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뚜막에 쪼그리고 앉아 군불을 지펴보는 느긋함을 누려봄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아궁이에는 장작들이 툭툭 튀며 한껏 불꽃을 토하고 두뺨은 어느새 널름거리는 불그림자에 얼얼할 정도다. 충혈된 눈과 눈보라 속을 달려온 듯한 언 가슴도 함께 아늑해지며 진정이 된다.
그저 매캐한 연기 때문에 눈이 충혈된 것은 아니다. 상기된 볼을 두손으로 감싸고 목젖을 가르랑거리는 한 마리 고양이처럼 눈을 지그시 감아 본다. 아득히 몰려오는 사념의 얼레에, 잠시나마 그리고 어렵잖게, 감겨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되돌아보면 우리의 등 뒤로는 그 얼마나 숱한 한숨과 좌절들이 회오리치며 할퀴고 간 자국들뿐인지. 겨울의 빈 들녘보다 더 난감하고 을씨년스러운 모습의 형해들만 널려 있겠기에 말이다.
이나라 높으신 분들의 속셈 하나 꿰맞출 줄 모르는 사람들마저도 이 대한민국에 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마냥 짓밟히고, 주눅들고, 불안해 하고, 얻어터지고, 가슴을 줴뜯고, 안달복달 독한 술을 벌컥이고, 신 새벽 담벼락을 붙들고 토악질하며 꺼이꺼이 울부짖고, 달을 노려보고, 어둠을 쏘아보고, 친구의 면상에 삿대질과 욕설을 예사로 하고, 길거리의 동생같은 전경들을 적대시했던 나날들이지 않은가.
학교는 난장판이 되어야 하고, 교수는 은근슬쩍 겁장이로 둔갑되어 회자되어야하고, 학생들은 투사가 되어 최루 개스에 눈물 콧물을 쥐어짜기 바쁘고, 정치인들은 술수와 권모와 불신으로 이나라 국민들의 뜻을 자기네 임의대로 우물쩍주물쩍 이렇게 차용하고 저렇게 도용하고, 터무니없는 방향으로 얼렁뚱땅 해석하여 여봐라는듯 조-석간으로 생색내고.
이나라 대다수의 시민들은 불안과 긴장에 이리뛰고 저리쫓기고 말 그대로 좌불안석이다. 이나라의 정상적인 시민이라면 그 어떤 병명으로든 한두 번 약국을 찾지 않고 병원문을 들락거리지 않았을까. 그러한 현상 자체가 딱이 몸이 아파서라기보다는 고양이 눈만큼이나 예상할 수없이 무쌍하게 돌변하는 이나라 시국의 험상궂은 증후성에서 산출된 부분적인 부산물아라 한다면 과연 견강부회(牽强附會)하는 상상에 지나지만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은 너무도 어렵고 많은 부분에서 부대낌으로 진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빈부의 격차, 대기업의 문어발식 착취와 팽창, 언론의 이빠진 무사태평가, 취업난의 아우성과 잇따른 실직, 열악한 노동환경에 저임금의 분노, 정치의 잦은 경색과 완력, 뿌리없는 문화의 온상인 텔레비젼 같은 것들이 우라 생활과 의식 전반을 뒤틀어쥐고 들쑤시고 사회를 황폐하게 만든다.
그러한 까닭에서인지 몰라도 요즘의 우리는 인간이 갖춰야 하고 갈고 닦아야 할 품성인 아량과 인정의 포근함을 마차 거추장스러운 예복이나 되듯이 내팽개친 채 살아가고 있다. 곳곳에서 느껴지고 맡아지는 것이 오로지 비수와 같이 예리한 적의들뿐이다.
장안의 비리와 타락성이 마치 보편적인 가치척도인 양 재단까지 하여 장황히 너스레를 떠는 합승한 택시 속에서 위험한 적의를, 공허한 비현실의 모럴과 삶들로 우리와 유리된 텔레비젼 화면에서 조악한 색깔의 적의를, 충분히 숙지되지 않고 역사성에 근접도 하지 못한 주변없는 상대에게 자신의 주장과 덜 삭힌 감정의 울분으로 육박지르며 강압하는 사람에게서 느끼는 심히 난처하고 불안한 적의를, 날마다 보는 신문에서 굵직굵직한 활자들로부터 무감동의 적의를 쥐꼬리만한 권력에 편승하여 거들먹거리는 자들에게서 비열한 적의를, 곰팡이가 더덕더덕 핀 메주같은 옹고집의 독선으로 님이 하는 일을 중상하고 모략질하는 사림에서 독사같은 적의를, 비겟살이 디룩디룩 쪄가지고 자기와 상관없는 일은 거두절미해버리고 이해득실을 먼저 셈하는 사람들에게서 이기적
인 적의를…
많은 사림들이 그렇게 충혈된 눈으로 목말라하며 갈망하는 것은 그렇게 큰 꿈도 대단한 변혁도 아닐 것이다. 설사 그러한 바램들이 현실적으로 확보되고 충족되었다 하더라도 인간의 온갖 모순덩이는 그대로 꿈틀거릴 터이기에 말이다. 현실과 이념이나 소신의 부조화에서 부글거리는 분노의 찌꺼기를 걸러내는 투철한 자기반성이 따르지 않는 그 어떤 행동양식도 또다른 과오의 물결에 빠지고 말 단순 역할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에.
눈이 올 것이다. 폭설이 한바탕 내리고 난 뒤의 겨울하늘처럼 우리의 성급하고 조급한 호흡을 가다듬으며, 무한한 나무람으로 더욱 빛나는 푸르른 하늘에 산죽의 카랑카랑한 서걱거림으로 버림받은 자의 가슴에 아픔과 희망으로 다시 소생하는, 버림을 준 자에 대한 피맺히도록 처철한 그리움으로 이 새해를 맞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