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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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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이성선 1997년 03월 181호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아름다운 삶일까. 그 방법은 무엇이며 어디에 물어야 바른 해답을 얻을 수 있을까.
누구에게나 이 물음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생 들고 다니는 화두이고, 결국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 물음을 저승까지 가져가게 되리라.
나 또한 그런 사람의 하나로 혹시 그 답을 인도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왔다. 왜 하필 인도에서 그것을 찾으려 했을까. 두말할 나위도 없이 그 곳이 석가 세존이 태어나신 곳이고 제자들에게 직접 설법허신 땅이기 때문이다. 힌두교가 있고 마하빌라가 그 청정한 뜻과 순결한 정신을 일군 곳이며 달마가 태어나 동쪽으로 온 곳이다. 그러기에 인류 역사상 가장 좋은 가르침이 거기에서 피어나 지금까지 살아 있고, 아직도 고행과 영혼의 깨우침을 위한 노력들이 수도 없이 행하여지고 있는 곳이다. 또한 그것의 상징으로 히말라야 그 불멸의 혼을 싣고 강가-캔지스강-가 흐르는 땅.
내가 이 신비의 땅을 꿈꾸어 온 것은 오래 전부터의 일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70년대 청계천 어느 책방에서 영문판「바가바드 기따」를 구하면서다.
그러나 그 곳에 간다는 것은 꿈에 불과할 뿐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던 것이 90년대 초 겨울관광여행 편에 처음으로 인도땅을 밟게 되었고 나는 말그대로 황홀한 경험을 많이 하게되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직접 그들 생활 속에 뛰어들어 그들과 하나 되어 몸으로 체험하지 않고는 안다해도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드디어 배낭을 메고 떠난 것이다. 참으로 많은 것을 접하고 느끼고 얻게 되었다. 그것들을 여기 다 적을수는 없다. 또 한마디로 인도가 이러이러하다 말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꼭 말해야 한다면 인도 사람들은 사고의 폭이 매우 자유로우며 열려 있다 하겠다. 획일적으로 갇혀 있지 않은 천태만상의 모습과 생각과 생활방식이 공존하는 나라로 사람들도 아주 부드럽고 친절하다. 무엇보다도 너무나 인간적이다.
어디서든지 길을 잃고 기웃거리면 누군가 꼭 튀어나와서 친절히 가르쳐준다. 가령 힌두교의 성지 바라나시의 그 복잡한 미로속에서 길을 잃거나, 호텔 찾는 것을 보면 언제 어디서 튀어 나왔는지 초등학생 같은 어린이가 나타나서 가르쳐 주고는 웃으며 사라진다. 어른들에게 물어도 대부분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다. 이런 친절을 부끄럽게도 조금 의심을 품으면서 수도 없이 받았거니와 그 가운데에서도 특별히 잊을 수 없는 몇 사람이 있다.
한번은 동인도 라지기르에서였다.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하셨다는 영취산(Griddhakuta)을 오전에 오른 다음 오후에는 부처님 입멸 뒤 제1차 집결이 이루어진 칠엽굴(Saptaparnicave)을 보고 나서 천천히 바자르로 이어진 거리를 걸어서 구경하며 오다가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호텔에서 나오던 방향을 거꾸로 똑바로 기면 다시 호텔이 나오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길을 잘못 들은 것을 알고서 호텔이 있음직한 쪽으로 여러 번 골목을 돌아들었으나 번번히 허탕이었다. 하는 수 없이 마침 자전거를 타고 가는 중년 남성에게 호텔 이름을 대며 어느 방향으로 가야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대뜸 자전거에서 내려서는 따라오라 하고는 앞서 가더니 길가에 놀고 있는 아이 하나를 불러 무어라 힌디어로 말하며 자전거를 준다. 아마 그 자전거를 집에 가져다 두라는 뜻 같았다. 그리고는 나를 이끌고 다시 골목을 여러 번 돌아 또 한참가서 바로 호텔 정문 앞에 세웠다. 그 시간이 상당히 긴 것이었다. 이렇게 먼줄 알았으면 오토릭샤를 타야 하는 건데 길을 잃은 골목에는 그것이 없었고 그렇게 멀리 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내가 아주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 그는 인도인 특유의 그 좋은 웃음을 얼굴에 가득 띠고 괜찮단다. 나는 그 고마운 마음씨에 보답할 길이 없어 주머니 속에 있는 라이터를 꺼내 그에게 주며 이거라도 받아주면 고맙다 하니, 그는 어색한 웃음으로 조용히 거절하였다. 그런 그의 맘은 얼굴이 그 뒤 계속 내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또 한번은 봄베이에서였다. 이마다바드를 밤 열차로 가기 위해 봄베이 센트럴 역에 짐을 맡기고 남은 시간 인디아 게이트(인도문)를 구경하려고 길가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였다. 인도에 내려 시내버스를 처음 타려는 나에게 그것 자체가 모험이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마음을 가다듬고 버스 정류장을 찾아가서는 때마침 그곳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었던 삼십대 초반의 아름다운 사리를 입은 여인에게 물었다. 인디아 게이트를 버스로 가려는데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그랬더니 그 여인은 생긋 웃으며 아주 상냥한 어조로 여기서 버스를 타면 되는데 마침 자기도 그쪽으로 가니 안내해 주겠단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빨간색의 이층버스가 왔고 그는 나를 타라 하고는 뒤따라 탔다. 복잡한 버스 속에서 어떻게든 불편을 덜어주려고 온갖 배려를 아끼지 않는 그의 행동은 처음 인도 버스를 타는 나를 완전히 감동시켰다. 그는 나와 함께 버스에 서 내려서 인디아 게이트까지 안내해 주고는 역시 웃으며 떠났다.
여행을 다 마치고 귀국하려고 다시 봄베이에 들렸을 때다. 주정부에서 직영하는 선물센터에 들러 이것저것을 구경하고 있는데 스피커에서 인도의 신비스러운 전통음악이 흘러나왔다. 나는 얼른 곁을 지나가는 여종업원을 세워 이 음악의 이름이 무어냐고 물었다. 그는 자기는 잘 모르니 따라오란다. 그를 따라가니 방송실로 나를 데리고 가서는 한창 돌아가고 있는 테이프를 중단시켜 꺼내서는 거기 적힌 곡목명을 메모하여 나에게 준다. 나는 다시 이 테이프를 어디서 구하느냐고 물으니 그는 이것은 아무데서나 팔지 않는 테이프로, 첫째 인디아 게이트 옆 타지마할 호텔의 나란다서점, 둘째 리듬하우스, 셋째 제항기르 아트 갤러리에 가면 있으며, 그곳을 찾는 방법까지 자세히 가르쳐 준다. 그 덕분에 아름다운 인도 음악을 많이 사가지고 돌아와 시간만 나면 들으며, 언제나 친절하고 인정 넘치고 미소 띤 그들을 떠올리며 행복감에 젖는다. 어떤 삶이 진정 아름다운 것일까. 비록 물질적으로는 조금 가난하지만 따뜻한 눈빛과 가슴으로 살아가는 인도인들. 정신적으로는 더욱 높은 곳에 있는 그들의 삶에서 그 해답을 조금이나마 얻은 것 같아 무척 기쁘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