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겹던 고향의 명절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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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이홍태
1997년 02월 180호
해마다 명절이 될 때면 조계산과 모후잔으로부터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이 마을을 감싸고, 햇빛이 유유히 흐르는 보성강 줄기를 은빛으로 뒤채게 했던,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그 곳 송광의 낙수마을이 생각난다.
문득 나는, 뒷동산에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꽃을 바라보며 어머니의 정갈스런 손때가 묻은 토방 마루에 앉아 있다. 앞마당에서는 손에 알맞게 쥐어지는 둥글고 매끄러운 돌과 돌확 사이에서 달달달달 보리쌀 갈리는 소리가 들린다. 담장 밖의 우물가에서는 동네 아낙들이 두레박을 내려 물을 길으며 우스운 이야기를 나누는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끼득끼득 웃는 소리가 들린다.
내 환청 속에서 낡은 두레박은 끝도 없이 깊고 깊은 우물 바닥에서 무엇을 걷는 것일까. 아마도 추억들어리라. 명절이 다가오거나 바쁜 도시생활 속에서 어쩌다 한번씩 운 좋게 마주치는 보름달을 보고 있노라면 유년의 다정하고 즐거운 기억들이 푸르르 되살아난다. 특히 머잖아 보게 될 정월 대보름의 달빛은 다시 정겹고 애달픈 향수를 느끼게 하리라.
이제 그 고향은 다목적댐의 건설로 영원히 수장되고 말았다. 그러나 마음속에 간직된 추억의 이미지는 결코 지워지지 않으리라 믿으면서 어릴 때의 기억 가운데 가장 잊혀지지 않는 정월 대보름날의 풍속 몇 가지 적어본다.
마을의 보름은 약밥과 까치밥. 그리고 불 넘기, 마당 밟기에 그 맛과 정취가 있다. 잘 갈무리해 둔 찹쌀에 밤, 대추, 감말랭이, 말린 호박 등을 넣어 만든 별미스러운 약밥은 차례를 지내고 사립문 기둥 위에 얹어 놓는다. 이것을 까치밥이라고 한다.
까치밥을 먹으면 일 년 내내 병이 없어지고 액운을 몰아내고 좋은 일만 생긴다고 해서, 청년들은 청년들끼리 어린아이들은 또 그 또래 아이들끼리 우르르 몰려다니며 다투어 거둬 먹는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거둬 온 까치밥이 집집마다 조금씩 맛과 색이 다르고, 잘 익은 밥이 있는가 하면 설거나 눌은 밥도 있기 마련이어서 맛과 냄새가 뒤죽박죽이지만 한데 섞으면 새로운 별미가 된다는 사실이다.
또 보름날에는 온 집안에 불을 밝히고 어린아이들은 고춧대를 거두어서 마당 기운데 불을 피우고 제 나이만큼 뛰어넘는다. 그렇게 뛰어넘으면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어른들의 말을 곧이 듣고 한번이라도 더 많이 뛰어넘으려 애썼던 기억이 새롭다.
불 넘기가 끝나면 깡통에 불씨를 담고 나와 논두렁에 불을 지르는 쥐불놀이를 시작한다. 쥐불놀이는 논두렁에 불을 지르는 일에서 시작되어 다 타고 재만 남은 깡통을 밤하늘에 던져 멋진 별똥별을 만드는 일로 마무리를 한다. 바짝 마른 논두렁에 불을 붙일 때는 제나이만큼 불을 나누어 놓는다.
쥐불놀이 준비는 사실 정월 초부터 시작된다. 아이들은 바람어 쌩쌩 부는 산에 몰려다니면서 관솔불을 지필 송진 묻은 소나무가지를 꺾고, 길가에 버려진 고무 조각들을 일 없이 주워 모은다. 또 미리 논두렁에 작은 구멍을 파서 바람이 불어도 불이 꺼지지 않게 작은 불집도 만들어 둔다.
보름날 밤의 절정은 무엇보다도 달집놀이에 있다. 마을 청년들이 낮 동안 내내 인근 산을 뒤져 달집놀이에 쓰일 청솔가지나 대를 꺾어 온다. 청솔가지를 따는 것이나 대를 치는 일은 산주인들 몰래 이루어진다. 주인들에게 들키면 크게 야단을 맞지만 정작 달집놀이에는 마을 어른들이 다 모여 구경을 하며 즐거워한다. 우리는 청솔 가지를 집채처럼 쌓아놓고 둘레에 댓가지로 엮어 만든 달집을 짓는 것을 보며 저녁밥 먹는 것조차 잊은 채 달이 빨리 떠오르길 빈다. 달집이 지어지는 곳은 동네 한가운데 자리한 장자이라는 작은 연못가이거나 마을에서 가까운 들판이다. 달집은 윗동네와 아랫동네가 각각 한 채씩 소유하게끔 두 채로 나뉘어 이어지는데, 밤이 되어 달이 돋으면 마침내 청년들이 달집에 불꽃을 올리기 시작한다. 더 밝고 더 타오르는 달집에 풍년이 든다고 하여 어른들은 불꽃을 보고 그 해의 농사를 점친다.
설이 아니라 보름에 이런 농사일을 미리 점쳤던 것을 보면 일년 일의 시작은 보름께부터 비롯되는 셈이다. 달집 타오르는 모습 말고도 그 해 농사가 잘될 것인지 보름날 하늘에 낀 구름을 보고 알기도 한다. 구름이 마치 보리를 베어 놓은 것처럼 하늘에 두루 넓게 깔려 있으면 풍년이 든다고 하고 비가올 듯이 찌푸리면 장마가 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보름날 빼 놓올수 없는 풍습의 하나로 잠을자지 않고 밤을 새우는 일이 있다. 보름날 저녁에 일찍 잠을 자면 아침에 굼뱅이가 되어 깨어난다거나 머리가 하얗게 센다고 겁을 주곤 했는데, 형이나 누나들은 어느새 곤한 잠에 빠져버린 내 얼굴과 머리에 밀가루를 묻혀놓고 잠이 깬 나에게 다리가 하얗게 세어 버렸다고 놀려대곤 했다. 일 년을 깨어서 부지런한 모습으로 맞이하라는 뜻이었을까.
또 보름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다른 형제나 친구들에게 가서 정답게 그의 이름을 부르고는 상대가 무심히 대답을 하면 ‘니덕(내 더위)’ 하곤 외치는 풍습이 있다. 그 때 상대의 대답을 재빨리 되받아 ‘니덕 내덕 건 네덕’ 하고 외치는데 이렇게 해야 여름 더위를 타지 않고 지나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더위를 판 사람은 하루종일 즐겁고, 더위를 먹은 사람은 하루 종일 속아넘어간 것을 못내 이쉬워한다.
오래된 기억 속에 연날리기의 즐거움과 줄다리기의 흥성함도 희미하게 새겨져 있다. 지금이야 이런 놀이들이 틀에 박힌 전통 속에 끼어든 특별한 행사로 행해지지만 그 때만 해도 이런 놀이는 그저 생활의 일부였던 듯하다. 연을 만드는 일은 대나무 살을 잘 만드는 일과 연 꼬리를 잘 다는 데서 성패가 갈라지는데, 급한 김에 뒷광에 걸린 대나무 소쿠리를 망가뜨려가며 연 살로 쓰다 어머니한테 꾸중을 들었던 일이 지금 눈앞에 선하다.
명절은 늘 고향과 함께 떠올려 진다. 또 고향은 따뜻한 인정의 나눔과 흐뭇한 삶의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지는 법이다. 그래서 명절을 잃는 것은 삶의 정겨움을 잃는 것과 같다. 이런 명절 가운데 특히 정월 보름은 요란스럽지 않으면서도 실질적인 일 년의 시작이라는 절기가 지닌 의미를 다양한 풍속을 통해 잘 보여주는 듯하다. 보름뿐 아니라 세시 명절의 풍속이 지닌 의미를 되새겨 보는 일은 우리의 삶 근저에 놓인 영원한 마음의 고향을 찾아 나서는 일과 다르지 않다.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