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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수행의 원력을 세우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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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현진 1997년 02월 180호
절집 안에서 처음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을 때 평소와는 다른 예불 의식을 치렀다.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염불이었는데 절을 수차례 되풀이해서 하였던 것 같다.
그 때 올린 예불어 통알通調 의식이었음은 나중에야 알았다. 절집에서는 정월 초하루 아침에도 통알 세배를 한다. 대중이 한자리에 모여 올리는 세배라는 뜻에서 통알이라 하며 새해 아침에 부처님께 세배 드리는 의식이라 하여 세알歲調이라 부르기도 한다.
“대중은 업드려 청하옵니다. 일대교주 석가모니 부처님께 예를 올립니다.”
이렇게 염불하면서 차례차례 세알삼배를 울리는 게다. 계속해서 불보, 법보, 승보 전에 삼배를 하고, 명부시왕 호법 신중들에게 삼배하고 스승과 일체고혼에게도 새해를 맞이하여 절을한다.
그러니까 통알은 세속의 세배와는 달리 통괄적으로 삼보의 은혜와 스승의 은덕에 감사드리는 의식인 셈이다.
이 의식까지는 사부대중 모두가 똑같이 절을 하지만 다음부터는 세배 받는 이와 세배하는 이로 갈라지게 된다. 산중의 어른들부터 차례차례 세배를 받게 되는 탓에 맨 아랫줄에 서 있는 행자들은 절하기에 바쁘다. 비구계를 수지하고 처음 사미 스님들과 비구니 스님들에게 세배를 받게 되었을 때, 큰어른이나 된 것처럼 으쓱거리며 철없는 행동을 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우습다.
도반 끼리 따로 모여 세배하는 일은 절집의 아름다운 풍속이다. 새해 아침 서로에게 절 할 때의 그 마음은 어느 때보다 순수하고 도반애가 몇 곱절 더 느껴진다.
정월 초하루 새벽은 온 도량이 목탁소리로 가득하다. 부처님께 떡국 마지를 올리려고 불공을 시작하는 까닭이다. 이 날은 산신각까지 빠짐없이 떡국공양을 올려야 하므로 잔칫날처럼 분주하다.
이상하게 정월 초하루에 올리는 새벽 예불은 힘들지 않고 벅차 오르는 신심으로 예불을 마친다. 염불하는 목소리까지 청아하게 들리는 걸 보면, 새해 아침에는 어제의 그 마음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정월 초하루의 떡국공양은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은 이른 아침부터다. 별다른 양념이 들어가지 않은 떡국이지만 거뜬히 한그릇을 비운다. 아마도 공양주 스님이 다른 날보다 더 많은 정성을 쏟았기 때문이리라. 표고버섯과 다시마 우려낸 물로 끓이는 절간의 떡국은 조미료를 쓰지 않는 탓에 아직도 옛맛 그대로다. 해인사에서 새해 아침을 맞이해 본 이들은 그 독특한 떡국맛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게다.
설날 아침에는 산중 어른들을 찾아뵙는 일이 청복처럼 느껴진다. 산중노덕老德의 덕담 한마디는 살아 있는 법문과 다름없다.
마음이 밝아서일까. 설날에 만나는 이들은 누구나 좋은 얼굴로 합장을 한다. 산중은 뭐니뭐니 해도 스님네가 많아야 명절 기분이 더 난다. 그래야 윷놀이 마당이 왁자지껄 한바탕 신명이 오르기 때문이다.
승속할 것 없이 명절날은 시끌벅적 해도 그다지 큰 허물이 아니다. 젊은 스님네가 큰방에 모여 큰소리로 윷을 놀아도 이 날만은 노스님의 꾸중을 듣지않는다. 또 그믐날에는 자정이 넘도록 윷놀이를 즐기는 소리가 산중을 올려도 얼굴붉히는 이 하나 없는 게 신통하다. 한참을 고함 지르고 나면 혼이 쑥 빠진다. 그믐날 젊은 수행자들의 이러한 동심어린 치기는 어쩌면 명절 때마다 더 크게 마주하는 고독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싶다.
성불도成佛圖 놀이도 재미 있다. 절집안의 전통적 놀이인데 부처님의 지위에 오르는 단계를 윷놀이 식으로 만든 것이다. 중생계인 범부에서 출발하여 성불의 위치까지는 여러가지 함정과 장애가 있는 것이 마치 우리들의 수행길 같다. 이 놀이에서는 길을 잘못들면 육도윤회를 되풀이해서 오르락 내리락 하기도 한다. 이러한 지위를 건너고 보살의 위치를 넘어 부처님의 자리에 오르면 비로소 승리자가 되는 셈이다. 그러면 우승한 이에게 놀던 이들이 모두 삼배를 올리고 법문을 청한다는 방식이 윷놀이와 다른 점이다. 교리적인 내용이 돋보이는 성불도 놀이를 할때마다 수행의 초입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 같아서 부끄럽다.
그믐날이 그 동안의 도정道程을 점검하는 닐어라면 정초날은 수행의 원력을 세우는 날이다. 아무런 장애 없는 수행이 제일 가는 공부. 수행길에 마장이 많으면 아무런 진전없이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설날 저녁 무렵이면 대부분의 스님네가 본분으로 돌아가서 무장애를 발원하는 정초 기도를 시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월 대보름날까지는 법당에서 목탁소리 끊어지지 않는 것도 절집에서만 볼 수 있는 세시의 한풍속일 게다.
올 설날 아침에도 늘 그랬듯이 새벽도량석 소리에 일어나 똑같은 일상을 시작하리라. 본분에 있어서는 묵은 해 새해가 따로 없을테니 말이다.