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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희망을 가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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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석도수 1987년 01월 59호
정리되지 못한 단편적인 지식을 열거하며 아무리 합리성을 주장하고 우월감을 안겨주려 해도 오늘날 수많은 불자들은 왜 그다지도 긍지와 자신감이 없는지. 양식이 살아있고 능력이 있는 착한 스님들이 어찌해서 일하고 공부할 곳을 찾지 못한 채 토굴로 들어가고 속가로 나갑니까? 오로지 신심이 없고 의지가 약하기 때문인가요? 만일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신심과 의지를 가꾸고 키워줄 방안은 전혀 마련될 수 없다는 말입니까? 또한 외부의 완력이나 입김에 언제까지고 이렇게 흔들려야만 하는 겁니까?

O스님,
낙엽이 지는가 했더니 그 새 또 한해가 저무는군요. 그간 건강은 좀 어떠신지요. 습관처럼 시름시름 앓으시는 스님의 병이 예사롭지 않은 마음의 병이란 걸 진작부터 눈치는 챘읍니다만,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쉽고 만만하게 살아갈 만한 세상이 본시 아니었지 않습니까? 굳이 사바세계니 업보니 하는 걸 입버릇처럼 되뇌이기에 앞서, 신바람이 나지 않는다고 쉽게 버릴 수도 없는 세상인 걸 어쩌겠읍니까? 그저 사는대로 사는 수밖에요.
O스님,
불현듯 그 이야기가 생각나는군요. 내가 세상보고 웃을 때 세상은 날보고 웃고 그러다 보니 자기가 자신을 보고 웃게 된다는 세개의 웃음이야기 말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웃음이 언젠가는 화사하고 정겨운 웃음으로 바뀔 날이 정녕 있을 것인지 모르겠군요.
사람이 산다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 아울러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 속에서 살아가는 맛이랄까 재미같은 게 생겨나리라고 여겨지는데, 도대체가 요즘은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 파묻혀 그저 그 물결에 떠밀려 가는 것 이상의 아무 것도 느끼질 못하겠더군요. 아무리 이리저리 둘러 보아도 온통 갈등과 회의와 불안의 앙금만 쌓여갈 뿐 뾰족한 지혜나 용기 같은 것이 좀처럼 샘솟지 않는게 어찌 비단 스님과 저뿐이겠읍니까? 신심이나 원력이 부족한 탓이 아니냐고 누가 질책을 가해온다 해도 딱히 아니라고 단호하게 부정할 의향은 없으나 그러한 앙금의 무게를 힘겨워하기에도 급급한 게 사실인걸 어쩌겠읍니까?
나라 안을 돌아보면 소위 한국적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유신시대의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무너지고 민주화의 여망이나 당위성이 많이 성숙되긴 했어도 첨예화된 아집과 아집의 대립 양상은 나라의 미래를 점치기 어려울 만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읍니다. 더구나 추구하는 방향이나 방법이 저마다 너무 선명하고 제각각이어서 대다수 민중들은 어떤 입장이 진정 올바른 것인지조차 판단하기 어려운 상태에 서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물론,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다보면 으례 이념이나 견해가 갈리게 마련이지만, 거기에 아량이나 대승적조짐 같은 게 전혀 엿보이지 않다 보니 희망찬 미래를 위한 필연의 진통이라는 섣부른 추측마저 쉽게 내려지질 않는군요
처음부터 거창하게 나라와 정치를 들먹이는 것 같읍니다만, 스님도 생각하고 계시듯 정치의 동향이 국민과 나라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할 때 중생을 제도하고 정토를 건설하겠다고 원력을 내세우는 우리 불자들이 그런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백번 당연한 일로 여기기에 이렇듯 조금 열을 올리는 것일 따름입니다. 뼈아픈 분단의 시대를 살면서 무언가 희망과 긍지의 나래를 펼쳐야 할 넓다란 하늘엔 오늘도 최루탄과 화염병이 날라다니고 있을 뿐이니 과연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입니까?
O스님, 그러나 어쩌겠읍니까? 그래도 희망을 가질 수 밖에. 깊은 겨울밤의 어둠 속에서 그나마 작은 불씨는 그래도 그것뿐인 것을. 욕심 같아선 요순시대 정도는 못되더라도 링컨의 웅지와 을지문덕, 이순신의 덕망을 닮고자 노력하는 정치 지도자들이 많이 나와 준다면 훨씬 좋아질 것도 같은데 말입니다. 오직 자신들의 이익을 움켜잡고 그것을 힘으로 지키고 빼앗기 위한 싸움만을 능사로 삼듯 그렇게 굳게 거머쥔 주먹들로, 어찌 화해의 악수가 기능할 것이며, 보다 큰 공동의 이익을 불잡을 수 있을 것인지 정말이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아무리 민주화나 통일이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찾아서 다가가야 하는 것이라곤 하지만 애꿎은 젊은이들이 자꾸 희생되는 것도 너무 안타까우니 말입니다.
그러면 이제 방향을 조금 바꾸어 우리 절 집안 이야기 좀 할까요?
세상사가 단숨에 갑자기 좋아지긴 어려운 것이겠읍니다만 우리 절 집안이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안이하고 구태의연하게 불교라는 명목만 유지해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저는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읍니다. 이씨조선과 일제시대를 겪으면서 누적되어 온 그 숱한 모순과 부조리를 이제는 정신 차려 본격적으로 재정리하고 새로운 기틀을 마련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덩치만 클 뿐 기력도 없는 데다가 병까지 앓고 있는 우리 불교를 언제까지 이렇게 내버려 두어야하는 건지 아예 생각을 않으려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 마음만 추위를 더할 뿐입니다.
스님이나 저나 너무 부정적인 안경을 쓰고 조급해 하는지도 모르겠읍니다만, 아직도 겉만 번지르르한 전통과 권위에 매달린 채, 판에 박힌 진부한 설법으로 중생들이 피안으로 잘 인도되고 있으며 불교도 곧 다시 중흥되리라는 착각과 환상에 빠져 있는 우리의 벗들이 아직도 너무 많은 듯합니다. 게다가 세속에서 유행하는 황금만능 풍조와 권력지향, 쾌락주의까지 절 집안에 거세게 스며들어 우리의 본분을 잊게 하고 있으니 사홍서원의 그 거룩하고 당당한 입지를 어느 세월에나 펼쳐갈 것인지 정말 가늠하기 어렵군요.
아픔이 시작된 것이 어제 오늘이 아닌 스님께서는 제가 드리는 말씀을 도리어 철없는 소리라고 쓴웃음을 지으실지 모르겠읍니다만, 그래도 우리 절 집안을 우리가 안타까워하고 애정을 갖지 않는다면 누가 그러겠읍니까? 제 어설픈 생각엔 누구를 탓하기보다는 모든 것을 새로 창조하는 마음으로 또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는 정신으로, 스스로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리라고 봅니다.
우리 한국 불교는 지금 너무 조용합니다. 이따금 모여서 헤어질 때 흩어지고 말, 소리나 질러대고 누군가의 속삭임을 믿고 한밤중에 건물이나 빼앗아 차지하려는 그런 소란이 아니라 불교의 진면목을 다시금 잉태하고 분만하기 위한 그런 진통들이 너무도 없읍니다. 일본처럼 우리 불교계도 한국의 친란이나 도원, 일연이 불쑥불쑥 튀어나와야 합니다. 해야 할 일이 어디 한두 가지입니까?
정리되지 못한 단편적인 지식을 열거하며 아무리 합리성을 주장하고 우월감을 안겨주려 해도 오늘날 수많은 불자들은 왜 그다지도 긍지와 지신감이 없는지. 양식이 살아있고 능력이 있는 착한 스님들이 어찌해서 일하고 공부할 곳을 찾지 못한 채 토굴로 들어가고 속가로 나갑니까? 오로지 신심이 없고 의에가 약하기 때문인가요? 만일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신심과 의지를 가꾸고 키워줄 방안은 전혀 마련될 수 없다는 말입니까? 또한 외부의 완력이나 입김에 언제까지고 이렇게 흔들려야만 하는 겁니까?
O스님,
그러나 저는 믿고 싶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정말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살고 있는 스님과 같은 도반들이 어느 구석엔가는 더러 계시며, 그 분들이 계시는 한 한국불교의 새 지평이 열릴 날은 반드시 오리라고 말입니다.
단지 제가 염려하는 바는 그런 분들이 절집을 아예 떠나거나, 자기 홀로 끝내 안주해 버리거나, 아니면 푸른 눈을 지키길 포기하고 함께 어우러져 싸움박질이나 세속적인 즐거움에 빠져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사질 제 자신부터도 그리되지 않는다고 장담하긴 어려울 정도로 힘들어하고있으니까요.
그러나 O스님,
노력하는 데까진 그래도 노력해 보십시다. 깨끗하고 맛난 음식을 먹자면 어차피 오물의 배설은 필수적인 법. 어찌 궂은 일이 없을 수 었겠읍니까? 그러한 갈등과 회의가 인생을 살찌우고 살아가는 맛을 돋우어 주는 것이라고 자위하며 땀을 흘리고 몸부림을 쳐봅시다. 그러나 말씀은 이렇게 드리면서도 됨됨이나 능력이 알량하기 이를 데 없는 저는 그저 스님의 병을 옮아와 오늘도 약을 구하지 못한 채 앓고 있을 따름입니다.
O스님,
동병상련이란 말이 있듯이 척박한 이 풍토에서 우리 의리와 믿음 하나만이라도 지켜가십시다. 자비와 용서와 화합이 구두선이 된 지 이미 오래지만 그래도 외롭고 험하고 멀기만한 이 길을 눈물이 나도록 위안받을 수 있는 건 아직 도반의 의리와 믿음이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니까요.
스님께 안부의 말씀이나 전한다는 것이 어줍잖은 푸념만 한가하게 늘어놓은 꼴이 되었군요. 글을 다 쓰고 나면 스님께서 좋아하시는 김영동의 ‘어디로 갈꺼나’나 조용히 흥얼거려 볼랍니다. 저도 지금 너무 힘이 듭니다.
O스님! 그래도 그래도 희망을 가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