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 강당에서는 두 가지를 잘하면 ‘강당생활 잘한다’고 합니다. 하나는 대중을 대표해서 부처님 전에 음성공양을 올리는 창불이고, 하나는 발우공양입니다. 해인강당에 들어오면 일 년 동안은 습의의 연속입니다. 매철마다 어김없이 행해지는 습의 살림 말고도 관음전 자체적으로 이루어지는 습의를 합하면 강의 시간보다 많았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습의 살림들 가운데 으뜸은 단연 팔만사천중생을 먹여 살리는 발우공양입니다.
강당생활에 있어서 가장 지적이 많이 나오는 곳이고, 일 년 동안 지적이 끊이지 않습니다.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하랬지만 개는 축생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생리 조건들을 규제함으혹써 대중의 규율을 잡아나가는 것은 동서고금의 방식입니다. 화합和合이라는 말을 보아도 쌀(米)을 먹는 입(口)과 사람(人)들이 서로를 하나(一)의 입(口)으로 여기는 것이라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피를 나눈 가족을 먹는 입들이라는 식구食口 라고 하는 것을 보아도 먹는 일은 인간 생활의 중심이라 할 것입니다.
「금강경」의 첫부분이 부처님께서 공양을 하기 위해 차제걸식하여 공양을 하고 대중과 함께 발우를 닦고 자리에 앉자 지혜 제일인 수보리께서 그 공덕을 찬탄히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여법하게 먹는 것이 선정이고 부처님의 행임을 나타내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에서도 허생이 건설하려는 이상국 교육의 첫번째가 아이틀에게 오른손으로 밥을 먹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토마스 모어의「유토피아」에서도 공양을 먹는 것은 대중이 모여서 어른들이 공양하는 것을 살펴드리며 어른들이 공양을 한 뒤에 먹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류가 추구하던 최고의 이상향에서는 공양시간의 교육을 매우 중요시 하였으며 그 일은 그 사회의 유지를 위하여서는 매우 중요한 일들로 간주되었습니다.
인간은 생리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생리적인 욕구를 여법히 규제함으로써 공동체의 일원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단월들의 깨끗한 시주물을 신심 좋은 행자님들이 정성껏 지어 부처님 전에 올리고 청정승가가 대중방에 모여 함께 법공양을 하는 것이 공부 그 자체 아니겠습니까?
삼륜이 청정하고 오관을 상념하며 아귀와 귀신들까지 공양을 하게 하므로 공양供養이라고 하지않습니까? 속인들처럼 먹어서 죽이는 식사食事가 아니라 서로를 북돋아 살아나게 하는 것이 공양입니다. 한 오라기만 있어도 죽음을 면하는 신통력을 가졌다는 가사를 입고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는 일이니 어찌 한순간이라도 흐트러짐이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공양을 진지할 때를 행익行益이라고 합니다. 공양을 풀 때에는 미늘 쪽처럼 모양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모양에 집착을 하면 팔에 힘이 들어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밥을 다지게 되어 떡밥이 되어 버립니다. 상에 집착을 하면 일을 그르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발우에 밥알을 흩어 놓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모양에 집착을 하지 말랬지 모양을 무시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공양을 다그치지 말고 달래서 마늘 모양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공양을 뜨는 중도中道입니다.
검지를 펴고 엄지 손가락과 나머지 손가락으로 감싸쥐면 검劍올 잡는 법과 같습니다. 이것이 국자와 주걱을 잡는 법입니다. 그렇게 쥐고 45도 각도로 찌르고 뜨면 마늘 쪽 모양이 자연스레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다리는 긴장을 하여 너무 벌리거나 불안해 보이도록 좁히지 말고 기마 자세로 자연스럽게 굽히고 엉덩이가 뒤에 앉아 있는 스님의 얼굴을 향하지 않도록 비스듬히 섭니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해우소를 다녀갈 때 연습을 하면 자연히 몸에 익게 되고 그것이 몸에 익으면 그렇게 편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일, 이 년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발우공양을 시작하면서부터 시행착오를 거치며 내려온 전통의 산물이므로 전수 사항대로 하는 것이 곧 첩경입니다. 국자로 국을 뜰 때에도 주걱을 잡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잡아서 건더기와 국물을 적당히 섞어서 떠야 합니다. 국물이 흐르지 않도록 건더기 처리를 잘하고, 국의 수면에 한번 슬쩍 대었다가 들면 됩니다. 처음에는 팔 할쯤을 뜨고 더 원할 경우는 처음의 반을 그리고 더 원하면 그의 반을 뜨면 됩니다.
처음의 청수나 두번째의 공양, 국 등 모든 행익의 순서는 어른 스님들부터 시작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리고 이 원칙은 웬만 해서는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특식이 나왔을 경우에는 모든 대중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두 차례 돌려야 합니다. 옛날 중국에서는 국을 한 사람만 주지 않고 잔치를 치렀다가 나중에는 그 국 한 사발 때문에 낭패를 보게 되는 이야기가 있듯이 먹는 것으로 차별을 받는 서러움이 크다고 합니다. 그러니 특식은 천천히 한번 더 돌려야 합니다.
공양을 들 때는 허리를 곧추세우고 시선은 좌선 하듯이 1 .5 미터 앞에 두어야 합니다. 괜히 어른 스님의 공양하는 모습을 감상할 필요는 없습니다. 누구든 먹는 모습을 빤히 다보는 것은 싫어합니다. 적당히 상대방의 발우를 보면서 속도를 조절 할 수도 있고 무엇이 필요한 지도 알 수가 있습니다.
시간이 없다고 허겁지겁 발우에 얼굴을 묻은 채 공양을 하여서는 안 됩니다. 처음의 두 수저를 잘 씹어 삼키면 다음부터는 웬만큼 빨리먹어도 됩니다. 씹고 있을 때는 차수를 하고 오관을 상념하여야 합니다.
퇴수물은 먼저 김치로 발우를 두 번쯤 잘 행구어 마시고 나서 씻어야 합니다. 부처님의 자비로움으로 퇴수물을 먹고사는 아귀와 금시조를 배부르게는 못할 망정 살생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천수경의 ‘아약향아귀 아귀자포만’을 입으로만 하지 않고 손쉽게 그 원과 자비를 실천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자신의 퇴수물이 깨끗하더라도 조심스럽게 비워야 합니다. 그릇 부딪치는 소리, 물 붓는 소리만 듣고도 아귀 귀신들의 목에서 불이 난 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금 남기어 마셔야 합니다. 목구멍이 바늘만한 아귀의 생명을 위해서입니다.
습의를 마치고 나는 그들의 눈빛을 둘러 보았다. 치문반스님들의 눈빛이 예전같지 않다. 치문반 때 내 눈빛과는 다름을 느낀다. 생경하고 두려운 강원의 분위기와 상판 스님의 위엄있는 자태, 그 앞에서 나는 얼마나 숨죽여 살았던가. 일 년, 그것은 정말 지겹도록 긴 시간이었다. 이제 그 일 년의 시간을 무사히 마친 내가 다시 치문반 스님들을 향하여 발우습의를 한다. 하지만 예전 같지 않음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 내가 살아온 일 년의 시간과 이들이 맞을 일 년의 시간 차이는 무엇일까. 세태를 크게 반영하는 절집의 시간 앞에서 나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걸까.
발우습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그들의 눈빛이 초롱하고 진지하게 살아나길 발원해 본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