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둑을 넘은 정권퇴진의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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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7년 02월 180호
최악의 선택

지금 많은 사람들이 새삼스럽게 십 년 전에 도도하게 물결쳤던 민주화의 함성을 되새기고 있다. 전두환 정권 말기에 근로대중의 민주화 요구가 폭압에 의해 말살되는 위기에서 대중이 선태했던 항쟁을 다시 보고 있는것이다.
87년에서 97년에 이르기까지 그 십 년의 세월 동안 한국 사회는 물론 국제사회 역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격변이라는 용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변화가 있었다. 사회 내부적으로는 87년 6월 항쟁의 결과 비록 정치적으로 집권세력의 전면적인 개편을 보지는 못했지만 사회적으로는 폭압적 군사통치가 후퇴하게 되었다. 외부적으로는 국제사회에서 냉전체제의 한 축이 무너지면서 자본주의 맹주국 미국 등 선진국에 주도하는 국제시장 질서가 등장하였다. 사상과 체제를 넘어선 무한적 경제전쟁이라고까지 불리는 새로운 질서의 대두로 말미암아 코 앞에 다가선 2l세기에 살아남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역사에 가정은 있을 수도 없겠으나 87년 용솟음쳤던 대중의 활력을 한국사회가 대중적으로 포용하였더라면 십 년이 지난 지금의 사정은 훨씬 달라졌을 것이다. 사회적 통합력이 월등하게 높아져 국력의 낭비도 없었을 것이고 국민 일반의 생활 질 역시 향상되었을 것이다. 곧 국제 경쟁력의 제고와 아울러 국제사회에서의 신뢰도에도 엄청난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예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노태우 정권 이후 현재의 정권에 이르기까지 그런 바른 길로써 내부의 통합력을 높히기 보다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외교적 노력에만 주력하였다. 그리하여 일견 국제사회에서 정부의 위상이 높아지는 듯 하였지만 그 성과는 어디까지나 거품에 불과할 뿐 국가경쟁력의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현재 한국의 경제가 곤두박질하고 있는 원인 중에는 십 년 전의 그 활력을 국가의 경쟁력으로 이끌어내지 못한 실책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80년대 중후반 일시적인 호황국면에서 정부는 자본의 건실한 투자로 근로대중의 의욕을 이끌어내고 사회적 건강성을 회복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일시적 호황국면에 환상을 갖고 있는 나머지 사회의 건강성을 해치는 투기와 투전, 사치성 소비재의 무분별한 수입이 횡행하고 일부 수출호조 품목에 대한 과도한 중복 투자 등은 변화되는 국제시장과 경제질서에서 국가적 생존을 위태롭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잠깐의 호황은 순식간에 빚잔치로 전락하였고 이제 김영삼 정권은 그러한 총자본의 위기를 근로대중에게 전가하고 있는판이다.
지난 연말에 신한국당 소속 의원들만으로 새벽에 날치기 통과시킨 법들은 바로 그 총자본의 위기를 근로대중에게 전가하는 신호탄이었다. 하지만 그 신호탄은 지난십년 동안 정부가 수렴하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더욱 공고한 통합력을 갖춘 대중의 조직력과 민주화에 대한 열렬한 의지를 모르는 무지한 행동이었다. 국민은 알고 있는데 정작 권력층에서는 모르고 있는 국면으로인해 정권은 악수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독재로의 회기

작년 l2월 26일 새벽 신한국당 소속의원들만으로 임시국회 본회의를 열어 노동관계법과 안기부법을 날치기 통과한 직후 야당 일각에서는 김영삼 정권의 독재로의 회귀를 우려하였다. 그 단정은 대단히 심각한 의미를 갖고 있다.
어쨌든 야당이 김영삼 정권이 독재로 회귀하고 있다라고 하는 것은 정당한 지적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한국사회는 지금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고 있다. 그 원인은 물론80년대 중반 국내외적 호조건에 힘입어 경제적 호황을 보았을 사회적 부의 건강성을 확립하지 못한데서 기인한다. 때문에 새로운 국제경제체제에 조응하기 위한 내적 축적을 하지 못했고 이어 닥친 국내시장의 개방은 더욱 경제 위기를 가중하게 되었다. 물론 80년대 후반에 이런 증세가 있었으니 당시 새로운 시장의 개척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즉 한국사회가 그 동안 접하지 못했던 사회주의권을 새로운 시장으로 가질 수 있었기에 파국을 모면할 수 있었으나 그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국가의 경쟁력은 지본가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근로대중의 동력을 정치, 경제적으로 올바로 수용하여 갈때 사회 통합력이 제고되며 곧 국가의 경쟁력도 강화되는 것이다. 이런 원론적인 수준조차 한국사회는 무시하여 왔다.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라든가 사회가 안정되어야 국민의 삶이 나아진다 라든가 하는 거꾸로 된 구호만 강요하는 것이 관례로 되었다. 김영삼정권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가의 경제가 위기로 내몰린 원인을 엉뚱하게 받아들여 근로대중에게 희생을 전가하려 한 것이 이번 총파업을 자초한 날치기 통과였다. 그는 의회질서를 교란하고 대중의 자주적 저항에 대해 경찰등 공권력을 동원하여 제압하려 하였고 국민의 민주적 요구에 대해 철저하게 기만과 무시로 대하였다. 자본의 안정적 이윤 확보를 위해 상대적으로 노동력의 대가를 줄이는 정책을 폭력으로 관철하려 한것이다.


자초한 권력누수

현정권은 정세 판단에 커다란 오류를 범했다. 87년 이후 대중의 자주적 조직과 운동력에 대해 과소평가하였고 자신이 군부출신이 아니어서 국민의 신뢰를 받을 것이라는 자만과 이미 국제사회의 일원이 된 한국사회의 책임에 대해 전혀 무지하였다. 그저 국민에게 그럴듯하게 구실을 둘러대고 적당하게 공권력을 동원하여 자주적 대중조직을 무력화하면 총체적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판단으로 인해 스스로 권력의 헛점을 드러냈다.
날치기 통과 이후 노동자들의 총파업과 종교인, 지식인 등 대중의 저항은 실로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게다가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은 불에 기름을 붓듯 대중의 분노를 고조시켰다. 선진국에는 파업이 없네, 개정노동법은 국제수준입네, 한국전쟁이후 처음 노동관계법을 개정하였네라는 대통령의 정치관에 국민은 모두 넌더리를 냈다. 도대체 국가의 지도자라는 사람의 수준이 이런 정도라면 당면한 현안 해결에 전망을 기대할수 없게 되었다. 꼭 십 년만에 거리는 시위의 물결이 넘쳐흘렀다. 서울만이 아니라 전국 주요도시에서 근로대중이 주먹을 불끈 쥐고 정권 퇴진을 외치고 있다. 정부와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구호가 점차 정치투쟁으로 가고 있다며 탄압의 구실을 찾았지만 상투적인 선전일 뿐 이었다.
오히려 그들이 노동자들을 정치투쟁으로 가게끔 근로대중의 분노만 가중시키고 있다. 생존에 관한 요구를 평화적으로 관철할수 없을 때 ‘백척간두’ 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듯 총파업은 피할 수 없고 그 과정을 거치면서도 국민 대의기구인 의회가 대중의 요구를 대변하지 못한다면 결국 선택의 여지는 없어진다.
현 정권은 대중의 요구를 들어주면 권력의 안정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되며 나아가 차기 정권의 창출에 지대한 장애가 발생할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미 정권이 자초한 악수로 말미암아 대중의 민심은 크게 이반되어 있고 또한 집권세력 내부에도 이견은 속출하고 있다. 차기 정권의 안정적 창출은 고사하고 임기 중 불행한 사태가 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우리 현대 정치사의 비극이 재현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 거리에서 공장에서 학원에서 다시 불붙기 시작한 ‘정권퇴진’의 요구를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집권세력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폭력으로 근로대중을 제압하고 지본의 안정을 지키려는 구태를 벗고 진정 대중의 활력을 살리는 정책을 선택하여야 한다. 날치기 통과의 무효다 재개정이다 하는 것은 과정에 대한 도덕적 지적이지 사태의 본질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일차적으로 정치인들의 책임인만큼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는 근로대중의 엄중한 비판을 감수하게 될 것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우가 없기를 바란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