 에서도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믿음(信)은 도道의 근본이고, 공덕의 어머니”라 하였다. 부처나 보살의 출현을 눈으로 볼 수 있느냐 없느냐는 확고한 믿음에서 비롯한다고 할 수 있다.
‘성기품’ 의 입장에서 보면, 열반은 생겨나지도 않고 죽어 없어지는 것도 아니므로 부처님이 열반에 드는 일도 없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어째서 열반에 든 것일까? 그것은 중생들에게 육신의 덧없음과 부처님의 육신은 없어져도 그 법신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단지 방편으로 열반을 나타내 보였을 뿐이라 한다. 어떤 중생이라도 본래 불성을 갖추고 있다는 ‘성기품’ 의 주장은 뒤에 ‘화엄교학’에서 중요시 되었다.
‘십지품’ , ‘성기품’과 나란히 중요한 것은 ‘입법계품’ 이다. ‘십지품’ 에서는 보살의 수행단계인 십지十地가 설해졌지만, ‘입법계품’ 에서는 선재동자가 쉰세 명의 선지식을 찾아 구도의 여행을 계속하여, 최후에 보현보살이 있는 곳에서 궁극의 깨달음을 원정하는 것을 설한다. 쉰세 명의 선지식 가운데는 보살은 물론이고 장자, 현자, 바라문, 비구니 등 갖가지 직업의 사람들이 다 포함되어 있다. 선재라는 어린 동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승을 찾아 떠나는 구도이야기는 이 경을 유명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화엄경」 가운데 특히 ‘입법계품’ 의 선재동자 구도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 까닭은, 선재동자의 구도자체에 매료되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의 마음을 품게 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가치는 출가나 재가등의 외형적인 구별에 있는것이 아니라, 오직 보리심을 발하느냐 않느냐에 의한 것으로서, 우리와 같은 범부도 종교적인 원심願心만 가지고 있으면 일상의 하찮은 일까지도 모두 종교적 향상을 위한 수행이 된다고 하는 가르침에 있다.
그런데 보리심은 누구나 쉽게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혼히 불교에 처음 입문한 사람들을 보고 초발심을 내었다고 말한다. 문자그대로 해석하면 처음으로 불교에 대해 마음을 내었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초발심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한 불교교리의 입장에서 말하는 초발심이 아니다. 초발심이란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상황이 변하더라도, 예를 들면 자신이 불교로 인해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하더라도 불교를 원망하거나 개종하지 않고 오직 확고한 신심으로 불도수행을 계속해 나가는 마음을 말한다. 그래서 「화엄경」, ‘법행품’ 에서는 “처음으로 발심을 했을 때 곧 정각을 이룬다”(초발심시初發心時, 변성정각便成正覺)라 하였다. 불교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생긴 뒤 그 마음이 결코 변하지 않고,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교리를 연구하고 실천 수행하면 언젠가는 깨달음을 얻게 되기 때문에 초발침을 내기만 하면 정각은 보장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불교에 대한 확신과 믿음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불교에 대해 올바로 알고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여 실천수행할 때 비로소 확실한 믿음이 생기게 되고, 더불어 보리심도 싹트는 것이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